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랑가 1번지는 어디일까. ‘인사동’이라고? 이렇게 답한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미술시장 변화에 좀 둔감했다. 

십 수 년 전 만해도 화랑가하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이다. 이곳은 골동품을 취급하는 고미술상과 현대미술 작품을 사고 파는 갤러리가 공존하는 문화의 거리였다. 그러다 화랑가의 무게중심은 200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삼청동’으로 통칭되는 북촌으로 대이동했다. 

2002년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여파로 상업화되고 임대료도 오르면서 화랑들이 탈출한 것이다. 2007년 미술시장 활황 때는 부자 컬렉터를 좇아 K옥션 등 경매사가 위치한 강남의 청담동에 너도나도 분점을 냈다. 미술시장의 강남시대가 열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며 다시금 ‘삼청동’이다. 위상은 과거 인사동을 능가한다. 2013년 말 경복궁 건너편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한 것이 결정타였다. 이미 갤러리현대, 학고재갤러리, 국제제갤러리 등 메이저 갤러리가 뿌리내린 곳이었는데, 서울관 개관 이후에는 아라리오 갤러리(2014), PKM갤러리(2015) 등이 삼청로로 이전해왔다. 풍선 효과로 경복궁 옆 서촌으로도 화랑가의 영토가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이 코디 최 작가의 개인전 '채색화: 아름다운 혼란’전을 구경하고 있다. 구성찬 기자

주말에 소파에 누워 리모콘을 누르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게 일이라면 벌떡 일어나 삼청동 나들이는 어떨까. 삼청로를 따라 산보해보라. 질주하는 차량과 마천루가 늘어선 광화문대로를 지척에 둔 곳이다. 이런 도심에서 한적한 풍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가로수와 궁궐 돌담이 빚는 풍경은 계절마다 정취가 다르다.

사간동, 소격동, 팔판동으로 이어지는 삼청로를 따라서는 갤러리가 늘어서 있다. 전시가 있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는 없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문화적 호사까지 누릴 수 있다.
중요한 미술관도 여럿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금호그룹에서 운영하는 금호미술관이 있고, 삼청로에서 약간 비켜난 정독도서관 근처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딸인 김선정씨가 관장을 맡은 아트선재센터가 있다. 이걸 제대로 보려면 하루가 모자란다.

삼청동 화랑가 1번지는 우리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에게는 어디까지나 ‘아이 쇼핑’일 때 의미가 있다. 500만원 들고 미술작품을 사겠다고 삼청로를 따라 있는 갤러리를 찾아가 보라.거의 대부분 민망해지는 순간을 만날 것이다.

# 갤러리 1번가 ‘삼청로’의 매력

미술작품의 가격을 말하기 전에 이곳 화랑들에 대해 일별해보자. 삼청로 초입에서 만나는 갤러리현대는 이곳 터줏대감이다. 명실상부한 ‘1호 화랑’이다. 갤러리현대 박명자(73) 회장은 이대원 화백이 운영을 맡았던 반도호텔(현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 내 반도화랑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27세이던 1970년 인사동에 현대화랑(갤러리현대 전신)을 차렸다. “화랑이 뭐냐”는 말이 돌던 시절이다. 그러다 1975년 당시엔 허허벌판이던 이곳으로 옮겨왔다. 재불화가 이응로 화백이 현대미술 전시를 하려면 이만한 공간은 갖춰야 한다는 말에 자극 받아 건물을 신축해 온 것이다.

이후 국제갤러리(1988)에 이어 학고재갤러리(2008)가 인사동 시대를 접고 이곳으로 옮겼다. 국제갤러리 이현숙(67) 회장은 컬렉션을 바탕으로 화상을 시작했다. 학고재 우찬규(59) 대표는 고미술에서 출발해 현대미술로 넓혀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천안의 유통기업인 김창일(65) 회장이 소유하고 있다. 청와대 옆 PKM갤러리 박경미 대표는 국제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다 독립했다.

모두 국내서 손꼽히는 메이저 갤러리다. 유수의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며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제갤러리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뿐 아니라 홍콩 바젤 아트페어,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 런던 프리즈아트페어, 파리 피악(FIAC·파리현대미술제) 등에 참가하고 있다. 이들 해외 아트페어는 심사가 깐깐해 신청한다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속작가 제도가 있는지, 기획전을 열어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해 키워주는지 여부 등을 꼼꼼히 따진다. 작품만 사고파는 딜러 화랑은 발을 못 붙인다. 그래서 해외 아트페어 참가 여부는 얼마나 파워 있는 화랑인가를 말해주는 보증수표이다.

# 갤러리 1번가 작품 가격을 알아보니 억! 억!

이런 화랑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도대체 얼마일까. 구체적으로 실감하고 싶었다. 지금 전시 중이거나 이전에 했던 주요 작가들의 작품 값을 민망하지만 물어봤다. 수 천 만원에서 수억원짜리가 보통이다. 10억원이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갤러리현대 김기린 개인전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현대갤러리에서는 ‘블랙 추상 시리즈’로 유명한 재불 추상화가 김기린(80) 개인전과 목장갑을 가지고 회화 같은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장갑 작가’ 정경연(61) 개인전이 한창이다. 김기린 작가의 작품은 1970년대 초기 작품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아 100호에 1억1000만∼1억2000만원한다고 했다. 1980년대 이후 그려진 작품은 상대적으로 값이 낮은 데, 100호에 8000만∼9000만원한다. 정경연 작가는 100호에 500만원에서 6000만원 정도한다고.

