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서 쉽게 꺼낼 수 있는 돈은 얼마?

미술 쇼핑에 나설 때 지갑에는 얼마의 돈을 들고 가면 좋을까. 자동차든, 냉장고든, 아니면 집이든 뭔가를 살 때는 예산이 중요하다. 나는 처음엔 300만원 정도의 금액을 잡았다. 그러다 500만원으로 상향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기자 생활 25년차이지만 월급쟁이의 작심한 첫 구매 치고는 과감한 금액이다.
 역시나, 직장 생활 10년 차인 40대 초반 월급쟁이 주부 J모씨, 출판사 대표인 J씨도 500만원은 부담스럽단다. 두 사람 다 200만원, 300만원 정도?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추석 직전인 9월 초 DDP에서 열린 '2016년 어포더블 아트페어' 전시장 전경.

 9월 초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6년 어포더블 아트페어’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올해 두 번째로 개최되는 글로벌 아트페어인 어포더블 아트페어는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라는 뜻의 ‘어포더블(Affordable)’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 합리적인 그림 가격을 내걸고 50만원부터 최고 1000만원까지의 작품을 파는 미술품 시장이다. 그러나 1000만원은 상한선일 뿐이다. 판매가 돼 빨간 딱지가 붙은 그림들은 200만원, 300만원 이하가 많았다. 심지어 엽서 크기 15만원짜리 그림에도 빨간 딱지가 붙어 있기도 했다. 행사가 공교롭게 명절을 앞두고 제수 비용 등 큰 돈이 나갈 시점에 열린 것이라 그런 것만은 아닐 터다. 컬렉터가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가 선뜻 지갑에서 꺼낼 수 있는 돈이 그 정도 선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2106년 어포더블 아트페어'에서 고객들이 갤러리 부스를 돌며 작품을 구경하고 있다.

 갤러리 부스에 걸린 작품들을 꽤나 꼼꼼히 보는 40대 초반의 여성 둘이 눈에 띄었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데, 한 사람은 청바지에 T셔츠에 백팩을 맨, 다른 한 친구는 면직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아주 편안한 차림새였다.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그들은 앞으로 사볼까 해서 한번 구경삼아 왔다고 했다.
  “그림 사는 데 부담을 덜 느끼고 지갑에서 꺼낼 수 있는 돈은 150만원정도 아닐까요? 초반에 그림에 대해 잘 모르면서 300만원은 선뜻 꺼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은 해외여행 포기하는 셈 치고 큰 맘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백팩을 맨 여성이 친구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있지, 아까 그 그림, 괜찮았지? 정말 사고 싶었거든요. 300(만원)이던데. 그 그림 앞에서 제일 오래 있었어요.”
 그런데 한번 사본 사람은 좀 달랐다. 스케일이 커진다고나 할까. 괜찮은 그림이라면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다닌다는 직장 10년 차 30대 후반 동갑내기 부부. A갤러리 부스에서 210만원짜리 그림을 막 포장하는 그들의 표정이 꽤 흡족해 보였다. 펭귄, 낙타 같은 동물들이 갤러리에서 그림을 구경하는 귀엽고 환상적인 그림이다. 남편의 손에는 다른 갤러리에서 80만원에 샀다는 보다 작은 크기의 그림이 포장된 채 들려 있었다. “이번이 4번째 구매에요. 신혼인데, 내 집이 생기니 그림을 사서 집을 장식하고 싶어요. 좀 큰 이건 침실에 걸 거고, 저 작은 건 다른 방에 걸 거예요. 아, 정말 너무 맘에 들어요.”
앞으로 500만원도 쓸 용의가 있냐고 묻자 그의 아내가 답했다. “500만원요? 저희 수입에는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맘에 드는 그림이면 충분히 그 정도는 쓸 수 있어요.” 옆에서 남편이 거들었다. “500만원요? 전, 5000만원까지도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좋은 그림이라면요.”

좀 더 쓰고 앞으로 오를 그림을 사?

