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중증 질환 아이를 둔 엄마아빠의 가장 큰 두려움은 혹시 내 아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엄마아빠들은 최선의 치료를 받기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최선의 치료는커녕 치료도중 의료진의 실수로 아이가 잘못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내 아이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라고 외면하기에는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불안정하다. 아니 언제 터질지 모를, 언제 터져도 당연한 시한폭탄이다.

종현이, 예강이, 성은이, 영준이.. 우리 의료시스템의 슬픈 자화상

여기 4명의 아이가 있다. 8살부터 19살까지 소중한 아들, 딸들이었다. 평소 건강한 아이도 있었고, 많이 아팠지만 언젠간 또래 평범한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던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의료사고로 하늘나라로 가거나 혹은 뇌사상태로 10년째 누워있다. 의료사고 피해자인 이 아이들의 공통점을 좀 더 파고들어가 보면 사고의 주체는 레지던트, 즉 수련의였다. 그러나 그들을 개인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레지던트 개인의 부주의와 실수보다는 그들을 실수하게끔 내몬 우리 의료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이 시스템을 뜯어 고치지 않는 한 우리는 제2의 종현이, 예강이, 성은이, 영준이를 만날 수밖에 없다.
백혈병으로 항암치료를 받던 9살 종현이는 레지던트의 과실로 10일간 고통속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제공

백혈병을 앓던 종현이(당시 9살)는 2010년 5월 3년여 간의 항암치료의 마지막 치료 도중 목숨을 잃었다. 정맥에 놔야 할 항암제 ‘빈 크리스틴’을 허리뼈에 맞고 10일간 고통 속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레지던트가 주사액 색깔이 비슷한 두 약을 착각하면서 일어난 사고였다.

3학년 예강이는 건강체질이었다. 2014년 1월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3일동안 동네병의원을 전전하다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급성백혈병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응급실 의료진은 뇌척수염을 의심해 허리뼈에 주사바늘로 척수액을 꺼내는 요추천자 검사를 실시했다. 레지던트 1년차 2명이 번갈아 5번이나 척수액 추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예강이는 쇼크로 사망했다.

2007년 고3이던 영준이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병원은 간단한 수술이고 실력있는 전문의를 선택진료했으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런데 영준이는 수술 도중 식물인간이 되어 나왔다. 마취 전문의가 해야 할 일을 레지던트가 했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영준이 부모님이 들은 영준이의 마지막 말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이 병문안 올테니 밥을 사주라”는 것이었다.

12살 성은이는 폐동맥고혈압이라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었다. 가족여행을 갔다가 응급상황이 발생해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급히 아이를 옮겼지만 아이는 깨어나지 못한 채 두 달여 만에 눈을 감았다. 이 질환을 처음 겪은 응급실 레지던트는 성은이 도착 직전에야 인터넷을 통해 이 질환을 파악할 정도로 미숙했고,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가족들의 치료 조언에도 ‘보호자는 비켜라’고 말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 ‘보호자는 안심하고 퇴실하라’고 했지만 성은이는 중환자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미숙련 전공의의 요추천자 시술 도중 사망한 예강이의 당시 CCTV영상 '난 예강이 홈페이지' 제공

이틀밤을 샌 레지던트에게 시술을 받아야하는 현실

전문의가 아닌 수련이 주 목적인 레지던트에 의한 의료사고는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졌다'라고 쓸 수밖에 없는 것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분쟁조정을 담당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매년 의료사고 통계를 낸다. 하지만 어디에도 의료사고를 낸 주체가 전문의인지, 레지던트인지, 약사인지, 간호사인지, 인턴인지라는 통계는 없다. 조정중재원 관계자는 그런 통계가 있냐는 질문에 “아예 그런 시스템이 없다. 어디에도 그런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사고의 상당부분은 수련과정에 있는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내고 있다. 아니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4년 전공의(레지던트, 인턴)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규정상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은 8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이들의 주 평균 근무시간은 93시간이었다. 반면 하루평균 수면시간은 5.4시간에 불과했다. 그 결과 인턴 10명 중 9명, 레지던트 10명 중 7명은 근무시간 중 의도와 무관하게 졸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인턴 13.8%와 레지던트 8.7%가 지난 3개월새 의료과실을 범한 적이 있고, 인턴 61.0%와 레지던트 41.1%가 의료과실을 저지를 뻔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수련의 개인 역량이 아닌 의료 시스템의 문제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과실을 저지른 의료진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위중한 2살 배기 아이가 병원을 떠돌다 사망하자, 치료를 거부한 병원들의 응급권역의료센터 허가를 취소한 보건복지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의료 사고 문제는 불안전한 의료 시스템의 문제다. 72시간 동안 깨어있어야 하는, 비몽사몽간에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레지던트들에게 양질의 진료와 처치를 기대하기에는 현 의료시스템은 너무나 낙후돼 있다. 병원은 건강의료보험 저수가정책을 이유로 수련이라는 미명아래 저연봉의 레지던트들로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렇듯 전공의 수련규정을 밥먹듯 어기는 대형병원들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마취 전문의를 선택진료했지만 대신 들어온 레지던트 과실로 10년 째 누워 있는 영준이.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제공

의료시스템 개혁을 위한 3대 법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이런저런 의료시스템의 부조리와 환자 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올 들어 3개의 법이 시행된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 이를 감추지 않고 모든 의료기관이 공유해 똑같은 의료사고를 막자는 취지의 환자안전법(이른바 종현이법)은 지난 7월부터 시행됐다.
의료사고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피해자가 의료분쟁조정원에 조정신청을 냈을 때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없게 한 의료분쟁조정법(이른바 신해철법, 예강이법)은 11월 시행된다. 레지던트들을 의료사고를 내몰 수밖에 없는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전공의 특별법은 12월 시행된다. 이 3개의 법은 서로 연관돼 있다. 이 법들이 취지에 맞게 정착이 된다면 환자와 의사 모두 지금처럼 의료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질 것이다. 그러나 전공의 특별법 상 근로시간을 주당 80시간을 낮추는 규정은 병원들이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1년 뒤에야 적용되고,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해 의료계는 의료사고 강제 조정규정으로 위험한 환자는 의사들의 거부로 오히려 더 치료받기 힘들 것이라며 ‘환자 죽이는 법’이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환자 권리 강화돼야
이렇듯 현 의료시스템은 ‘답이 없다’. 하지만 현 의료시스템에서 환자들의 안전을 위한 권리는 어떻게든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 1981년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채택된 ‘환자의 권리’에는 환자는 자유롭게 자기의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유롭게 임상적, 논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의사에 의해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지금처럼 아이들이 골수·척수검사를 받을 때마다 복불복처럼 이번에는 실력있는 레지던트가 걸리길 기도하는 시스템은 분명 잘못됐고 개선돼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환자들이 선택진료제라는 미명 아래 고액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전문의로부터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함인데 현실은 위험한 시술이나 검사를 포함해 상당수의 의료서비스는 전문의가 아닌 레지던트와 인턴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김강립 보건의료국장도 “의료인에게 진료거부 권리가 있듯이 당연히 환자도 비숙련된 의료진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국장은 덧붙였다. “거부할 권리는 있지만 그 책임은 환자가 져야할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그런 책임을 감수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환자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지난 7월 시행된 환자안전법의 제 5조, ‘모든 환자는 안전한 보건의료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문항이 '환자'라는 단어가 주체로 들어간 최초의 의료관련 법 조항일 것”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실의 이강군 비서관의 말은 우리 사회에서 환자의 권리가 어느 수준인 지 가늠하게 해준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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