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강이가 22개월되던 때 주말부부 생활을 접고,  공기 좋고 집값 싼 은평구 신사동에 자리를 잡았다. 고향에서 면서기를 하던 남편이 서울로 적을 옮겼다. 고갯길이 힘든 것 빼곤 동네는 좋았다. 예강이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커갔다.  2014년 1월23일 전까지는.
예강이는 아직 엄마의 마음 속에 살아있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는 예강이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털모자와 구두를 선물했다.

“의사 가운을 입으면 다 똑같은 의사인 줄 알았어요. 운 좋으면 살아남고, 아니면 예강이처럼..”
 예강이는 서신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매 학년 2학기 때 반장을 맡았다. 아이들이 자기를 알아줄 때 반장이 하고 싶다고 1학기 때는 나서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 그리고 건강했다.
예강이 코피가 잘 멈추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는 성장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걱정스런 마음에 큰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은 처음이었다. 피검사를 하고 응급실에서 입원수속을 했다. 의료진은 빈혈이 심해서 그러니 2~3일 뒤면 퇴원할 거라고 했다. 병실 올라가기를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요추천자시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간호사는 약간 위험한 시술이라 외부에서 전문의가 와서 할 거라고 했다. “전문의요?”라고 되물었다. 그때는 전문의가 뭔지 몰랐다. 레지던트도 전문의도 그냥 다 똑같은 의사인 줄 알았다. 동의서에는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검사실 밖에서 악을 쓰며 아프다고 울던 게 예강이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커튼 밖에서 남편 손을 잡고 기도했다. 예강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강했고, 두 번째는 그보다 약했다.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40분이 지난 뒤 검사실 문이 열렸다. 예강이는 의식이 없었고, 의사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2시간이 지난 뒤 예강이가 사망했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다.
왜 우리 예강이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 지 궁금했다. 진실이 알고 싶었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다음날 새벽부터 하루종일 기다렸다. 오후 늦게야 법무팀 직원과 함께 온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예강이가 살아돌아올 수 없겠지만 진실이 알고 싶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해주세요.”
의사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직원이 서둘러 의사를 데리고 나갔다. 그 뒤로 그 의사를 보지 못했다.
예강이 엄마는 레지던트가 뭔지, 전문의가 뭔지 몰랐다. 다 똑같은 의사인 줄 알았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을 수 없었어요.”
검사실에 CCTV가 설치된 걸 언니가 발견했다. 병원에 달라고 하니 녹화되지 않고 그냥 켜있는 기계라고 했다. 주지 않으면 안 나가겠다고 버티던 언니에게 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영상을 줬다. 운이 좋았다. 그 영상이 아니었으면 예강이가 왜 하늘나라에 갔는지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영상을 본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의료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예강이가 하늘나라에 간 지 5개월이 지나서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숨을 쉴 수 없었다. 처음에는 가슴에 묻자며 말리던 남편도 1인 시위를 하고 오면 기분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더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혼자 시작했던 시위는 예강이 친구들까지 나서며 100회 이상 이어졌다.
예강이가 척추천자 시술을 받기 전에 받아 본 동의서. 간호사는 숙련된 전문의가 시술할 것이라 설명했고, 동의서에는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써 있다. 예강이는 미숙련된 레지던트 2명의 5번의 시술 실패 도중에 쇼크사했다.

“CCTV 영상을 무서워 못보다가 한 달 전에야 봤어요. 그 뒤로 다시 밤에 잠을 잘 못자요. 이건 살인을 한 거예요.”
영상을 보면, 예강이는 발가벗겨져 웅크린 채 누워있고, 3명의 의료진이 예강이를 잡은 채 허리뼈 근처에서 척수액을 빼내는 요추천자를 시도하고 있다. 1년차 레지던트가 3번 실패한 뒤 2년차 레지던트가 와서 2번을 더 시도했지만 결국은 의도했던 척수액을 빼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예강이는 쇼크사했다. 예강이는 3번째 시술부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생명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 기기음이 울리고 있었지만 2명의 레지던트는 검사에만 열중했다. 레지던트들은 어디엔가 전화를 했고, 검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고서야 멈췄다. 
 예강이는 응급실 도착 당시 빈혈수치는 4였다. 12가 정상인만큼 생명에 위독할 만큼 수혈이 우선적이었다. 그러나 수혈은 도착한 지 4시간이 지나 이뤄졌고, 예강이가 회복되기 전에 이뤄진 미숙한 요구천자시술로 쇼크사한 명백한 의료사고다. 
 나중에 떼어 본 의무기록지도 조작돼 있었다. 영상을 보면 예강이 맥박수를 보여주는 기기는 분당 130회를 떨어진 적이 없는데, 80회로 적혀있었다. 항의하자 실수로 잘못쓴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병원이 아니었어도 예강이는 떠날 아이였다고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딸을 잃었다.

