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하나의 유령이 국회를 배회하고 있다. 귀여움이란 유령이.

 언론사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인정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의 스마트폰은 시시각각 화면을 장악했다. 더 자극적이고 더 눈에 띄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끊임없이 피가 튀는 육중한 권력의 누아르를 단숨에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귀여움이 절실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을 출입하는 몇몇 기자들은 쓸데없이 엄숙한 여의도 정치판을 귀엽게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는 정치개혁을 위한 의식적인 투쟁이라기보다는 점진적이고 미약하게 스며든 무의식의 발로였다. 귀여움이 국회의사당을 전복할 때까지 진행될 신종 언론 개혁 프로젝트의 이름은 ‘큐티큐티 레볼루션(?)’이라 할 수 있다.


엄숙함의 시대┃와이어리스(Wireless) 강점기

 “의원님 탈당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지난 1월 12일, 지금은 국민의당 소속인 최원식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가 입을 열자 방송기자들이 즉각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갖다 댔다. 와이어리스는 말 그대로 선이 없는 마이크로 방송국 카메라 영상에 잡음 없이 오디오를 넣어준다. 라디오 방송기자는 '전기면도기'처럼 생긴 전용 녹음기를 최 전 의원 입 앞으로 내밀었다.

 방송국 이름이 적혀있는 새까만 와이어리스가 어퍼컷처럼 턱 아래로 돌진하면 어떤 정치인이라도 말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자연스레 풀려있던 혀가 굳는다. 머릿속에 맴돌던 순한글이 목구멍을 지날 때쯤이면 지루한 한자어로 바뀐다. 곁에 서서 수년 묵은 북어포처럼 딱딱한 문장을 듣고 있자니 몸속 근육이 찰흙처럼 뭉치는 것 같았다.

 검정 와이어리스. 검정 양복. 검정 머리. 까만 글씨. 회색 신문. 국회에서는 무엇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다. 모두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농밀한 엄숙함을 꾸며내야 기자나 정치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국회 사람들은 매듭이 짱짱한 넥타이에 목을 쑤셔 넣으며 생활과 정치와 두뇌를 시시각각 갑갑하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정치가 점점 더 재미없어졌다. 엄숙충에 중독된 사람들은 포자를 퍼뜨리는 곰팡이처럼 주변 사람에게 엄숙을 전염시켰다. 국회 당국은 1종 전염병인 엄숙중독 방역작업에 사실상 실패했다.


관종(관심종자)의 도래┃나 ‘폰케이스' 샀어요

 때는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결별한 뒤.

 지루한 장마처럼 계속되는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갈등에 기자들이 넉다운될 즈음이었다. 아무리 엄숙에 중독된 환자랄지라도 반복되는 계파싸움을 진중한 표정으로 바라볼 순 없었다. 쿡. 푹. 키득키득. 돌멩이 하나가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 냉소가 엄숙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엄숙충을 물리치는 궁극의 반코마이신이 소리 소문 없이 급습한 것이다. 웃음은 모든 것을 우습게 만들기에 냉소든 고소든 폭소든 파안대소든 짐짓 젠체하는 엄숙충에게 그 모든 것은 죽음과 동의어였다.

 국회의원들이 싸우면 싸울수록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정치부 기자 중 몇은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특히나 ‘폰케이스 쇼핑’이 눈길을 끌었다. 신문기자나 통신 기자들은 정치인이 말할 때 녹음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이미는데 덕분에 TV 방송 화면을 기자들의 스마트폰이 꽉 채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냉소에 빠진 소수의 기자들은 엄숙한 정치 따위야 국회의원에게 넘겨버리고 자신의 예쁜 스마트폰 케이스를 지상파 메인뉴스를 통해 자랑하기로 결의(?)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분홍색, 민트색, 점박이, 줄무늬 등 눈에 잘 띄는 스마트폰 케이스를 정치인 턱 밑으로 밀어 넣었다. 너도 나도 신상 폰케이스를 9시 뉴스 카메라에 들이밀며 자신의 미적 감각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귀여움 전쟁┃당대표가 진지하든 말든 내 폰은 귀엽게

 모 유력 종합일간지 선배가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노란 햇병아리'를 들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논하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입 앞에 병아리를 갖다 댔다. 정작 본인도 엄숙한 표정으로 안 대표의 말을 들었지만 손에는 병아리가 들려있었다. 모두가 진지함을 가장하고 있는 무대 위에 아무렇지 않게 병아리를 투척한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 모든 장면이 그저 잘 꾸며진 하나의 연극임을 폭로하는 전위적 오브제가 9시 뉴스에, 8시 뉴스에, 조간신문에 시시각각 등장했다. 선배는 마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후예인 양, 익살스러움으로 엄숙함에 젖어있는 화면에 균열을 내고 정치가 쇼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냈다. 킬킬. 나는 귀여운 햇병아리를 보며, 병아리를 향해 나라의 미래를 논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저들의 말이 과연 표정만큼이나 무게감 있는 발언인지 따져보았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이미 셀 수 없이 쌓여있었다.


 더 많은 병아리가 지상파 메인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중화작용처럼 정치인이 딱딱한 표정을 지을수록 병아리들과 예쁜 폰케이스들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귀여움 전쟁에서 패배할 수 없는 언론인들은 더 자극적인 귀여움을 찾아 헤맸다. 모 언론사 선배는 무려 보라색 스티치 인형이 커다랗게 박혀있는 폰케이스를 국민의당 천정배 대표에게 들이밀기도 했다. 스티치를 향해 호남 민심과 야권 총선 전략에 대해 말하는 당대표의 모습은 작위적이었다. 초점 없이 텅 빈 눈동자로 천 대표의 발언에 귀기울이고 있는 스티치의 모습은 정치의 허망함을 잘 보여주었다.


“이것은 자존심 싸움이야”

 한 기자가 눈에 불을 켠 채 쿠팡에서 예쁜 폰 케이스를 찾고 있었다. 노트북 덮개에는 카카오프렌즈 스티커를 붙이고 스마트폰에는 앙증맞은 케이스를 씌운 뒤 국회로 출근한다. 전위적인 귀여움만이 엄숙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 가볍고 쉬운 말로 위트 있게 농담을 던지는 미국 대통령과 독일 의원들을 보며, 우리 정치는 아직도 국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구나 느낀다.

 병아리와 스티치와 공룡과 뽀로로. 더 많은 귀여움이 정치인의 턱 밑에 걸려야만 했다. 풍자와 해학이 억압을 뒤집는 민중의 도구라면, 위트와 귀여움은 정치를 특권에서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민주주의의 도구다. 뭔가 있는 척, 엄숙한 척, 시민의 일상과 유리되어 높은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척, 그 모든 척들과 척을 져 척결하기 위해 몇몇 기자들은 귀여움을 탐구한다. 오늘도 쿠팡에서 폰케이스를 쇼핑하며 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쇼핑한다'고 자기를 합리화해본다. 이것은 ‘큐티 큐티 레볼루션'의 첫 걸음이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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