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 캠프 관계자(오른쪽)가 자원봉사자들에게 유권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선거운동을 어떻게 할지 요령을 알려주고 있다. 그레이트폴스(버지니아)=전석운 특파원

29일 낮 12시쯤(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 북쪽 그레이트폴스의 한 주택가에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 40여명이 모였다. 인근 지역의 유권자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클린턴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에 참여하기로 한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런데 표정은 어두웠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이메일 수사재개가 어떤 파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캠프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이메일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묻거든 논쟁을 피하라”고 당부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캠프의 자원봉사자 크리스타 배리(23). 크레이트폴스(버지니아)=전석운 특파원

한 자원봉사자가 “이미 불기소 방침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답변하면 되지 않겠냐”고 거들었으나, 캠프 관계자는 “우리도 아직 아무런 지침을 받지 못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클린턴 캠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자는 유권자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캠프 관계자에게 신분을 밝히고 현장 동행을 요청했다. 연방정부에서 일하다 11년 전 퇴직했다는 앤(67·여)이라는 한 자원봉사자가 기자의 동행취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앤은 다만 자신의 성을 밝히지 말고, 사진촬영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캠프의 자원봉사자들이 빈 집에 붙인 선거안내문. 클린턴 캠프 유권자에게 선거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투표율이 높으면 클린턴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레이트폴스(버지니아)=전석운 특파원

그레이트폴스는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 경계를 따라 흐르는 포토맥강 남쪽의 고급주택가다.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앤의 자동차에 올라탄 뒤 인근지역을 함께 돌아보니 담장이 없는 단독주택들 사이로 축구장 절반 만한 크기의 잔디밭이 나타나는 곳이 적지 않았다.

이런 마을에서 화창한 토요일 낮에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고 집을 지키고 있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함부로 남의 집 잔디를 밟고 들어가 현관문을 두들겼다가 침입자 취급을 받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앤이 “선거철에는 방문유세가 흔하기 때문에 너무 겁먹지 말라”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명단은 2012년 대선에 투표를 한 민주당원들의 이름과 주소며 공개된 자료라고 했다.

첫 30분은 허탕의 연속이었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가 있는 걸로 봐서는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도 같은데 반응이 없었다. 이사를 갔거나, 잘못된 주소도 있었다. 현관문을 열다 말고는 손사레를 치며 그냥 돌아서는 백인 남성도 있었다. 앤과 함께 2시간 남짓 30여 가구를 방문하는 동안 20여명을 만나는데 그쳤다.

문을 열어준 사람들은 대부분 투표 참여의사를 확인했고, 클린턴 사진이 인쇄된 선거홍보물을 받아들었다. 앤이 “당신의 한 표가 소중하다”고 말하자,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클린턴을 찍을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투였다. 어떤 지지자는 낮은 목소리로 “나는 클린턴을 찍을 건데, 아내가 트럼프 지지자”라며 말하고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급히 문을 닫았다.

민주당원이지만 클린턴을 찍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국방부에서 근무한다는 한 40대 남성은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말로 지지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앤은 집 앞에서 낙엽을 치우던 이 남성과 10분 정도 대화를 나눴지만 설득에 실패했다.

그는 “국방부 동료들은 실수든 고의든 기밀을 유출하다 적발되면 엄히 처벌받는다”며 “그러나 클린턴에 대한 처분은 너무 관대했다”고 말한 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클린턴 캠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클린턴을 찍겠다고 말한 한 40대 여성도 “하필 이 시기에…”라며 “FBI 수사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짜증스런 목소리로 “공화당의 음모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앤은 발길을 돌리면서 “클린턴이 대선에서 이기기는 하겠지만 민주당이 상원 선거를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ABC방송이 발표한 여론조사는 클린턴과 트럼프의 전국단위 지지율이 2% 포인트 격차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나흘 전 같은 조사에 비하면 무려 10% 포인트 줄었다.

지난 25일 ABC방송조사에서 클린턴의 지지율은 50%로 트럼프(38%)를 12% 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불과 나흘 만에 클린턴의 지지율은 47%로 후퇴한 반면 트럼프의 지지율은 45%로 껑충 뛰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스윙스테이트로 꼽히는 버지니아에서는 클린턴이 트럼프를 8% 포인트(리얼클리어폴리틱스 평균) 차이로 앞서고 있지만 최근 들어 지지율 격차가 조금씩 줄고 있다.

그레이트폴스(버지니아)=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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