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병원을 갔다 오면 병이 난다. 엄마는 왜 자꾸 병원에 데리고 가냐 따지는 인영이에게 교수님이 너를 좋아해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며 하루종일 인영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진이 빠진다고 했다. 아빠는 요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터미널에서 아내와 인영이를 배웅하고 마중 나가는 역할만 하고 있다. 어제 병원에 다녀온 아내가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다고 하길래 마스크 하고 자라는 말만 남기고 먼저 잔 거 같다. 아내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나보다. 아내의 일기를 보니 병원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아픈 아이들은 병원 복도에서 지루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아이의 아픔이 무뎌지지 않는다고 매번 더 아프다고 적었다. 어느새 그 힘든 일상을 잃어버린 듯 요즘은 살만하다고 밖에 떠들고 다니는 아빠는 아직 철이 안들었다. 
채혈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인영이. 앞사람이 바늘에 찔려도 불안해한다. 항암이 있는날은 가슴포트에 바늘을 꼽기때문에 따로 채혈을 안해도 되지만 병원은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채혈실로 아이를 내몬다.

아내의 일기...
유지 1차기간중 어느덧 4주의 시간이 지나고, 오늘은 빈크리스틴을 맞는 날이었다.
집중치료때보다 오늘 맞는 빈의 용량이 적기 때문에 관계자들(간호사들과 엄마들)은 꼬마빈 맞는 날 이라고 표현한다.
지난 1주일 동안 병원가냐는 질문도 잊은채 즐겁게 지낸 인영이는
아침부터 서둘러 옷을 입는 나에게 어디가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울리지 않으려고 거짓말 하는 것은 피하자고 결심했지만 쉽지 않다.
아침부터 울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응 엄마 서울가려고... 인영이도 같이 갈거야"
"병원가는거지?""오늘은 아픈거 없어?" "주사 안맞아?"
아이의 눈엔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거 같았다.

"응 아픈거 없을거야 아마도...주사도 안맞아도 되는지 엄마가 교수님께 물어볼게"
"왜 난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가?"
"인영이가 지금은 안아프지만 애기때 많이 아팠어. 그래서 지금 건강하지만 교수님이 더 건강해지라고 자꾸자꾸 검사해주고 예방주사도 놔주시는거야"
4시간이 넘는 기다림끝에 항암 주사를 맞다 잠든 인영이.

벌써 수백번 반복한 대화를 오늘도 처음처럼
여전히 가슴이 시린채로 주고 받으며
진료예약 4시간전 고속버스를 탔다.

꼬마 빈에 꼬마 수액이지만 어쨌거나 항암이니
항암중 채혈은 포트에서 한다고 병원규정집에서 본대로 오늘 채혈도 포트에서 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병원에 왔건만,
입원동기 H엄마의 말대로 꼬마빈은 항암으로 쳐주지도 않는건지
채혈은 BMT센터가 아닌 채혈실에서 해야만 했다.
오늘 팔에서 채혈을 안할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던 인영이는 오늘도 팔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슬픔에 반항도 안하고 시무룩하기만 했다.
오늘 항암인데도 안에서 안해주냐고
여러번 인영이 채혈을 해주셔서 낯이 익은 채혈실 선생님조차도 놀라셨지만
인영이에게만 적용되는 규칙도 아니고
늘 그렇듯 이곳의 룰은 병원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니
야속하더라도 따르지 않을수 없는 일.

그렇지만, 어린 아이가 한번이라도 바늘에 덜 찔리게 하고 싶은 게 정말 엄마 욕심일까.
순응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자꾸만 화가 났다.
어차피 항암을 위해 포트 찌를거면서
포트로 채혈 좀 해주는게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오후 3시에 예약된 진료를 위해 오전 11시에 집을 나섰다.
오후 1시 30분쯤 채혈을 하고 외래병동을 어슬렁거리다가 늦은 점심을 먹이고 시간에 맞춰 진료실 앞에 대기했지만
역시 ...오늘도 지연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진료를 봤다.
그래도 수치가 안정적이니 한시름 놓았다.
그간 매주 외래를 왔는데
다음번 외래는 2주뒤에 오라고 하셔서 나도 모르게 싱글벙글 뛸듯이 기뻤다.

