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던 중 생각에 잠겨있다. 그는 의원 선거 제도 개편 없는 개헌 논의는 "양당 다선의원들이 다 해먹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지난 대선에서 혜성처럼 떠올랐던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가라앉았다. 더불어민주당 탈당 이후 그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4·13총선에서 광야로 나선 그를 국민들이 손을 잡아 세웠다. 그 후 반 년, 국민의당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안 전 대표는 23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미흡했고, 반성했다”면서도 “3당 체제의 성과는 법안 통과 과정에서 발휘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참고). 그동안 그가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에 갇혀 있단 생각이 많았다. 정치 현안은 외면한 채 국회 밖에서 외치는 사회 혁신 주장을 들으며 ‘그래서 어떻게?’ 란 의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23일 본보 권지혜 국민의당 반장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관전하며 상당한 인식 변화를 느꼈다. 생각해보면 3당 체제 닻을 내린 당 대표라면 진작 이런 모습이어야 했다. 늦었지만, 아주 늦지는 않은 시기에 자기 자리는 찾은 셈이다. 특히 개헌 이야기를 작정하고 했다. 어떤 야권 주자도 이렇게는 말 못했다.

 참는 건 1등
 인터뷰 시작 전 한 달여 전 티타임보다 다소 마른 모습이 화두에 올랐다. 요새 운동을 열심히 하는 덕을 본 듯했다. 이에 “요즘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옛날에는 1km에 7분 정도 걸렸는데, 지금은 5분대다. 30분에 6km 정도 뛴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항상 처음 뛸 땐 1km가 힘들다. 그래도 뛰다 보면 6km가 되더라”라며 “영어로 인듀런스 러닝(endurance running·참고 뛰기)이라고 하잖아. 참는 게 맞는 거 같다”고 했다. “정치 인생 같다고 보냐”고 묻자 “어릴 때도 단거리 달리기는 남들보다 잘 못 뛰었는데 장거리 달리기는 항상 1등 했다. 결국 사실 이 악물고 참는 거다. 그런데 항상 그렇게 살아왔다”고 답했다. 흥미로운 인터뷰 전개다.

 국민의당, 미흡했고 반성한다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질문은 사실 불쾌할 수도 있는데, 권 반장은 대놓고 물었다. 안 전 대표는 “총선 민심은 결과적으로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분노”라며 “유럽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현상을 비롯해 올해는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분노가 세계적으로 표출된 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6개월 정도 나름 노력했지만 기대에 미흡했다고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과로는 추경 통과와 원구성 협상을 뽑았지만 “법안 통과 과정에서 3당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거대 정당 사이에 정쟁이 붙으면 여타 교섭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법안 정국이 시작되면 38석은 무시할 수 있는 수가 아니다. 거대 양당도 고개를 숙이고 국민의당을 찾아야 한다. 그는 여러 법안 통과과정에서 원 구성 협상처럼 운영의 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 했다. 당장 법인세 인상안 등도 당론 발의 돼 있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일 광주에서 열린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빛고을 문화한마당' 행사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孫과의 동침?
 지난 8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의 전남 강진 회동에 대해선 “이 얘기는 처음 하는 것”이라며 내막을 밝혔다. 그는 손 전 대표와 크게 세 가지를 얘기했다고 했다.

 ①국가가 엄청난 위기다. 이젠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국가 정책을 끌고 나가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공감대를 가졌다.
 ②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기득권도 버릴 수 있다.
 ③함께 하신다면 정치적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그리고 이날 인터뷰에서 한 마디를 더했다.
 ④“대선과 개헌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명확하죠?”

