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올해 초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쉬는 날이었다. 아내는 오랜만에 머리를 하러 가고 하루종일 인영이와 놀았다. 머슴의 하루 일과가 끝나갈 밤 9시 무렵 늦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인영이에게 물었다.
"우유 줄까?"
"응"
3개들이로 묶인 200미리 우유를 떼려 가위를 들었지만 잘 안됐다. 독일 출장가서 사온 헹켈 과도로 테이프를 떼려다 아뿔사. 칼날이 빗나가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찔렸다.
피가 뚝뚝. 아내는 비명을 지르고 아이 둘은 놀라고, 나는 애써 태연한척 지혈을 했는데 왠일인지 피가 안 멈췄다.
밤 12시, 인영이가 응급실에 다녀온 아빠에게 선물로 자기가 가장 아끼는 과일젤리를 줬다. 집이 최고다.

119에 전화를 했다. 아이들을 놔두고 따라온다는 아내를 말리고 119 구급차를 혼자 탔다. 응급요원도 지혈을 하다 안되자 단순 자상이 아닌 혈관봉합이 필요할거같다고 큰병원을 가자했다. 조금 무서워졌다.
세종시는 아직까지 밤에 응급실을 운영하는 큰 병원이 없다. 금요일밤 청주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돗대기시장이었다. 의료진 둘이 상처를 들쳐보며 상처 깊이를 재고 못알아듣는 전문용어로 자기들끼리 얘기하더니 잠시 복도서 대기하라고했다. 잠시후 또 다른 의료진이 오더니 치료를 받으려면 세시간 대기해야 한다며 봉합이 가능한 근처 작은 병원을 가던지 대기하던지 택일하라고 했다.

상처 한번 들춰본 값으로 2만4000원을 내고 퇴원증을 받았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정말 큰병아니면 오면 안된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우산도 없이 응급실을 나왔는데 비는 억수같이 내렸다. 한손으로 지혈을 하는데 택시는 없고 손은 쓰렸다. 집에 그냥 가고싶었다.

근처 M병원에 도착하니 나이롱 교통사고 환자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반겨줬다. 허름한 응급실로 들어가니 젊은 의사가 꼬매잖다. 혈관봉합 해야하는건 아니냐는 질문에 보니 괜찮을것 같단다. 시원시원했다. 죽기야하겠냐 생각에 손을 맡겼다. 치료비보다 택시비가 더 많이 나왔다.

집에 오니 인영이가 아빠 조심해야지 한다. 아빠아프다고 오늘은 아빠랑 자달라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오니 다시 행복해졌다. 우리집 가훈을 다시 가슴에 새겨야겠다. '아프지 말자'

p.s 손가락 하나 다쳐도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힘든데, 수족 다 잘려나간 그분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든다. 길라임씨, 이제 그만 내려오시죠.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