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96>안녕, 나폴레옹 솔로 기사의 사진
또 하나의 부음이 전해졌다. 느끼한 주걱턱의 사나이, 영원한 나폴레옹 솔로 로버트 본. 영화와 TV를 통틀어 수많은 역할을 연기했고, 이제는 새 세대의 새로운 나폴레옹 솔로도 등장했지만 언제나 나폴레옹 솔로로 기억될 그 배우다.

솔직히 말해 그는 훌륭한 배우이긴 하지만 대배우라고도 명우(名優)라고도 할 수 없다. 존 웨인이나 험프리 보가트, 로렌스 올리비에, 알렉 기네스 같은 위대한 배우들과 견주면 그들과 같은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도 그의 별세가 큰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나름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일종의 ‘시대적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시대적 아이콘으로 만든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1964년부터 68년까지 방영된 TV극 ‘엉클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UNCLE)’의 타이틀 롤 나폴레옹 솔로였다. 천하무적의 스파이 007 제임스 본드 열풍이 세계를 휩쓴 1960년대 본드의 아류로 탄생했지만, 그래서 그의 암호명도 007과 흡사한 0011이고, 또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바람둥이 기질을 유감없이 과시하는 등 본드와 비슷한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냉혹한 본드와 차별화되는 다정하고 유화적인(suve) 스파이상을 창조해냈다. 어쩌면 영화에 비해 폭력 등에서 훨씬 제약요소가 많은 TV극의 스파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이 만들어낸 거칠지 않으면서 어딘지 느끼한 이미지의 스파이 나폴레옹 솔로는 금발머리 찰랑대는 그의 파트너 일리야 쿠리야킨(데이빗 맥컬럼)의 요즘말로 쿨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오죽 인기가 있었으면 에피소드 몇 개를 연결해 극장용 장편영화로 몇 편씩 만들어냈을까.

물론 나폴레옹 솔로 외에도 그가 출연한 기억할만한 영화와 역할들이 적지 않다. 대개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나 캐릭터가 못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다. 우선 그가 찰턴 헤스턴의 ‘십계(1956)’에 이름도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로 영화에 데뷔한 뒤 불과 몇 년만에 폴 뉴먼과 공연한 ‘필리델피아의 젊은이들(The Young Philadelpians, 빈센트 셔먼, 1959)’이 있다. 본은 이 영화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참전 상이용사를 호연해 대뜸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서부극의 걸작 ‘황야의 7인(존 스터제스)’에서 폐병에 걸린 겁쟁이 총잡이를 연기해 공연한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등과 함께 ‘미래의 스타(star-to-be)’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그는 미끈하고 다소 뺀질거리는 외모와 잰 체하는 제스처로 영화에서 미움을 사는 정치인이나 부호 악당 등 부정적 이미지의 사회상류층 인사를 많이 연기했다. 이를테면 스티브 맥퀸의 걸작 형사영화 ‘불리트(피터 예이츠, 1968)’에서는 악역에 가까운 야심찬 정치인 월터 찰머스 상원의원역을 맡았다. 본은 나중에 이 역이야말로 자신이 연기한 역할 중 최고의 것이라고 술회하곤 했으나 당초 대본을 받았을 때는 플롯도 스토리라인도 엉성하다며 출연을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야의 7인’에서 공연했던 스티브 맥퀸이 본의 출연을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본은 가외로 출연료를 받고 출연을 승낙했다는 것. 그리고 본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정치인 연기에 얼마나 만족했는지 나중에 진짜 정계로 진출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진정성을 농담이나 우스개로 받아들이는 데다 찰머스 의원이 영화에서 교활하고 야비하게 그려진 탓에 자신에게도 같은 이미지가 덧씌워질까 우려해 정계 진출 의사를 접었다는 후문이다.

본은 또 재난영화의 고전 ‘타워링(Towering Inferno, 존 길러민, 1973)’에서도 기라성 같은 올스타 캐스트 사이에서 역시 상원의원역을 맡았다. 그가 워낙 ‘정치인 전문’이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즉 원래 그 역은 제임스 프랜시스커스나 존 포사이스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이 두 배우가 당시 현역 정치인이었던 존 터니 상원의원과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와 얼굴모습이 닮은 탓에 부득이 하차했는데 두 배우가 이구동성으로 추천한 배우가 당시 현역 정치인 누구와도 닮지 않았던 로버트 본이었다고.

그리고 본은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한 ‘슈퍼맨 3(리처드 레스터, 1983)’에서는 슈퍼맨에 맞서는 억만장자 부호로 나왔다. 그렇다고 본이 정치인이나 악역만 연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2차대전의 실화를 다룬 ‘레마겐의 철교(The Bridge at Remagen, 존 길러민, 1969)’에서는 임무수행에 충실하다 오히려 SS 친위대에 의해 총살당하는 나치군 장교를 열연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아군에 의해 총살당하는 순간 “과연 누가 적인가”라는 상당히 유명한 대사를 읊조린다.

어쨌든 비교적 정형화된 영화의 배역 외에 본은 그의 본령이라 할 각종 TV 드라마에도 게스트로, 또는 고정출연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 19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A특공대’가 있다. 그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시즌에 스톡웰장군으로 출연해 시들어가는 드라마의 인기를 되살리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아울러 영국 TV에도 고정으로 꽤 많이 출연했는데 이는 그가 60년대 후반부터 상당기간 영국에서 거주했던 것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그는 열렬한 민주당원으로 1960년 대통령선거 때 존 F 케네디 후보의 선거 유세를 열성적으로 지원한데 이어 68년 대선에서도 로버트 케네디 후보의 적극 지원에 나섰으나 케네디가 유세 중 형과 마찬가지로 암살되자 환멸과 절망감에 빠져 영국으로 건너가 5년 동안 머물렀다. 그는 이 기간 중(1972~74) 국제적 문제해결사들을 그린 영국 TV의 액션 스릴러 ‘프로텍터스(The Protectors)’에 출연한데 이어 말년(2004~12)에도 악당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사기꾼들 이야기인 영국 TV 드라마 ‘허슬(Hutle)’에 젊은 사기꾼들의 멘토역을 하는 늙은 베테랑 사기꾼으로 딱 한회만 빼고 모두 출연하는가 하면 2012년에 방영된 영국의 장수 TV 멜로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Coronation Street)’는 그의 마지막 TV 출연작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열정적인 본업활동 외에도 그는 대단한 학구파여서 배우로서는 드물게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즉 그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 LA분교에서 연극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은 뒤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은데 이어 같은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의 학위논문 주제는 맥카시즘과 관련해 ‘미 의회의 비(非)미국적 행위에 관한 위원회가 연극계에 미친 영향’이었는데 그는 이 논문을 ‘오직 희생자뿐: 쇼비즈니스업계의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해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 급성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83세. 본 박사님, 아니 나폴레옹 솔로 선생, 안녕히….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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