 명확하지 않은 문장을 명확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주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다. 손·안 연대가 대서특필된 상황에서 “아직 대선과 개헌에 대한 연대까지는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앞으로 대선과 개헌에 대한 연대도 논의하겠다”는 것인지는 해석이 정반대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후자’라고 귀띔했지만 글쎄. 그 판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최순실?
 인터뷰는 1시간 이상 이어졌다. 여러 문답에 흥미가 생겨, 막판 질문지에 없던 최순실씨 의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헛웃음을 짓는다. 안 전 대표는 “정말 기가 막힌 일 아닙니까?”라고 되묻곤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저절로 모든 사람들 입에서 나오더라”라고 말했다. “이게 나라냐”는 본인이 최근 써서 ‘히트’했던 말이다. 그리곤 “국가 기관을 개인 회사처럼, 국가 공무원을 개인 직원처럼, 국가 재산을 자기 돈처럼 이렇게 쓰는 일은 수 십년 전에도 없던 일”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에게서 이런 자신감 있는 정치인의 문장이 나올 것이란 기대는 과거엔 하지 못했다.

 개헌 이야기를 작정하고 했다
 장시간 인터뷰 중 핵심은 개헌 발언이었다. 야권 주자에 대한 개헌 입장 표명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그럴 수 밖에 없다. 총선 승리로 인해 차기 대선은 야권이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야권 주자로선 대선 승리가 눈에 보이는데 굳이 ‘분권’을 위한 개헌에 입장을 밝힐 필요가 없다) 작심한 듯 가장 명쾌한 입장을 내놓았다. 어떤 야권 대선 주자도 개헌에 대해 이런 식으로 얘기한 적이 없다.

 안 전 대표는 “정치권에서 개헌하자는 사람들은 많은데 각론이 너무 달라 이게 하나의 목소리로 합의가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많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오히려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며 “개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은 오히려 그것보다도 훨씬 더 더 먼저 해야 할 일, 더 쉬운 일부터 먼저 하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개헌론자들이 얘기하는 것을 다 보면 구체적인 방법은 다 다른데, 큰 지향점은 분권”이라고 짚어내고 “한 사람의 대통령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보니, 그 사람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만 고집을 피우고 있다 보니, 국가가 표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방향이 옳지 않을 때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재조정하는 것도 필요한데, (현 정부에서) 그게 안되니 분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같다”고 했다.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개헌론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그리곤 칼을 꺼낸다. 그는 “분권의 가장 기본은 국회의원 선거제도다. 지금 제도는 양당에 극도로 유리하고 최적화, 효율화된 제도”라며 “그대로 놔두면 제도적 한계 탓에 다시 양당 체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 아래선 개헌론자들이 얘기하는 어떤 제도도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개헌은 다 국회를 근간으로 하는 것인데, 양당에게 최대로 유리한 내에서 권력구도를 바꾸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 사람들이 오히려 진심을 갖고 있다면 국회의원 선거제도부터 바꾸는 데 합의하는 게 맞다. 또 쉽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주당 내에서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정도는 받아야 개헌에 동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 권반장이 한번 더 캐물었다. “선거제도 개편은 국회 정개특위를 통해서 하자는 것인지요?” 이에 안 전 대표가 받아친다. “형식은 상관없지만 이것도 못하면 개헌하더라도 양당이 다 해먹자는 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민심과는 반대죠.” 그리고 “결국 ‘양당 다선 의원들이 다 해먹자’는, 이겁니다. 지금. 국민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지요.”

 국정 역사 교과서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꺼낸 이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그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일이 없도록 교육부 해체,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를 ‘교육통제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국정 교과서에 대해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교과서를 보면 집필이 36개월이고, 현장 적용을 10개월 정도 한다. 그런데 이 역사교과서는 집필기간이 13개월, 그러니까 3분의1 정도밖에 안 된다. 그 다음에 적용 기간이 1개월”이라며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어느 정도 초고가 완성됐다고 하니까 한 달이라도 빨리 공개해서 오류들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끝까지 저렇게 숨기고 고집하고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나중에 시간에 쫓겨서 적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가는 것인데, 이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정 교과서가 공개되면 11월말부터는 여야가 또 다시 거세게 충돌할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자신이 지원한 교문위에서 과연 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처럼 성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쟁을 외면하고 국회 밖에서 주로 생활했지만 국정 교과서 문제는 정치 현안과 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의 정무적 판단과 이슈 주도력, 대중 설득력은 여기서 한 차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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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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