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집중 항암치료를 마치고 유지 치료에 들어가면서 병원 가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 한달에 한번 항암주사 맞는 것 외엔 매일 먹는 약을 먹고, 일주일에 한번 혈액검사를 받으러 가면 된다. 거의 반반씩 병원과 집을 오가던 지난 9개월 동안에 비하면 상전벽해라고 해야 할까.

인영이도 기분이 좋다. 가끔 밖에 나갈 때 또 병원 끌고 가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이제 병원 가서 허리주사(척수검사) 맞지 말자”고 신신당부 하는 것 외에 병원 트라우마도 많이 벗어난 듯싶다. 아직 간수치가 높아 약을 줄여먹고 있는 것 외에는 치료도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영이는 아프고 난 뒤 병원놀이를 더 좋아한다. 자기가 당한 만큼 인형애기들에게 갚아준다. 그런데 나중에 의사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젓는다.

여유가 조금 생기니 인영이 ‘생활지도’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아이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인영이는 핸드폰을 많이 본다. 무료한 무균실 입원생활과 외래치료에서의 긴 대기시간, 고통스런 치료과정을 달래기 위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손에 쥐어준다. 아니 쥐어줄 수밖에 없다. 며칠 동안 인영이를 관찰해보니 요즘도 하루에 2~3시간은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인영이는 유튜브를 통해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검색해 볼 정도로 능수능란(?)하다. 아내와 상의 끝에 모든 핸드폰을 숨겨놓기로 했다. 아내는 인영이보다 내가 더 페북 등 핸드폰 중독이라고 꼬집었다. 우선 솔선수범으로 인영이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 않기로 했다. 처음 시도했는데, 습관이 무서워 나 역시 힘들었다. 인영이도 반발했다. 모든 급진적인 개혁에는 반발이 있는 것. 핸드폰 달라고 떼를 쓰다 우는 인영이를 달래고, 레고 만들기와 도블게임(그림 맞추기 카드놀이인데 재밌다) 등 오프라인으로 놀아줬다.
아프기 직전 올 초 사진. 지금은 머리도 짧고 아들(?)같아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여성스러움을 찾아갈 것이라고 아빠는 확신한다.

핸드폰 중독 증세보다 급한 건 아니지만 기저귀를 떼는 것도 서서히 시작해야 한다. 내년이면 우리나이로 5살인데 인영이는 여전히 기저귀를 사랑한다. 병원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훈련을 시킬 여유가 없었다. 인영이는 팬티 입자고 하면 기저귀를 가리키며 그게 팬티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유전 같다. 아빠는 7살 때 이불에 실수를 해서 이불을 빠는 엄마의 한숨소리를 자주 듣고 자랐다. 아빠 피가 흘러서인지 윤영이도 5살 유치원에 가서야 기저귀를 뗐다.
아빠는 낮에는 장난감도 사주고 인기 최고다. 하지만 잘 때가 되면 엄마 옆에 가고, 아빠는 항상 배신당하는 스토리는 변함이 없다.

이렇듯 인영이 생활습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 사는 낙이 있다. 제발 아프지만 않았으며 좋겠다고 생각한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단풍여행을 가거나 대하를 먹으러 바닷가에 갈 순 없지만 집 안에서 인영이가 언니와 투닥투닥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아내와 나 모두 최근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1년 새 한두 군데 문제가 생겼다. ‘문제가 안 생겼을 리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 길지 않은 인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을 때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엄마아빠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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