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요화하마도(蓼花蝦蟆圖). 지난 8월 30일 마이아트옥션 경매에서 6800만원에 낙찰됐다. 겸재의 그림은 여전히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하는 인기 고서화다. 한 여름 여뀌 풀 아래 더위를 식히고 쉬고 있는 개구리가 곤충을 향해 뛰어오르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다. 관직에 나아가고자하는 선비들의 바램을 담은 그림으로 해석된다. 마이아트옥션 제공

저평가된 동양화를 지금 구입하는 게 좋다는 우찬규 학고재 갤러리 대표의 조언이 우선 솔깃하다. 500만원이면 좋은 작품을 5점까지 살 수 있다니,  사기도 전에 벌써 부자가 된 기분마저 든다.

100만원이면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데다 저평가된 주식이 그렇듯 언젠가는 반등의 시점이 올 테니까. 그 반등의 시기가 언제인지가 문제인데, 좋아하는 옛 서화를 걸어두고 아침저녁완상하며 즐거워진다면 그것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옛 선비들은 이를 ‘와유(臥遊)’라 했다.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명승고적을 그린 그림을 집안에서 감상하며 즐김을 비유한 것이다. 서화를 걸어두는 장소로는 서재가 제격이겠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싸한 냄새가 서화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울릴 테니까.

# 고서화, 옛 사람과 오늘을 사는 내가 대화를 나누는 길

나이를 먹으며 동양화가 점점 편해지기는 한다. 한지나 비단에 스며 퍼지는 먹의 느낌, 붓 가는 대로 그렸다는 문인화의 꾸미지 않은 세련됨, 성긴 붓질과 여백에서 느껴지는 여유. 중년이 되면 아무래도 도전하기보다는 욕심을 내려놓게 되는데, 그런 태도가 고서화에서 풍기는 여유와 닮아있다고나 할까.

경기도 과천에 사는 한 컬렉터의 집을 방문한 적 있다. 졸저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글항아리)이 나와 선물로 드렸는데, 이렇게 말하지 뭔가. “저희 집에서 소장하고 서화 10점 정도가 그 책이 실린 것 같네요.” 대단한 컬렉터라고는 들었지만 그 정도 일 줄을 몰랐다. 책에는 안평대군의 늠름한 글씨에서부터 한겨울 추위에도 꼿꼿한 소나무의 기상을 그린 ‘세한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서화 200여점의 도판이 실려 있다.

그 댁 서재에서 만난 다산 정약용의 아주 작은 산수화 한 점. 정약용은 문인화 실력이 탁월했던 선비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림 수준은 고졸했다. 그러나 정약용의 수묵 산수화에선 세속의 정치경쟁에서는 졌으나 실망하지 않고 저술가라는 자신만의 길을 표표히 걸어간 조선시대 대학자의 고결한 정신 같은 게 느껴졌다. 고서화를 감상하는 행위야 말로 옛 선인과 지금의 내가 교감하는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양화는 한국의 산업화, 도시화가 진행되며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 원인을 학문적으로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근대화와 경제발전 과정은 서구 문물의 유입과 추종의 과정이었고, 이는 우리 것에 대한 홀대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국인 서양화가가 출현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중반부터다. 최초의 양화가인 고희동이 일본에서 돌아온 것이 1915년이다. 이어 김관호(1916년), 김찬영(1918년), 나혜석(1918) 등이 일본에서 유학 후 차례로 귀국했다. 1920년대부터는 유학파들이 더 늘어나며 해방 이전까지 서울과 지방 주요도시에 서양화가들의 개인전이 활발하게 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1970년대까지만해도 미술 시장의 대세는 동양화였다. 이른바 동양화 ‘6대가’ ‘10대가’들의 작품이 크게 인기가 있었다. 1956년 이대원 화백이 경영하던 서울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자리) 내 반도화랑에서 일하다가 독립해서 1970년 인사동에 현대화랑을 차려 ‘화랑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박명자 현대갤러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1964년 박 전 대통령이 해외 차관을 얻으러 미국과 독일을 갈 때 제일 잘 나가는 국내 화가가 누구냐며 우리 화랑으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 때는 서양화는 인기가 없었고 동양화가 최고였어요. 청전 이상범이 제일 인기였지요. 10폭 산수화 병풍을 당시 최고가인 60만원에 사 미국에 갖고 가셨어요. 독일에 갈 때는 심산 노수현의 병풍 그림을 50만원에 구입해 가셨지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최고의 성의를 표하신 거지요.”

# 동양화는 왜 내리막길을 걸었을까

무엇이 고미술품 가격 하락을 불러왔을까. 주거문화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전 한옥이 주된 가옥 형태이던 시절에는 제법 유복한 가정에는 집집마다 동양화 한점이 걸려 있었다. 그러다 아파트 문화가 대세가 되는 것과 더불어 집안에서 동양화는 빠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서울 인사동에 모여있던 고미술상들이 2002년 문화지구 지정 이후 임대료 상승 여파로 줄어들거나 답십리 등으로 떠나고, 되풀이되는 위작 유통 등으로 신뢰를 잃는 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화재 나이를 50년으로 정한 문화재보호법 개정 여파가 결정타를 날렸다는 분석도 있다.

문화재는 100년은 돼야 한다는 게 통념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법으로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문화재 자격을 부여하는 최소 나이를 50년으로 2008년 바꿨다. 근대 유산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법이 개정됐지만, 문화재 나이가 지나치게 젊어지다 보니 생겨나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

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되면 문화재가 될 자격이 주어져 1960년대 초반에 제작된 뻥튀기 기계 같은 산업품도 해외 전시를 위해 반출하려면 일일이 정부 심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고미술상들은 “해외 반출이 어렵다보니 고미술품이 나라 안에서만 맴맴 돌고, 결국 값이 하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소연한다.

