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션을 갈까, 화랑을 갈까.

앞 장에서 미술품 구매 장소로서 이 두 장소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막상 써놓고 보니 일반론에 그친 감이 있다. 전문가를 인용한 가이드가 독자들이 실제 미술 쇼핑하는 데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지 뭔가. 음, 예산이 빠듯한 탓이다.

예산이 충분하다면 어디든 못갈까. 허나 실탄이 한정돼 있다면 갈 곳은 분명할 것이다. 이를 테면 30만원대에 겨울 재킷을 장만하려고 예산을 잡았다고 치자. 가야할 곳은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더 가야 있는 뉴코아백화점아울렛 강남점인 게 뻔하다.

옥션도, 화랑도 명품관 같은 곳이 있고, 마찬가지로 아울렛 같은 곳이 있을 것이다. 500만원이라는 ‘아주 작은’ 예산을 들고 작품을 사려는 내가 가야할 곳은 결국은 미술시장의 아울렛 같은 곳이거나 신진작가를 키워주는 중소형 갤러리, 혹은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대안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전이 중요하다. 내가 500만원을 들고 실제 미술 쇼핑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은 경매장에 가 본 경험부터 털어 놓을까 한다. 지난 9월 27일 서울옥션의 141회 메인 경매에 갔었다. 메인 경매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열렸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평창동 언덕바지 서울옥션의 근사한 건물 주변으론 검은색 고급 세단 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주차 관리 아저씨들이 부산히 움직이는 게 큰 장이 선 듯한 느낌이 확 풍긴다.

#메인 경매장에 가서 분위기부터 파악하라
박수근 작 <귀로> . 하드보드지에 유채, 15.5☓10.8cm, 1964년 작. 낙찰가 3억7000만원. 서울옥션 제공

경매 취재가 처음은 아니지만 막상 500만원이라는 금액을 상정하고 갔더니 경매장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올 데가 아닌 곳에 왔다는 낭패감. 물론 분위기 파악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갔고 '어마무시한' 가격일거라는 예상은 했다. 그럼에도 가장 유행하는 인기 작가의 미술 작품이 거래되는 옥션에서 내 손에 쥔 500만원의 구매력은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실제로 확인했을 때의 허탈감은 의외로 컸다.

누구 말대로, “점 하나 찍고, 선 하나 그은” 작품(이우환 작가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시리즈를 빗댄 농담) 수억원에서 비싸게는 10억원 안팎에 거래되는 곳이 아닌가.

경매 개시 1시간여를 앞둔 시점이라 프리뷰 전시장을 얼른 둘러봤다. 고객이 구매 여부를 충분히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경매 작품을 일주일가량 미리 선보이는 게 프리뷰다.

당연히 먼저 눈길이 가는 건 가격이다. 옥션의 좋은 점은 프리뷰에 내걸린 판매 작품 옆에 추정 가격이 적혀 있다는 점이다. 초보 컬렉터라면 옥션에서 사든, 화랑에서 사든 상관없이 일단 옥션을 꼭 들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떤 작가가 요즘의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있고, 대강 어느 정도에 가격이 형성돼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욱진, 김종학, 김형근, 황염수, 이대원, 이강소, 서세옥, 사석원…. 하나하나 둘러보니 늘 보아오던 낯익은 이름들이다.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김창열, 최명영, 김기린 등 수년 사이 급부상한 단색화 작가군의 작품이 대거 나온 게 눈에 띈다. 역시 김환기, 박수근, 김인승, 이중섭, 도상봉 등 지속적으로 사랑 받는 근대 작가의 작품도 빠지지 않았다.
김환기 작, <신희(新禧)>. 종이에 펜과 수채, 12.5☓17.3cm, 1961년작, 낙찰가 830만원.

손바닥만한 엽서 크기의 박수근의 유화 작품 ‘귀로’(15.5x10.8㎝)의 추정가는 3억5000만원에서 5억원. (이날 3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이중섭이 종이에 유화로 그린 ‘호박꽃’은 추정가도 없이 별도 문의라고만 적혀 있다.(13억5000만원에 팔렸다.)

이렇듯 고가의 작품들을 쭈욱 훑어보면서 우리 집에 걸 수 있는 500만원 안팎의 작품이 과연 있는지 눈여겨봤다. 놀라워라. 있긴 있었다. 엽서 크기에 새해 인사를 담은 김환기의 수채화 ‘신희(新禧, 12.5x17.3㎝)’가 예산 한도를 좀 웃돌기는 했지만, 700만원-1500만원으로 추정가가 낮다.(830만원에 낙찰됐다).

유화로는 그 인기 있다는 황염수의 ‘장미’(12.5x17.7㎝, 12x16.8㎝) 그림 2매 세트가 800만원-1500만원에 추정가가 제시됐고 800만원에 낙찰됐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김인승의 꽃 그림 ‘장미’(30.5x40.5㎝)의 추정가가 600만원-10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런 몇몇 소품 유화나 수채화를 빼면 대부분 추정가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다.

그래서 민중미술작가들에 눈길을 돌려봤다. 오윤의 판화 ‘할머니’는 추정가가 1200만원-2500만원으로 높았다. (경쟁이 치열해 4000만원에 낙찰이 됐다. ) 신학철의 중산층 연작-어서드세요’가 추정가 500만원-1000만원, 이종구의 ‘씨앗’이 추정가 600만원-1000만원으로 적혀 있었는데, 와락 반가움이 들었다.
김인승 작, <장미>, 캔버스에 유채, 30.5☓40.5cm (6), 1976년 작, 찰가 500만원.

