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비통 가방 같은 ‘꽃그림’ …실수요자에게 인기

135회 서울옥션 경매에서 나온 황염수 작 '장미'. 이런 10호 이상 크기 작품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서울옥션 제공


“사모님∼, 예쁜 꽃그림 나왔어요.”

P화랑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던 Y씨가 해준 얘기다. 한 신진 작가의 개인전 개막일이 코앞에 닥쳐 소매를 걷어붙이고 준비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제법 큰 화랑인데도, 화랑 대표는 실험적인 작품하는 하는 신진 작가를 발굴해 키우는데도 열심이었다. 직원에게는 무서운 호랑이 같았지만, 컬렉터에게는 ‘연한 배’ 같은 상사가 콧소리를 섞어가며 전화로 작품 세일즈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래 유망주에 대한 기획전을 여는 등 화랑으로서의 본연의 일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장사가 안 되니까 딜러가 돼 시중에서 잘 팔리는 그림을 거래하는 이중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훗날 미술사에 남을 참신한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꿈이었던 미술평론가 지망생인 Y씨는 “결국은 장식하기도 좋고, 자랑하기도 좋은 유명 작가의 꽃 그림이 잘 팔리는구나”하는 생각에 꽤 씁쓸했다고 회고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Y씨가 그후 화랑을 그만두고 학자의 길로 돌아선 데는 그 전화사건의 여파도 있었다.

그 화랑 대표가 권했던 꽃그림 화가는 ‘장미의 화가’로 불리는 황염수(1917∼2008)씨다. 평양 출신으로 1960년대 중반 장미원에서 본 장미에 매혹된 뒤 40여년 동안 주로 장미를 그려 그런 별명이 붙은 화가다. 서울옥션, K옥션 등에서 아주 인기 있는 그의 작품은 10호 이상만 돼도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 1∼3호짜리 소품도 많아 여성 컬렉터들이 화장대 옆에 걸어두고 싶어 하는 ‘보석 같은 그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

황염수의 장미꽃 그림이 인기를 얻는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작품성을 논외로 치자면 ‘거실 효과’가 강력하게 작동하지 않았을까. 온 가족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집안에 거는 그림이라면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야 하고, 장식적인 효과도 있어야 한다. 이른바 꽃 그림을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일 것이다. 꽃 그림 장르는 옷으로 치자면 빨강, 검정색, 감색, 흰색, 회색 등 기본 색상일 수 있다.

거기다 황염수의 장미꽃 그림은 미술시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려 본 사람이라면 들어봄직한 이름이다. 작가 인지도, 퀄리티가 주는 품격 등은 루이뷔통 가방이 갖는 성격과 비슷하다. 황염수의 장미꽃 그림은 하나의 브랜드니까. 황염수의 장미꽃 그림을 거실에 걸어뒀을 때 집을 찾아온 손님이 ‘황염수거잖아!’하고 알아볼 때 느끼는 쾌감이라니!

만약 작품 사이즈를 아주 줄인다면 이런 인기작가의 작품도 가질수 있다. 에디션이 있는 판화를 사는 것도 방법이다. 영국 현대미술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판화를 찾는 사람이 많은 건 그런 이유다. 이건 나의 작품 구입 예산 500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범주다.

#혐오스러워도 문제작이라면  어떡하지?

그런데 작품을 많이 산 컬렉터들은 좀 달랐다. 이들은 미술사에 남을 그림을 소장하려는 미술관 같은 태도로 작품 컬렉팅에 접근한다. 저렇게 혐오스러운 그림을 왜 살까 싶은 그림도 시대적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과감하게 산다. 물론 이들의 그림 구매 목적에는 언젠가 되팔 걸 생각하는 투자자로서의 심리도 작용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장에서 인정받기 전에 그런 그림을 산다면? 이는 자신의 안목에 대한 신뢰, 이에 따른 일종의 모험이기도 하며 진정한 후원의 마음 같은 것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1980년대∼90년대 민중미술 작품을 대규모로 수집한 고 조재진씨가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그는 1980년대 초반,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민중미술 작품을 구입했다. 민중미술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함께했던 현실참여 미술이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노동자들의 저항, 수탈당하는 농민 등이 단골 주제다. 최루탄 시위현장에 대형 걸개그림으로도 걸리는 등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같이했다. 선동적인 주제, 거칠고 원색적인 표현 때문에 정권으로부터 탄압받았다.

1985년께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고르던 중 전시장 안으로 최루탄과 함께 공권력이 투입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은 물론 컬렉터들로부터도 외면받은 미술 장르였다. 조씨는 민중미술 화가들의 생활고를 덜기 위해 그림을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미술계에서 모더니즘과 양대 산맥을 이루던 민중미술 작품에 감동하고 그 미술사적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수집했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아내 박경림씨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집안에 걸어놓으면 무서워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제가 꺼려했어요. 그러면 오히려 그림이란 게 강한 기운이 있어야 하지 하셨지요.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참 좋아하셨지요.”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르바르트 뭉크의  ‘절규’는 지금 1000억원을 넘지만,  보고 있노라면 불안과 공포가 파도처럼 엄습한다. 그런 그림을 어떤 초보 컬렉터가 지갑에서 꺼내서 살 것인가. 절대 거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민중미술은 올해 서울시 산하 서울시립미술관에 민중미술 상설전시실이 생기며 제도권에 당당히 편입했다. 1980년 서울에서 열린 ‘현실과발언’ 전시회를 계기로 민중미술이 출범을 선언한 지 36년 만이다.
오윤 판화 '칼노래' , 지난해 12월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그의 작품 '칼노래'는 추정가의 3배가 넘는 4800만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제공

