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94> 라스푸틴 영화들 기사의 사진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하지만 발단은 최순실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최태민씨다. 최씨는 ‘목사’로 불려왔지만 목사가 아니다. 기독교와 불교, 천도교를 오락가락하는가 하면 좋게 말해 신흥종교, 나쁘게 말해 사이비교의 교주다. 그것도 단명한. 그런 그가 최고 권력자의 딸을 끼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제정 러시아 말기 사제가 아니면서도 ‘승(僧)’으로 불리면서 나라를 말아먹었던 사이비 사제 라스푸틴과 비교된다.

‘요승(妖僧)’ ‘괴승(怪僧)’ ‘광승(狂僧)’이라는 호칭이 따라붙곤 하는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은 신학교 등 학교 문턱이라고는 전혀 밟아본 적이 없는 시베리아 오지 농부 출신 신비술사(병을 낫게 해주는 등 우리나라의 무당과 흡사)였다. 그는 기이한 ‘초능력’으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비의 총애와 신뢰를 등에 업고 마음껏 전횡을 부리다 결과적으로 공산혁명에 의해 러시아 황실이 붕괴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 과정은 이렇다.

원래 니콜라이2세 부부는 딸만 내리 넷을 낳은 후 황위 계승자가 없어 고심하다 기존 종교는 물론 우리나라의 무당이나 사이비 종교인들과 비슷한 온갖 신비술사들에게 매달렸다. 그래도 그 같은 노력이 효과를 보아선지 1904년 겨우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아들은 로마노프 왕가의 유전병인 혈우병에 시달렸다. 니콜라이 2세 부부는 또 다시 종교인과 신비술사들에게 아들의 치유를 간구하게 됐다. 이때(1908년)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바로 신비에 싸인 마법사 혹은 초능력자로 정체가 모호한 라스푸틴이었다. 라스푸틴은 보통 러시아의 국교인 그리스정교의 사제로 여겨지지만 그는 성직자나 사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어느 종교의 어떤 종단에도 소속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리스 정교의 성인(聖人)이라고 자처하고 다녔고 장로라고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라스푸틴은 모두 실패한 일에 성공했다.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유한 것. 이에 대해서는 온갖 설이 분분하다. 그에게 실제로 육신의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었다는 주장부터 최면술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에 치유는 속임수였을 뿐 실제로 고쳤는지 알 수 없다는 설까지. 그래도 이로 인해 황비의 신임을 한 몸에 받게 된 라스푸틴은 황비를 통해 의지가 박약한 황제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11년 총리 표트르 스톨리핀이 암살된 후 의지처를 잃어버린 황제 부부는 라스푸틴에게 더욱 빠져들었다. 라스푸틴은 황비의 개인 고문으로서 모든 권력을 틀어쥐었다.

이처럼 일개 시베리아 농부에게 황실과 국가가 농락당하는데 분개한 귀족 등 군주주의자들은 러시아의 군주제와 국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라스푸틴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결국 그를 암살한다. 1916년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이듬해 공산혁명이 일어남으로써 러시아 군주제는 종언을 고한다.

라스푸틴 사후 그에 관한 저술 등 창작물 제작은 다소 과장하자면 하나의 작은 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만큼 거대한 제국을 붕괴시킨 이 신비에 싸인 마법사, 신비술사는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영화계 역시 이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그의 죽음 후 불과 1년만인 1917년에 벌써 그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The Fall of the Romanovs)’이라는 미국산 무성영화다. 이 영화에는 특히 라스푸틴 생전에 그의 일종의 라이벌이었던 그리스정교의 사제 일리오도르(본명 세르게이 트루파노프)가 실명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으나 필름이 사라져 이제는 볼 수 없다.

그 뒤 1932년에는 미국의 MGM이 제작한 ‘라스푸틴과 황비(Rasputin and Empress)’가 나왔다. 이 영화에는 당시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배리모어 일가가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라이오넬 배리모어가 라스푸틴, 누이 에셀 배리모어가 알렉산드라 황비였다. 1966년에는 영국 공포영화의 명가(名家) 해머영화사가 ‘광승 라스푸틴(Rasputin, the Mad Monk)’을 내놨다. 드라큘라로 이름을 떨친 크리스토퍼 리가 라스푸틴역을 맡았다. 그래선지 정통 역사물이라기보다 다분히 공포 괴기물 같은 분위기였다. 재미있는 후기로는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퍼 리가 어린아이이던 1920년대에 라스푸틴의 암살 주모자인 니콜라이2세의 조카사위 펠릭스 유수포프를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라스푸틴 영화는 1971년작 ‘니콜라스와 알렉산드라’로 이어진다. 프랭클린 J 샤프너가 연출한 이 영국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로마노프 왕조의 최후를 주로 다룬 만큼 니콜라이 2세 부부가 주인공이고 라스푸틴은 조연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초 라스푸틴 역을 제의받은 피터 오툴은 제의를 거절했고 라스푸틴 역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추천을 받은 무명의 영국 연극배우 톰 베이커에게 돌아갔다. 베이커는 나중에 TV극 ‘닥터 후’의 닥터역으로 유명해진 배우로 이 영화에서 골든글로브 신인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호연을 보였다. 당초 제작진은 피터 오툴 외에 율 브리너와 말론 브랜도를 라스푸틴 역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영화의 주역인 알렉산드라 황비역으로는 영국 연극계의 스타였지만 영화에는 첫 출연한 재니트 서즈먼이 열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원래는 그레이스 켈리나 오드리 헵번, 줄리 크리스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역을 맡을 뻔 했다.

