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오블로모프는 러시아 작가 이반 곤차로프의 소설 속 주인공이다. 오블로모프는 인생의 반 이상을 침대에서 보낸 타고난 게으름뱅이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서 대학시절 영화 ‘오블로모프’를 봤는데 러닝타임의 반 이상이 자는 신이어서 같이 졸았던 기억이 있다.
항암 이튿날. 병원 지하 새로생긴 중국집에 개근하고 있다. 인영이 주식은 짜장면이다.

소싯적 오블로모프였던 적이 있다. 아침잠이 많던 고등학생 시절 아침 보충수업을 이틀에 한번 꼴로 빼먹었고 오전 8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담임선생님이 집에 전화를 하셨다. 그때마다 어머니 아버지는 담임선생님임을 직감하고 서로 전화 받기를 미뤘고, 나는 이불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도 그 버릇을 못 고쳐 자취방 침대 안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캡의 전화를 받았던 때도 있었다.
병원 낮병동 스위트룸. 언제쯤 우리 아픈 아이들 모두에게 스위트룸이 주어질 수 있을까.

인영이 치료를 위해 병원 앞 호텔 생활을 할 때 내 중요 임무는 새벽에 주어진다. 인영이는 매일 낮 병동 입·퇴원을 반복하기 때문에 정해진 침상이 없다. 새벽 6시30분 항암 주사실 문을 열 때 가장 먼저 진찰카드를 찍으면 8시 진료가 시작될 때 침상 우선 선택권이 주어진다. 50여개의 침상이 있는 주사실의 명당자리는 단 2개뿐이다. 두 자리는 보호자가 앉는 공간이 넓을 뿐 아니라 창가 자리라 따스한 햇볕과 함께 경치도 좋다. 어느 환우 아빠는 그 자리를 ‘스위트 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등아빠 인증샷. 인영이 아프기 전에 꼴뜽아빠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등을 많이해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등을 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자지만 알람이 울리기 전 새벽 5시 전후면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아내와 인영이가 깰까봐 조용히 병원으로 향한다. 6시쯤 도착하면 주사실 문은 잠겨있고 청소 아주머니가 청소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때 아주머니를 잠깐 도와드리면 6시30분전이라도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문을 열어주신다. 가장 먼저 진찰카드를 찍고 호텔로 돌아갈 때면 일등 아빠가 된 기분이다. 인영이가 아프기 전 꼴등 아빠였기에 ‘반까이’를 하기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일등을 해야 한다. 나는 내일도 일등아빠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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