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병원이다. 지난 7월 시행된 환자안전법에 따르면 이 병원은 전문의 또는 경력 5년 이상의 의사 면허 취득자나 간호사 중 2명을 환자안전 전담인력으로 배치해야 한다.
10일 오후 2시, 기자가 아닌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4살 백혈병 아이의 보호자로서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환자안전 전담인력과 상담하고 싶었는데 병원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도 환자안전법 시행에 대한 내용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문의가 아닌 미숙련 레지던트에 의한 골수·척수검사의 문제점에 대해 상담하고 싶었다. 인영이는 지난번 골수검사에서 이름도 모르는 레지던트에게 시술을 받으며 고통은 고통대로 받고 골수 채취에 실패했다.
상담 직원은 그런 제도가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의 설명 끝에 상담사는 연락처를 남기면 확인 후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2010년 5월 백혈병을 앓던 9살 종현이는 레지던트가 정맥에 맞아야 할 항암제 ‘빈 크리스틴’을 허리뼈에 놓는 의료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 3년간의 길고 힘든 항암치료를 모두 마치고 마지막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로부터 2년 뒤 다른 병원에서 종현이와 똑같은 의료사고가 발생해 또 한명이 목숨을 잃었다.
‘종현이법’으로도 불리는 환자안전법이 만들어진 계기다. 이 법은 제 2의 종현이가 생기지 않도록 의료사고가 날 뻔 했거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기관이 이를 공유해 똑같은 의료사고를 막자는 취지의 법이다. 지난 7월29일 시행된 환자 안전법은 시행된 지 100일이 넘었다.
환자안전사고보고시스템은 현재까지 유명무실하다. 보건복지부는 확인해주고 있지 않지만 시행 100일 지난 지금까지 주의경보를 발령한 적은 단 1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환자안전법은 2000여개 중·대형 병원에 환자안전을 담당할 전담인력을 두게 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발생할 뻔 했거나 발생한 의료사고를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인증평가원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 중 새로운 유형이거나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주의경보 등의 형태로 전체 의료기관에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정말 이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을까. 얼마나 신고가 됐고, 전담인력 배치는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 의료기관인증평가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복지부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법을 담당하고 있는 복지부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환자안전법 시행 이후 신고가 몇 건 들어왔나요?”
“대충 집계를 하고 있는데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대형병원에 환자전담인력 배치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도가 시행된 지 몇 개월 안됐기 때문에 초반 숫자를 가지고 얘기가 나왔을 때 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신고 건수가 얼마 없으면 그걸 보완하는 방안을 연구해야지 그냥 숨기는 게 정답인가요?”
“조금 지나서 발표하겠습니다. 보고 건수 자체도 비밀일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환자안전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정책성 필요성이 생기면 발표를 하겠습니다. 하여튼 제도가 어느 정도 세팅이 되고 안정화가 되면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

‘세팅이 되지 않았다’는 담당 공무원 말처럼 환자안전법은 현재까지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이다. 한국환자단체협의회가 간접적으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100일 지난 지금까지 신고 건수는 100건 남짓이라고 한다. 또 유수의 대학병원들조차 전담인력 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해 의료사고로 위해를 당하는 환자 수가 1만9013명으로 추정(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연구결과)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이 시스템은 유명무실한 셈이다.

복지부는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의료사고 보고를 위한 전산화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 내년 예산을 받아 시스템이 깔려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게 복지부 해명이다. 이 법은 3년이 넘는 국회 논의를 거쳐 올해 1월29일 공포됐다. 공포가 된 지 6개월이 지난 7월29일 시행됐다. 그리고 시행된 지 100일이 넘었는데 복지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병원은 환자안전법을 따를 의무가 없다. 자율신고 원칙이기 때문에 의료사고가 나도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배치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복지부에 제재 수단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복지부가 이 법을 만들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게 제재방안이 들어가 의료계가 반발하는 것 아닌가. 복지부는 제재 수단을 만들지 않았으면 매년 시행하는 병원 평가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당근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당근과 채찍 아무 준비 없이 시행해놓고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쉬쉬하는 게 보건정책의 현주소다.
소아백혈병 환아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골수척수검사다. 큰 병원은 한달에 한번씩 돌아가는 미숙련 레지던트들에게 이 검사를 맡긴다. 보호자들은 복불복의 심정으로 이번엔 그나마 잘하는 레지던트가 걸리길 기도할 수 밖에 없다.

환자안전법 5조1항은 ‘모든 환자는 안전한 보건의료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십, 수백 개의 의료관련법 중 최초로 환자가 주어로 들어간 법 조항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의료현실은 환자는 주체가 아닌 객체일 뿐이다. 환자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도 말이다.

p.s 환자안전법 시행 관련 통계치를 분석한 후속 기사를 반드시 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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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아빠다81>기사1. 종현이 예강이 성은이 영준이, 의료시스템의 슬픈 자화상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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