라스푸틴 이야기는 TV드라마로도 제작됐다. 1996년 미국의 유료채널 HBO가 만든 미니시리즈. 제목은 ‘라스푸틴: 운명의 어두운 종복(Rasputin: Dark Servant of Destiny)’이었다. 울리 에델이 연출하고 라스푸틴으로 영국배우 앨런 리크먼, 니콜라이 2세로 이언 맥켈런, 알렉산드라 황비로 그레타 스카키가 출연해 세 사람 모두 골든글로브상을 받았다. 드라마,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 및 남녀조연상이었다. 아울러 같은 부문 작품상도 수상했다. 라스푸틴을 다룬 영상물로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과 미국 외의 나라에서도 라스푸틴 영화가 만들어졌다. 2010년에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만들어진 ‘라스푸틴’은 프란체스코 카브레라라는 배우가 라스푸틴역을, 국제스타인 프랑코 네로가 해설을 맡았다. 이어 2011년에는 프랑스가 러시아와 합작으로 TV용 영화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톱배우 제라르 드파르뒤가 라스푸틴역을, 알렉산드라 황비역으로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파니 아르당이 기용됐다. 물론 러시아에서도 라스푸틴 이야기가 영화화되지 않을 리가 없어 2014년 ‘그리고리 R'이란 제목으로 TV드라마화됐다. 라스푸틴 역은 프-러 합작판에서 니콜라이2세역을 했던 블라디미르 마쉬코프가 맡아 이채를 띄었다.

라스푸틴 이야기는 앞으로도 또 만들어질 예정이다. 워너 브러더즈사가 시나리오작가 제이슨 홀로부터 시나리오를 구입했으며 타이틀 롤로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를 염두에 두고 준비중이라고 한다.

영화뿐만 아니다. 그외의 장르에서도 라스푸틴 이야기는 적지 않게 다뤄졌다. 우선 1958년에는 ‘라스푸틴의 최후(Rasputin's End)’라는 제목으로 3막짜리 오페라가 만들어졌고 1997년에는 폭스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에 악당역으로 라스푸틴이 등장했다. 목소리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브라운 박사였던 크리스토퍼 로이드. 게다가 2013년에는 영국 BBC가 ’위대한 생애‘ 시리즈의 하나로 라디오 연속극으로 만들었으며 아울러 같은 해 웨일스에서는 ‘라스푸틴, 혁명을 향한 물결(Rasputin, Ripples to Revolution)’이라는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다양한 창작물과 많은 연구로 이제까지 밝혀진 라스푸틴에 관한 사실들을 몇 개 모아보면 이렇다.

①라스푸틴은 성직자도 사제도 아니지만 성서의 독특한 해석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②라스푸틴은 시베리아 방언을 썼으며 주어나 술어를 뺀다든지 하는 식으로 절대 완성된 문장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한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것이었다.

③어떤 방법인지는 분명치 않아도 육신의 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으로 널리 믿어지고 있다. 특히 알렉산드라 황비로부터는 그에 관한 절대적 믿음을 얻었다.

④그는 지적이고 야심이 있지만 동시에 영적이고 게으르며 특히 관대하지만 비도덕적인 품성이 복합적으로 혼재돼있는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예언가이면서 열성적인 향락주의자라는 특성을 모두 가진 비정상적인 존재였다.

⑤술과 여자 등 유흥에 흥청망청 돈을 썼으면서도 축재에는 관심이 없음을 과시했다. 실제로 그는 돈이 생기는대로 주위에 마구 뿌려댐으로써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었다.

⑥당시 러시아의 좌파에게 라스푸틴은 민주주의의 적으로, 반면 우파에게는 군주제를 위태롭게 하는 인물로 몰려 양쪽 모두에게 경원 당했다. 결국 황족과 귀족 등 우파가 그를 암살했다.

⑦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성직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라스푸틴을 훌륭한 인물로 본다. 반면 일각에서는 그를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이나 폭군이었던 이반 뇌제(雷帝)와 동격의 미친놈으로 간주한다.

사족: 라스푸틴에게는 1남2녀가 있었다. 그 중 아버지와 함께 황도(皇都)에서 살았던 큰딸 마리아는 라스푸틴 사후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갔다가 1935년 미국으로 이주해 서커스단의 호랑이 조련사로 살았다. 최순실과 다른 점이다. 다만 그는 나중에 세 편의 수기를 써서 아버지에 대한 이런 저런 나쁜 이야기들이 적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라스푸틴을 거의 성자처럼 묘사했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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