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과거 자신의 음담패설이 녹음된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유부녀를 유혹하고, 성추행을 자랑하는 트럼프의 저속한 발언이 폭로되자 당내에서는 후보 사퇴 요구마저 일었다. 트럼프는 사퇴를 거부했지만 투표일을 꼬박 1개월 남겨 놓고 선거판이 급작스레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열릴 2차 TV토론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공격소재로 삼겠다고 예고했지만 “선거가 이대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일고 있다. 트럼프 캠프 관계자는 “동영상 공개가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파문은 워싱턴포스트가 문제의 동영상을 입수해 7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는 이 동영상에서 한 유부녀의 실명을 거론하며 “유혹해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다”고 떠벌렸다.

특히 그는 여성의 신체 주요 부위를 지칭하는 저속한 표현을 써가며 “스타가 되면 여자의 몸을 만지거나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그가 2005년 한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하기 위해 연예프로그램 ‘액세스 헐리우드’의 진행자 빌리 부시와 함께 버스로 이동하던 중 카메라가 없는 상태에서 주고 받은 대화에 담겼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핀 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녹음됐다.


동영상이 유포되자 공화당은 충격에 빠졌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동영상 공개 직후 “트럼프의 발언은 역겹다”며 다음날 자신의 지역구에서 갖기로 한 트럼프와의 공동유세를 취소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도 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발언은 용납할 수 없고, 방어할 수 없다”고 비판한 뒤 공동유세 참여를 거부했다. 펜스 주지사는 다만 “트럼프가 발언을 뉘우치고 사과한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는 여성에게 직접 사과하고, 또 여성에 대한 존경심이 눈곱만치도 없는 발언에 대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는 처음엔 “격의없는 농담이었다”고 치부했으나 당내 의원 20여명이 자신의 발언을 비판하며 지지를 철회한다는 성명을 내놓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사과했다.

트럼프는 8일 새벽 트위터를 통해 “누구나 완벽하지 못하다. 과거에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잘못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수많은 막말과 인신공격성 발언을 쏟아냈지만 사과를 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당 안팎의 시선은 싸늘했다. 트럼프의 사과로 봉합될 수준을 넘어섰다. 마이크 리, 마크 커크, 벤 새스 상원의원과 마이크 코프먼 하원의원은 트럼프의 사퇴를 촉구했다.

후보교체론까지 제기됐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대신 부통령 후보인 펜스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왔다. 공화당 서열 3위인 존 튠 상무위원장은 “지금 당장 트럼프는 후보를 사퇴하고 펜스가 우리 당의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기류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대선 후보를 교체해야 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선승리 홍보우편’ 발송 업무를 중단시켰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투표를 한 달 남겨놓고 트럼프가 자진 사퇴하거나 물리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상황에 빠지지 않는 한 대선 후보를 교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대선과 함께 치르는 상·하원 의회선거와 주지사 선거까지 패배할 것이라는 절망감이 당내에서 확산되면서 트럼프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켈리 아요테 상원의원은 “엄마로서, 당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입장에서 도저히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다”며 “트럼프가 사퇴하지 않으면 투표용지에 펜스의 이름을 적어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측근들을 트럼프 타워로 불러 긴급대책을 가진 뒤 “어떤 일이 있어도 사퇴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는 “언론과 당의 주류는 내가 물러나기를 바라지만 나는 결코 중도하차 하지 않을 것이며 지지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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