진료지연덕에 주사실 입실 마감시간 무렵에야 간신히 들어간 덕분에 베드가 여유 있는게 그래도 다행이라고
나보다 더 기다림에 지친 인영이를 달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진료 받고서도 빨라야 30분쯤 뒤에 항암제가 준비되기 때문에
베드에 우선 짐만 던져두고
원내약국으로 가서 1주일간 먹을 약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곳도 엄청나게 지연.

기다리며 인영이가 진료받고서도 왜 바로 집에 가지 않냐고,오늘 주사 맞는거냐며 재차 물어 왔지만
"글쎄 엄마도 모르겠네.이따 엄마가 물어볼게"라고
대답을 피할수 밖에 없었다.
대기 30분 넘어서야 약을 받았다.

"주사맞을까봐 걱정돼"
인영이의 말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우리 인영이는 수없이 바늘에 찔려왔고 앞으로도 정말 많이 찔릴텐데
아프지 않기위해 너에게 이러는건데
그걸 너에게 어떻게 이해시킬까
아니 설혹 네가 이해해준다해도
주사바늘이 아픈게 당연한건데
더 아프지 않기 위해 지금 이 고통을 수없이 반복시켜야한다는게
움직이지 말라고 널 꽉 붙드는게
엄마도 너무 싫어 아가야.

정말 가혹하다.
정말 이 병이 싫다.

한달만에 포트에 바늘을 꽂을때 인영이는 서럽게 울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힘을 줬다.
너무 가여워 부둥켜 안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이런 아픈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흔한 일상이다.
무뎌지지 않는다.
매번 더 아프다.
병원가는 날은 엄마도 예외적으로 인영이에게 킨더조이를 사준다. 인영이가 병원에 가는 유일한 이유다.

오늘은 주사 두개나 맞았으니까 엄마가 킨더조이 두개 사줄게
달래본다.
울던 인영이는 잠이 들었다.

꼬마항암이 끝나고 집으로 가야하는데 가슴바늘을 빼도 흐느끼기만하고 깨지 않는 깊이 잠든 인영이를 안고
터미널까지 열심히 걷는다.

병원 앞 긴 횡단보도를 건널때 우리보다 앞서 걸으며 담배피는 남자를 만난다.
담배연기 피해 앞질러 걷고 싶지만 인영이를 안고 더 빠르게 걷는게 쉽지 않다.
횡단보도에서 멈출수도 없어
있는 힘을 다해 제치고 걷는데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을거 같다.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꼭 여기서 담배연기 휘날리며 걸어야하는지
주위에 어린아이가 있는지 한번쯤 눈달렸으면 쳐다나 보라고 외치고 싶다.

화나는 일이 한두개던가.
내게 언제부턴가 병원에 다녀오는 것은 화를 참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기다림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일이다.
내가 살면서 이토록 많이 참고 기다리며 힘을 냈던 적이 있었던가.

힘없이 안겨있던 인영이는 터미널 편의점 앞에서야 입을 연다.
"엄마 나 주사 두개 맞았으니 킨더조이 두개나 사준다며..."

그제서야 웃음이 난다.
그럼 당연히 사줘야지
킨더조이 두개와 컵커피 한개를 사들고
올라탄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

"엄마도 커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난 킨더조이가 정말 좋아"
서로를 위로한다.

"엄마 난 오늘 또 호텔가는 줄 알았어
바늘 꽂아서...
근데 집에가니 정말 좋아
우리집이 제일 좋아"

그동안은 하루짜리 항암이 거의 없었고
항암하면 기본 1주일이었기 때문에
포트에 바늘 삽입하면
아! 집에 못가는구나
인영이는 그렇게 생각했었나 보다.

서울의 반짝거리는 불빛이 멀어지고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그제서야 맘이 놓인다.
어두운 길 몇개 지나고 나면
따뜻하고 환한 우리집이 나온다.
내 아이의 자그마한 손을 꼭 잡아본다.
인영이를 데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에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진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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