500만원 예산으로 그나마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건 이런 일부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이거나 동양화다. 조각가 전뢰진, 심인자, 최만린의 소품 조각도 있었다.

동양화 작가들의 작품은 확실히 저렴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작품 ‘서호방학도’가 1억5000만원-3억원, 겸재 정선의 ‘고사인물도’가 8000만원에서 2억원, 또 호생관 최북, 표암 강세황의 작품이 수천만원의 추정가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추정가 수백만원에 나왔다. 일제 강점기 최고 인기 작가 이도영의 부채그림 ‘고사관수도’도 추정가가 200만원-400만원에 그쳤다.
로버트 인디애나 등 해외 현대미술가의 작품 에디션도 메인 경매에 나온 것은 추정가가 1000만원 이상으로 비쌌다. 앤디 워홀의 스크린 프린트 ‘LOVE'도 추정가가 2000만원이나 됐던 것이다. 역시 메인 경매장은 우아한 샴페인 잔 등으로 고급스럽게 세팅한 케이터링 분위기만큼이나 럭셔리한 곳이었다.

# 어떤 손님이 올까

수억원대의 미술품이 거래되는 곳이다. 그래선지 컬렉터가 직접 경매장에 나오기도 하지만 서면이나 전화로 응찰하는 경우가 많다. 수년 전 K옥션에서 일제 강점기 인기를 끌었던 도상봉의 유화를 2억원에 낙찰 받은 적이 있는 컬렉터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컬렉터가 누가 경매장에 나오나요? 다 서면으로 응찰을 하거나 전화로 응찰을 하지∼.” 하긴. 한국은 컬렉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 컬렉터들이 외부에 노출되는 걸 꺼린다는 걸 나도 안다.

경매장에는 개인 뿐 아니라 기업이나 화랑들도 사러 온다. 이날 경매장에서는 잘 아는 갤러리 대표 A씨가 눈에 띄었다. 그는 백남준의 회화 작품 ‘Pray for Good Luck-Allen Ginsberg'를 4700만원에 낙찰받았다. 추정가가 4700만원에서 6000만원이었다. A씨는 “서면이나 전화로 응찰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직접 오니 더 낮은 가격에 낙찰 받을 수 있었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경매 시작가가 추정가보다 낮게 출발하는 바람에 이런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옥션을 둘러보니

오프라인 경매에서는 선택지가 너무 없었다. 결국 500만원대에 작품을 사기 위해서는 온라인 옥션을 이용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옥션에서는 분기별로 연 4회 메이저 경매를 열고 있고, 자회사인 ‘서울옥션 블루’(www.auciotnblue.com)를 통해 온라인 경매를 실시한다. 지난 4월말 자회사로 분리된 서울옥션 블루는 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기획전 성격의 온라인 경매 ‘블루나우’를 실시하고 있다. 어른들의 장난감 경매인 ‘피규어 세일’, 오디오 경매인 ‘ 오디오마제스틱세일’ 등 테마가 다양하다.
김은호 작, <탄금미인 (彈琴美人)> , 비단에 채색, 68ⅹ51cm, 1977년 작, 추정가 500만 ~ 1000만원.

1월 12일부터 22일까지 실시 한 블루나우 경매 테마는 전통 회화다. ‘bluenow: Korean traditional painting)’이라는 이름으로 실시됐는데, 조선시대 어진화가 이당 김은호의 작품이 집중 출품됐다. 회화 뿐 아니라 도자기에 그린 그림 등이 추정가 100만원 혹은 200만원에서 출발한다. 개화기 화가들의 작품에 눈을 돌린다면 고를 것이 많구나, 실감했다. 김은호는 미인도가 유명했는데, 거문고를 타는 여인을 그린 ‘탄금미인‘은 추정가가 500만원에서 1000만원이었다.(문의 서울옥션 02-395-0330 /서울옥션 블루 02-514-2505)

K옥션도 메이저 오프라인 경매를 연 4회 실시한다. 온라인 경매는 두 종류로 나누어 차별화하고 있다. 연 5∼6회 정도의 ‘프리미엄 온라인’ 경매와 매주 실시하는 ‘위클리 온라인’이 그것이다. 프리미엄 온라인은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메이저 경매에 주로 출품되는 한국 근·현대 주요작가인 장욱진, 김종학,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을 소품 중심으로 컬렉션 할 수 있는 곳이다. 300만원 이상의 작품을 중개하긴 하지만 비싸면 6000, 7000만원, 최고 1억원 이하에 작품이 거래된다.

매주 수요일 시작해 화요일 마감하는 ‘위클리 온라인’에는 싼 것은 20만, 30만원짜리 판화부터 비싼 것은 사진, 동양화, 회화 등 다양한 장르가 100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프리뷰도 경매 기간 동시에 진행된다.

온라인 거래라도 반드시 프리뷰 현장에 가서 실물을 본 뒤 구입하는 것이 좋다. 경매회사 약관에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as it is)’ 출품한다고 돼 있다. 위탁 받은 상태로 작품이 출품되기 때문에 구입 후 손상이 발견돼도 책임은 응찰자에게 있기 때문이다.(문의 K옥션 02-3479-8888)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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