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토라레'의 한 장면.

영화 ‘사토라레’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주인공인 사토미의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고스란히 들리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토미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거짓말을 해도 상대방에게 금방 들통 나고 맙니다.

 평소대로 업무를 봤다고 변명해봤자 사람들은 그가 7시간동안 피부 관리를 받았는지, 굿판을 벌였는지 바로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쉽고 편하게 일해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속으로는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만난 인터뷰이 중 이 말을 입 밖에 꺼낸 사람은 김기풍(32)씨가 처음입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사토미처럼 이 사람의 생각이 들려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감춰진 진실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이 사람은 거짓을 이야기하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기풍씨는 최근 상수역 4번 출구 앞에 파티룸 ‘로프트84’를 연 이유에 대해 “쉽고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아, 완전 솔직.

기풍씨가 지난해 12월 자동차 안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그는 영상을 전공했습니다. 애니콜 엘라스틴 등을 찍은 잘나가는 CF 촬영팀에서 2년 6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새벽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에 퇴근 하는 날이 잦았답니다.

 그러다 사진작가로 전향합니다. 셔터를 누르는 찰나의 표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인물 프로필 사진뿐 아니라 가게 인테리어, 쇼핑몰, 기업행사 사진도 찍습니다.

기풍씨가 2012년 7월 몽골에서 말 위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다.

올 4월에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옵니다. 첫날 찾은 게스트하우스엔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이 묵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어울리며 즐기는 모습이 좋았답니다.

이런 공간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온 뒤 장소 물색에 나섭니다. 처음엔 게스트하우스를 생각했지만 파티룸으로 업종을 바꿉니다. 그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습니다. ‘지옥의 알바’라고 불리는 택배 물류 알바도 했고 건설현장에서 막노동도 해봤답니다. 보드게임방, 편의점, 호프집에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좀 더 한량스럽게 살고 싶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4월에 찾은 일본 오키나와의 게스트하우스.

자고로 한량은 풍류(風流), 즉 음악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제비다방 오상훈씨처럼 말이죠. 기풍씨의 어머니(71)는 1970년대 밴드 드러머였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풍씨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듣고 자랐습니다.

고1 때 록 음악에 빠졌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군 교회 성가대에서 베이스를 쳤습니다.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악기연주를 하고 싶어서 성가대를 했다고 했습니다.

한량의 자질 중엔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는 상수동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짜로 가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공약도 내걸었습니다.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사람들과 관계 맺는 걸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1970년대 기풍씨 어머니(맨 오른쪽)가 밴드 활동을 하던 당시의 모습.

로프트84엔 기풍씨의 경험과 기억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막노동 경험을 바탕으로 건물 페인트칠을 도맡았고, 공간 한쪽에 놓여있는 기타, 피아노, 젬베는 그의 음악사랑을 반영합니다. 
 호프집에서 알바를 했던 그는 로프트84에서도 평일에 술을 팔고 있고, 보드게임방에서 일했던 기억 때문인지 보드게임도 비치해 놨습니다.

“일상을 살다보면 과거를 잊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경험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자나요. 기억은 은연중에 머릿속에 남아 어떻게든 삶이나 행동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숨기고 싶어도 모든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어떤 의미에선 우리 모두가 ‘사토라레’일지도 모를 일이죠.

서울 상수동에 있는 파티룸 로프트84의 옥상.

로프트84의 내부 모습.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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