“3가지를 꼭 이루겠다고 예강이에게 약속했는데 아직 하나밖에 못했어요.”
제 2의 예강이가 나오지 않도록 3가지를 이루기 위해 나섰다. 첫 번째는 예강이가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야했고, 두 번째는 피해자가 의료분쟁조정원에 중재신청을 해도 병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신청이 일방적으로 각하되는 의료분쟁조쟁법의 개정이었다. 마지막은 레지던트 등 미숙련 의료인에 의해 환자의 고통이 클 때 숙련된 의료인으로 교체할 수 있는 환자 권리를 찾는 것이었다.
진실규명을 위해 2년 넘게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19일 처음으로 공판이 열렸다. 가기 전부터 두렵고 밥도 안 들어갔다. 생후 6개월 된 예강이 동생을 남편에게 맡기고 처음 재판정이란 데를 갔다. 1분가량 지났을까 했는데 재판이 끝났다. 병원 측에서 낸 자료에 대한 사실조회를 요청했지만 판사는 받아주지 않았다. 의료사고 소송이 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증거가 다 있는데 의사들의 감정평가 결과는 병원 측 손을 들어주는 편이 많았다.
레지던트 등 미숙련 의료인에 대한 환자 보호는 여전히 먼 길이다. 제대로 된 요추천자 자세조차 모르는 레지던트가 예강이를 시술했다. 제2, 제3의 예강이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크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예강이를 떠나보낸 2명의 레지던트가 사과만 했다면 아마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수칙도 지키지 않고, 이미 축 늘어진 예강이 상태도 체크하지 않고 뭐가 급한지 검사에만 몰두했던 2명은 그 뒤로 보지 못했다. 검사 당시 전문의가 2명을 감독만 했어도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예강이법으로 시작됐다가 최근에는 신해철법이라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은 개정돼 오는 11월30일 시행된다. 11월30일은 예강이 생일이다. 그나마 이번 예강이 생일에는 조금 떳떳한 마음으로 예강이에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예강이 집 근처 전봇대에 예강이가 다니던 서신초등학교 푯말이 붙어있다. 어지럽게 얽힌 전깃줄처럼 예강이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한 싸움은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하고 똑같아요. 사과하고 진실 규명하면 되는데 병원은 그렇게 안해요.”
예강이 소송을 맡은 이인제 변호사는 예강이 사고를 세월호에 비유했다. 300명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2년 넘게 아직 진실은 규명되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2014년 6월 예강이 엄마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은 진행형이다. 의료기록을 조작한 의료진도 형사고발한 상태다. 법원에서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병원 측은 거부했다. 병원은 예강이의 직접 사인은 요추천자시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병원 측 대리인은 대형로펌이다. 예강이 1심 선고일은 11월9일이다.
유하는 예강이를 많이 닮았다. 예강이가 엄마아빠 힘들지 말라고 준 선물이다.

“예강이가 저한테 아기를 안겨주고 떠나는 꿈을 꿨어요. 그리고 자기는 낡은 슬리퍼를 신고 가더라구요.”
예강이 유품은 아직도 집안 한쪽에 있다. 예강이가 치던 피아노 위 사진 속에서 예강이는 피아노를 치며 앉아있다. 예강이가 하늘나라간 뒤 엄마가 2번의 생일날 선물해 준 털모자와 빨간구두가 사진 앞에 살포시 놓여있다. 예강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 두 살 터울인 예강이 오빠가 아프면 겁부터 덜컥 난다. 병원에 가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예강이 동생 이름은 유하다. 지난 4월 태어났다. 예강이를 많이 닮았다. 아무래도 예강이가 엄마아빠 이제 그만 힘들어하라고 준 선물 같다. 유하를 안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 나는 엄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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