국제갤러리에서는 영국의 조각 거장 아니쉬 카푸어(62) 개인전이 얼마 전 끝났다. 입체인데도 평면처럼 보이는 ‘착시의 조각’ 등은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경쾌한 재미가 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 가격은 얼마일까. 놀라지 마시라. 갤러리 측이 알려준 가격은 “50만 달러(5억8000만원)에서 300만 달러(35억원)”였다. 이 갤러리의 다른 공간에서 열렸던 한국의 추상 작가 최욱경(1940∼1985)의 작품 가격은 5만 달러(5800만원)∼20만 달러(2억3500만원)라고 한다.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가을 열렸다. '비정형 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니쉬 카푸어. 국제갤러리 제공

학고재갤러리는 지난여름 민중미술 작가 신학철(73)과 냉소적 사실주의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작가 팡뤼준(53)을 조명하는 2인전을 열었다. 신학철 작가 작품은 거의 비매였다고. 팡뤼쥔의 경우는 대부분 판화가 출품됐는데, 에디션이 있는 판화인데도 싼 게 800만원대였고 대체로 2000만∼3000만원 했다.

PKM갤러리는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로 이완(37) 작가와 함께 선정된 코디 최(55)의 개인전 ‘채색화: 아름다운 혼란’전이 열고 있다. 빨강(RED), 보라(VIOLET)등 색을 나타내는 영어 철자를 엉뚱한 색으로 칠한 ‘개념미술 회화’ 작품으로, 100호가 4000만원, 200호가 5000만원에 거래된다. 지난해 열린 재개관전의 주인공인 단색화 대가 고(故) 윤형근(1928∼2007)의 작품은 1970∼80년대 전성기의 작품이 100호가 3억5000만원하며, 1990년대 작품은 100호가 2억5500만원 정도에 팔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옥션은 시장에서 유행하는 기성작가들의 작품이 재거래되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이들 메이저 화랑도 미술계에서 입지를 굳힌 명망 있는 작가들만 취급한다. 사정이 그러다보니 작품 가격이 비쌀 수밖에.

# 월급쟁이는 작품 사러 어디로 가야하지?

문제는 나 같은 샐러리맨의 구매다. 대기업 임원이 아니라면 자녀의 학원비와 생활비 내기도 빠듯한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6개월에 한 번 씩 자녀의 대학 등록금 납부 시기가 오면 통장 잔고가 뭉텅이처럼 빠져나간다. 대출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적금을 깨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월급쟁이에게 이들 메이저 갤러리에서의 구매는 언감생심이다. 아이쇼핑용이다. 동시대 어떤 작가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정을 받고 있는지, 그들의 작품 경향은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일상의 소소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뭉클한 감동을 느낄 때도 적지 않다.

자, 이제 아이쇼핑은 그만하고 작품을 사러가야 할 시간이다. ‘샐러리맨을 위한 미술작품 가격’ 500만원대의 작품을 취급하는 곳은 어디일까. 이들 메이저 화랑에서 중견작가의 10호, 15호 크기 소품을 사는 것도 생각해봤다. 어떡하나. 강요배 작가만 해도 10호 크기가 1000만원을 넘는다. 이들 화랑에서 신진작가 개인전을 열 때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하지만 메이저 화랑에서 젊은 작가의 작품을 취급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개인전 2-3회 경력의 참신한 작가의 전시를 열어주고, 언론에 홍보를 하며 키워주는 화랑은 어디일까. 해외 아트 페어에까지 작품을 팔아주는 화랑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초보 컬렉터라면 그런 작가를 주로 취급하는 화랑이나 미술관의 안목을 빌리는 게 중요하다. 신혼 때 어느 지역에서 전세를 사는지가 부동산 재테크의 출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화랑과 관계를 트는 것이야말로 컬렉터로서의 성공을 가름할 출발이다.

취재하면서 송은아트스페이스, OCI미술관, 금호미술관 같은 비영리미술관에서 후원하는 신진작가 전시가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랑 중에서는 북촌의 원앤제이 갤러리, 신당동에 새로 둥지를 튼 스케이프 갤러리, 서촌의 갤러리룩스 등이 젊은 작가 발굴과 육성에 관심을 쏟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귀띔하자면 신문·방송을 통해 샐러리맨에게 ‘어포더블’한 미술작품을 취급하는 갤러리 관련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다. 미디어는 속성상 유명성과 화제성을 뉴스의 척도로 삼기 때문이다. 유명하지 않다면 감동어린 사연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자들의 취재 대상은 소수의 컬렉터만이 접근할 수 있는 고공 세계다.

구입 예산인 500만원인 내가 가야 할 데는 따로 있는 것이다. 어디일까. 평소 취재로는 커버가 안 되는 그 곳을 수소문해보기로 했다. 그 얘기는 다음 호에서 할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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