문화재 나이가 젊어지며 결정타를 입은 건 일제 강점기 전후 활동했던 근대기 서화가들이다.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전 변관식(1899-1976) 같은 스타 동양화 작가의 인기는 그나마 답보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의재 허백련(1891-1977), 풍곡 성재휴(1915-1996) 등의 작품은 고전하고 있다. 남농 허건(1907-1987)의 작품 값은 1980년대에 비해 반토막이 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인 중강 이건명의 한시를 이효우 낙원표구사 대표가 현대적 감각에 맞게 표구한 족자. 가나아트 제공

동양화가 아파트 거실에는 어울리지 않아 꺼린다는 분도 많다. 그러나 요즘에는 족자나 병풍 등 전통적인 표구 방식 대신에 현대적인 감각의 표구를 하기도 한다. 평생 표구에 종사해온 이효우 낙원표구사 대표(75). 가나아트센터에서 그의 구술집 ‘풀 바르며 산 세월’을 2016년 6월 발간하면서 책 출간을 기념한 전시회를 열었다. 취미 삼아 모은 조선시대 한시 서예 작품을, 갈고 닦은 족자와 병풍 꾸밈 솜씨로 표구해 등 30여점을 선보였다. 전통 기법 그대로 살린 표구도 있었지만, 조선 후기 문인 중강 이건명(1663∼1722)의 한시를 표구한 족자는 무척 현대적이었다. 미색 종이에 쓴 글씨를 짙은 밤색 꽃무늬 비단에 표구했는데, 300년은 된 글씨 작품이 지금 것처럼 감각적이다. 액자만 바꿨는데도 옛 서화가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지운다.

지난 호 칼럼 이후 나처럼 학고재 대표의 제안에 공감이 간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양 가격부터 알아볼 일이다. 고미술품 전문 경매회사인 마이아트옥션의 경매사 김정민씨에게 물어봤다.
의재 허백련의 ‘산수화’. 2014년 12월 마이아트옥션 경매에서 170만원에 낙찰됐다. 마이아트옥션 제공

“동양화는 100만원에서 1000만원, 5000만원짜리도 있는 등 가격 차이가 크게 납니다. 조선시대의 인기작가인 3재(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 관아재 조영석) 3원(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은 지금도 한 점에 수 천 만원, 수억원 호가하죠. 이들 말고도 호생관 최북 등 18세기, 19세기 때의 인기 작가 작품 중에서도 수천만원에 거래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기 있는 화가들을 제외하고는 100만원 미만이 수두룩합니다. 특히 근대 동양화는 거의 힘을 못써요. 이른바 '동양화 6대가' 가운데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을 빼고는 거의 500만원 밑에서 거래된다고 보면 됩니다.”

6대가는 1970년대에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890년대생 동양화가들로, 소정과 청전 외 심향 박승무(1893∼1980), 의재 허백련(1891∼1977), 심산 노수현(1899∼1978), 이당 김은호(1892∼1979)를 말한다. 
 
그러면서 드라마틱하게 가격이 하락한 사례로 이당 김은호를 들었다.  김은호 작품은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2000년대 초반까지만 1000만원, 2000만원 하던 것이 지금은 50, 60호 크기 대작조차 300만원, 400만원에 그친다고 했다.

김은호는 관재 이도영(1884-1933)과 함께 일제강점기 가장 인기 있었던 동양화가다. 두 사람의 그림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최고가에 팔렸다. 1921년 4월 2일자 매일신보에는 제1회 서화협회 전람회에서 김은호의 ‘축접미인도(逐蝶美人圖)’가 300원에, 이도영의 ‘수성고조(壽星高照)’가 150원에 팔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듬해 1922년 전람회에는 이도영의 ‘금계’(金鷄)가 500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다. 1921년 당시 경성 내 조선인 호수 3만 7000호 중 연 소득 400원 이상인 가구가 전체의 3분의 1인 1만 1600호에 불과했다. 김은호, 이도영의 그림값은 조선인 중산층의 연소득에 맞먹는 돈을 지불해야 살 수 있는 그림이었다.
지난 7월 12일 아이옥션 경매에서 140만원에 낙찰된 풍곡 성재휴의 '사계산수화' 아이옥션 제공

아이옥션 공균파 실장은 "이들 6대가 뿐 아니라  소호 김응원(1855∼1921), 석연 양기훈(1843∼미상), 풍곡 성재휴(1915∼1996) 등도 고정팬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작가들이었으나 지금은 수작도 수백만원이면 살수 있고 대부분이 100만원 미만에서 쉽게 거래가 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아이옥션 경매에서 40만원에 낙찰된 남농 허건의 '강사하일장((江寺夏日長). 아이옥션 제공

특정 시기, 특정 장르 미술품이 시장에서의 인기를 얻는 것은 그 시대정신과 맥이 닿아 있다. 근대 동양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홀대의 근저에는 제도적인 문제 외에 우리 안의 식민지 콤플렉스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결과가 아닐까.

미술사적으로도 인정받는 근대기 동양화가들의 작품 값이 언젠가는 오를 수밖에 없을 거라는 학고재 우 대표의 예측은 현실이 돼야 당위인지 모른다.

요즘 인사동 고미술상은 2대째 고미술상을 운영하는 동예헌 등 20곳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믿을만한 고미술상을 알지 못한다면 경매사를 찾는 것이 편리하다. 서울옥션과 K옥션이 동서양화를 모두 취급하고 있고, 마이아트옥션, 아이옥션 등이 고미술에 특화해 경매를 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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