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98>전설이 전설을 노래하다 기사의 사진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전설이 전설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그룹 이글스가 부르는 ‘제임스 딘’이었다. 귀익은 멜로디와 목소리에 끌려 발을 멈추고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제임스 딘, 제임스 딘 … 당신은 비록 이유가 없더라도 감정 풍부한 반항아였지(영화 ‘이유 없는 반항’을 살짝 비튼 가사) … 당신을 사로잡은 것은 오직 하나 규율을 깨트리는 것 뿐 … 스크린에 비친 제임스 딘,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 … 오픈 스포츠카를 타고 영원의 길로 떠나버렸지 … 제임스 딘, 제임스 딘, 당신은 너무 빨리 살았어(Too fast to live), 너무 일찍 죽었어(Too young to die), 안녕, 안녕히…”

이런 가사를 듣고 있노라니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리고 빨간 점퍼를 걸치고 낡은 자동차에 올라타 스피드에 목숨을 맡긴 치킨 게임을 하던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이 선명히 머리에 그려졌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제임스 딘’ ‘제임스 딘’하고 열을 올리며 칭송하는 말을 들으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하고 궁금해 하다가, 그래봤자 어른들이 좋아하는 배우니까 별 볼일 없겠지 하고 짐짓 무시하다가 마침내 중앙극장에서 리바이벌 상영된 ‘이유 없는 반항’을 보고 제임스 딘의 매력, 아니 마력에 흠뻑 빠져버렸던 내 젊은 시절도 함께.

영화사상 전설들도 많지만 제임스 딘이야말로 ‘진정한 전설’이라 해서 과언이 아니겠거니와 이글스 역시 팝음악의 전설이다. 가수 린다 론스타트의 백밴드로 출발해 1971년 독립, 미국에서만 1억장, 전세계에서 1억5000만장의 레코드를 판매할 만큼 성공을 거둔 이 록밴드는 록의 클래식이 된 ‘Hotel California’를 비롯해 ‘Take It Easy’ ‘Peaceful Easy Feeling’ ‘Desperado’ ‘One of These Nights’ ‘Best of My Love’ ‘Lyin' Eyes’ ‘New Kid in Town’ 등 주옥같은 명곡들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남겼다. ‘제임스 딘’은 1974년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 ‘On the Border’에 수록된 곡으로 1976년에 발표된 대표곡 ‘호텔 캘리포니아’만큼 많이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그 이전 노래로는 그래도 유명세를 탄 곡이다.

이글스의 ‘제임스 딘’ 노래를 들으며 이런 저런 감회에 젖다보니 문득 유명한 배우를 제목으로, 그들을 다룬 노래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자료들을 뒤져봤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다만 그 대부분은 ‘제임스 딘’ 만큼 유명하지도 않았고, 또 노래를 부른 가수들도 이글스만한 ‘전설급’은 아니었다. 그나마 그중 유명한 노래라면 1981년 빌보드차트 1위를 9주 동안 차지하면서 세계 31개국에서 팝차트 1위에 오른 ‘베트 데이비스의 눈동자(Bette Davis Eyes)’가 거의 유일하지만 노래를 부른 킴 칸스는 이 노래가 유일한 히트곡으로 전설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노래 내용도 베트 데이비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진 할로우 같은 금발과 그레타 가르보 같은 우아한 자세, 그리고 베트 데이비스 같은 눈동자’를 갖고 싶다는 여인의 소망을 노래한 것이어서 ‘제임스 딘’과는 종류를 달리 한다.

그럼 노래의 주제와 제목으로 올라간 배우들은 누가 있을까. 오래된 스타들부터 요새 배우들까지 다 있다. 우선 옛날 배우로 클라크 게이블(노래 제목 ‘Clark Gable’, 미국 인디밴드 포스탈 서비스) 케리 그랜트(‘Cary Grant's Wedding’, 영국 포스트펑크밴드 더 폴) 캐서린 헵번(‘What Would Katherine Hepburn Say’, 미국 팝밴드 스파크스),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 영국 록가수 줄리언 코프) 프레드 아스테어(‘Just Like Fred Astaire’, 미국 자매 팝그룹 밀리어네어) 몽고메리 클리프트(‘The Right Profile’--이 제목은 클리프트가 1956년 자동차사고를 당한 뒤 얼굴이 망가져서 화면에 나올 때는 오른쪽 옆면만 나오도록 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영국 펑크록밴드 클래쉬) 벨라 루고시(‘Bela Lugosi's Death’, 영국 고딕록밴드 바우하우스) 앤소니 퀸(‘The Mighty Quinn’, 밥 딜런)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with Wings’, 미국 올터너티브록밴드 피볼드)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미국 팝가수 셰릴 크로우). 한가지 특이한 것은 아주 옛날 배우들인데도 거의 현대의 록밴드들이 노래 불렀다는 사실. 그런가 하면 아직 활발히 활동 중인 노장부터 젊은 배우들을 다룬 노래들도 있다. 우선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 70~80년대 가장 유명한 밴드 중 하나였던 영국 스카(레게의 전신)밴드 매드니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가장 성공한 가상현실밴드로 기네스북에 오른 영국의 고릴라즈) 우디 앨런(‘Woody Allen’, 영국 인디팝밴드 알로 달린)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s Waiting’, 영국 여성 팝그룹 바나나라마) 아놀드 슈워체네거(‘Arnold Schwartzeneger’, 시카고의 거리 버스커 고(故)웨슬리 윌리스, 윌리스는 ‘조니 뎁’도 노래했다)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 미국 래퍼 캐밀리어네어) 스칼렛 조핸슨(‘Scarlett Johanson’, 프랑스 뉴웨이브팝밴드 틴에이저스) 등. 이밖에 제임스 딘을 다룬 노래도 또 하나 발견했다. 미국 록밴드 슬리핑 위드 사이렌스가 부른 ‘내가 제임스 딘이라면 너는 오드리 헵번이야(If I’m James Dean, You’re Audrey Hepburn)’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노래다.

그러고 보니 전설적인 은막의 스타들은 노래로 환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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