민중미술은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도 소개돼 ‘민중아트(MinjungArt)’라는 한국명이 고유명사로 정착될 만큼 전 세계에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한 성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인 오윤의 판화 ‘칼노래’는 치열한 경합 끝에 추정가의 3배가 되는 4800만원에 낙찰됐다. 서울시립미술관에 38억원 어치 상당의 민중미술 작품을 기증한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은 “그 때는 개인전에 나온 작품 모두 사도 500만원도 안되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한 시대의 획을 그는 미술장르지만, 그만큼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미술 흐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500만원으로 메디치가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맛보는 것은 어떨까. 젊고 유망한 작가를 감별해 내 그들의 작품을 사주며, 겨우 500만원이지만 르네상스 문예부흥을 이끈 메디치가라도 된 듯한 기분에 젖어보는 것이다.

(사)현대미술관회 회장을 맡아 국립현대미술관을 후원하는 컬렉터들의 모임을 이끄는 이성락(78) 가천대 명예총장. 그가 그랬다. 피부가 의사로 전문직에 종사하며 40대 초반에 컬렉션을 시작했던 그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다니며 샀다. “제 경제력으로 (한국 최고 작가인) 김환기를 사겠어요. 그렇다고 (고미술 최고 작가인)겸재 정선을 살 수 있겠어요.” 자금력의 한계 탓에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 신진 작가들이었던 것이다.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아트북스)를 쓴 일본인 컬렉터 미야스 다이스케(53)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SK텔레콤 같은 일본의 이동통신회사 인사과 과장인 그는 월급쟁이라는 처지 때문에 유명작가의 작품을 사기는 힘들어 처음부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 모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작가 정연두의 작품도  막 뜨기 시작할 때 구입했다고 한다. 30세에 첫 구매에 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되팔지 않고 400여점을 모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신진작가의 작품을 사모아 그에겐 ‘1000달러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20배는 다반사고, 100배까지 오른 작품이 있다고 하니 놀랠 수밖에.

그러나 나의 메디치가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그런 컬렉션 성공담보다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과 불안이다. 올 봄 서울 삼청동 원앤제이 갤러리에서는 30대 작가들의 ‘한숨과 휘파람’ 전이 열렸다. 금혜원, 권경환 두 작가의 2인전이다. 두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주(移住)다. 금혜원씨는 도시의 버려진 텅 빈 건물, 그 안의 녹슨 환풍기 등을 담은 사진작품을, 권경환씨는 철제 앵글들이 가진 변형 가능성을 재료 삼아 조각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만들어 전시했다. 사진과 설치로 두 사람이 선보인 장르는 다르지만, 이주가 일상화된 도시인의 불안이 공통적으로 읽히는 전시였다. 그런데 한숨과 휘파람이라? 전시 제목은 작품들의 주제가 아니라 작가들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신진 작가인 자신들의 고민을 함축하는 두 단어로 구성한 것이다.

 “하고 싶은 미술 작품을 할 때는 신이 나 휘파람이 절로 나오죠. 그러다가도 이걸 해서 먹고 살수 있을까 생각하면 이내 한숨이 나와요. 그래도 팔리든 팔리지 않든 내가 하고 싶은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싶은, 미술사에 남을 작품을 하고 싶은 게 우리 작가들의 꿈이에요. 그치?” 

금혜원 작가가 동의를 구하듯 권경환 작가를 돌아보며 던진 ‘그치?’라는 말에 순간 코끝이 찡했다. 서로를 의지 삼아 미래의 불안과 싸워가는 두 사람, 생애 첫 컬렉션이 그런 젊은 작가들을 위해 소박한 방석 하나 내어주는 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미술 현장을 취재할 때는 주로 유명작가들을 만난다. 더러 ‘미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불안을 달래가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올곧게 추구하는 젊은 작가들도 보게 된다. ‘제발 보통으로만 살라’는 어머니의 지청구를 듣고도 도대체 팔리지 않는 설치작품만 하게 된다는 박혜수(42) 작가, 버려진 집들에서 뜯어낸 오래된 벽지들을 물에 불려 뜯어내 염색 천처럼 늘어놓는 작업을 하는 연기백(41) 작가 같은 이들이 그런 예다. 모두 송은아트큐브 개인전에서 만난 작가들이다.
연기백 작가의 설치 작품 '교남 55 + 가리봉 137', 도배지, 나무, 가변크기, 2015년작.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연기백 작가는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강사 등 다른 일을 해서 밥을 먹고 살 작정이다. 미술 작품은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말하는데, 음성이 낮으면서도 결연했다.
10년 후 오를 그림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고민하고, 작가정신이 살아 있는 작품은 당장 팔리기 좋으라고 대중의 구미에 맞춰 하는 작품과는 출발부터가 다를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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