300만원으로 할까, 500만원으로 할까. 나 역시 ‘실탄’ 비용을 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 500만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미술기자로 일하며 작가, 미술비평가, 화랑 주인들로부터 주워들은 바가 있어서다. “300만원요? 그 돈으로 좋은 작품 사기 쉽지 않을 걸요.”
 어떤 이는 생애 첫 컬렉션으로 한 달 치 월급을 추천한다. 300만원, 혹은 500만원은 직장 연차에 따른 월급 차이이기도 하다. 그럼 대리급은 300만원, 과장은 500만원짜리를 구매해야 하는 걸까. 나는 정답은 아니라고 본다.
 미술작품을 사기 위해서는 그 돈이 갖는 구매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미술시장에서 300만원, 혹은 500만원의 화폐 단위가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300만원이나 500만원이나 그게 그거일까. 200만원 더 쓰는 것이 10년 후가 달라지는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200만원을 더 쓰면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지는 것일까.
하이마트에서 본 판매가 480만원의 양문형 냉장고.

 냉장고를 살 때도 고급 사양을 사려면 300만원으론 예산이 부족할 수 있다. 하이마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허걱, 거의 500만원짜리 양문형 고급 냉장고도 있다. 미술품 역시 그렇다. 실용성만을 따져서는 안되는 게 미술품의 세계다. 그림이야 말로 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에피소드가 있다. 아는 선배가 어느 날 ‘상담 좀 하자’고 했다. 신문사에서 미술을 담당하니 조언을 구하고 싶다며 스마트폰 속에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유화로 그린 파란색 톤의 비구상 작품이 보였다. 그 선배, 사람 좋기로는 소문났지만, ‘문화적인 남자’는 아니다. 문화생활이라면 영화 관람이 전부이고, 어쩌다 기회가 생기면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는 게 전부다. 내가 관찰한 그는 그랬다. 갤러리는 가본 적이 없을 것이다.
 “우리 집에도, 거실 소파 뒤에 그림 한 점 떡 걸어두고 싶거든. 우리도 그런 나이가 안됐나. 마침 고등학교 동창이 서울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전시 오픈식에 갔다가 부탁도 있고 해서 한 점 사주기로 했어. 이걸 사기로 했는데….”
자신이 없는 듯 말끝을 흐렸다.
 “선배, 근데 얼마에….”
 “200만원에 샀는데, 그 친구가 주저하더니 깎아주더라고.”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품 수준 운운할 것도 없었다. 그림 호수도 모르는 선배였다. 사진으로 봐선 40, 50호 정도 크기는 돼 보였다.
 “선배, 정말 잘 사셨어요. 좋은 가격인 듯해요. 미술대학 갓 졸업한 병아리 작가도 그런 크기면 그 정도는 줘야 해요.”
 선배의 동창이라니 50대 중반이다. 50대 중반에 40,50호 크기 유화작품을 수백만 원에 파는 작가라면 잘 나가는 작가로 보기는 힘들다는 미술시장 관계자의 객관적 평가를 전하지는 못했다.
 아내와 세 딸이 있는 그 선배네 가족은 그 그림과 함께 살게 된 이후 행복해한다. 거실 소파 뒤 그 그림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 선배는 잘 산 걸까? 구매자가 만족하면 그걸로 끝이다. 오르거나 말거나, 미술시장과 평단의 인정을 받거나 말거나 내가 좋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집안 인테리어 용도도 충분히 충족시켰다. 작품을 살 때는 용도와 목적도 중요하니까.
지난해 10월 16회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출품된 이우환 작가의 작품 '선으로부터(From Line No.78022)' , 캔버스에 유채, 97.0☓.130.5cm, 1978년작. 7억6100만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제공

 그러나 미술에서는 취향의 차이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작품에 대한 평가다. 이는 훗날 미술작품 가격의 등락으로 증명이 된다. 큐레이터, 미술평론가들이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문제작은 점점 미술시장에서 인정 받으며 작품 가격이 오른다. 한 점에 10억원, 20억원 넘게 팔리며 우리나라 현존작가로는 작품 가격이 제일 비싼 이우환(80) 선생의 작품도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다. 5, 10년 뒤 10배 많게는 100배까지 뛴 작품들도 있다는 컬렉터들의 성공담이 귓가를 뱅뱅 돈다.
 그런 싹수 있는 작품은 처음부터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집안 장식, 자기만족을 넘어 ‘좋으면서도 중요한’ 작품을 사고 싶다. 이왕이면 5년 후, 10년 후 인정 받는 그림, 덩달아 가격도 올라 기분 좋은 그림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작품을 살 때 미술시장에서 300만원과 500만원은 의미가 없는 가격 차이일까. 아니면 나중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별력이 있는 차이일까. 전문가들에게 물어봐아 겠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