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육체를 움직이며 땀 흘리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청년은 생각나는 것들을 종이에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곤 하나씩 지워 나갑니다. 자동차 정비를 해볼까, 자동차는 세상을 오염시키니까 안돼. 보석공예는 어떨까.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패스.
 결국 남은 게 자전거 공방입니다. 목이 약간 늘어난 티셔츠에 슬리퍼를 신은 김두범(33)씨를 만난 건 지난 5일. 두범씨의 왼쪽 귀엔 망치 모양의 귀걸이가 걸려있었습니다.

김두범씨가 자신의 자전거 공방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다.

 그는 홍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입니다. 원래 망치 두들기고 칼로 자르고 드릴로 뚫고 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비로소 자전거 공부를 시작합니다. 서울 영등포 바이크아카데미와 경북 양산의 영사이클에서 수학한 뒤 비행기를 탑니다. 자전거의 성지(聖地) 미국 오리건 주의 UBI(United Bicycle Institute)에서 자전거 제작 과정을 수료합니다. 일본에선 자전거포를 돌아다니며 자전거 장인들을 만났습니다.
 2011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 상수역 인근에 자전거 공방을 차립니다. 공방 이름은 ‘두부공’. 두범씨의 별명이 ‘두부’인데 뒤에 장인공(工)자를 붙여서 두부공입니다.

상수역 인근에 있는 자전거 공방 '두부공'의 전경

 두범씨는 완성된 자전거를 되파는 것보다 직접 자전거를 만드는 데 주력합니다. 손님이 살아가는 방식에 꼭 맞는 자전거를 만들려면 충분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두 달쯤 전에 소개해 드린 '인간생각 이혜경씨'가 꽃다발 속에 이야깃거리를 담기 위해 손님의 사연에 귀기울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혜경씨도 이곳을 자주 이용하더군요.

 자전거를 만든 지 6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자기가 만든 자전거가 굴러가는 걸 보면 신기하답니다.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장인이라고 합니다. 두범씨는 얼마 전 한 의류브랜드가 선정한 ‘젊은 장인 3인’에 잠시 뽑혔다가 취소됐습니다. 그 브랜드의 옷을 입고 화보를 촬영해야 하는데 맞는 옷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두범씨는 저 위에 보이는 사진보다 살이 조금 더 붙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건 안 좋아하세요? 
 조금의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간결하게 대답합니다. “3보 이상 택시.” 육체노동이 로망이었다는 분한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두부공 내부 모습.

 하루는 한 부부가 공방을 찾았습니다. 대화하는 걸 얼핏 들으니 남자는 대학교수인 것 같았답니다. 부부는 ‘별이 빛나는 밤에’로 유명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흐가 활동했던 곳이 어디더라. 교수가 혼잣말처럼 중얼대자 옆에서 듣고 있던 두범씨가 대답했습니다. “아, 프랑스 아를이요?”
 그러자 교수의 눈빛이 달라지더랍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왜 그런 걸 알고 있지?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왜 여기서 자전거 수리를 하고 있나?” 

 당시를 회상하던 두범씨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면서 2012년 영국 런던올림픽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냅니다.
 “당시 올림픽 개막식엔 경기장을 지은 건설 노동자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초대받았어요. 성화 봉송을 할 때도 노동자들의 노고를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죠. 제가 바라는 세상은 그런 거에요. 치사하지 않은 세상. 그냥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두범씨가 이곳을 지나던 행인의 자전거를 수리해 주고 있다. 이 사진은 지난 11일 두부공 맞은 편에 있는 '그문화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다 창문 너머로 찍었다.

 집안 가훈은 “Life is camp(인생은 캠핑이다)”. 종종 여행도 다니면서 여유 있게 살자는 의미인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건 아닙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집을 자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느라 못을 박을 수도 없었고, 집주인의 짐을 보관하느라 방문 하나는 항상 잠겨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어디서 살든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하면 된다는 의미로 Life is camp입니다. 요즘 서울 집값이 어마어마 합니다. 아마 저는 평생 캠핑을 하며 살겠지요.
 이 가훈을 지은 어머니는 이제 나이가 들어 먼 데까지 다니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운전을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선택한 게 자전거입니다. 두부공이 문을 연 지 1년인가 2년인가 지나서 어머니는 아들이 자전거 공방을 해서 참 좋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누군가의 삶의 영역을 넓혀준다는 건 소중한 일입니다.

두범씨의 어머니가 강원도 강릉 초당동 집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

 그나저나 자전거의 매력은 뭔가요? 답변을 들으니 새삼 그가 인문학도였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자전거는 정말 인문학적인 도구에요. 기름이나 전기가 아니라 인간이 페달을 밟은 만큼만 가는 이동수단이죠. 더 이상 발전을 멈췄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이 너무 빨리 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천천히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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