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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야가 국민의 뜻이냐" 촛불집회 폄하한 이문열 작가


“4500만 중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소설가 이문열이 반문했습니다. 시대와 나라를 대표할 만한 작가가 국민의 목소리를 폄하하는 듯한 표현으로 가득한 기고문을 썼다는 것에 대중들은 분노했습니다.

네이버나 다음과 대형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기고문 아래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죠. 반면 의견에 공감한다는 뜻의 ‘좋아요’는 100개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촛불 민심은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범죄자 처벌의 문제다”
“본질을 무시한 채 그럴듯한 논리로 궤변을 늘어놓은 작가의 문장이 실망스럽다”
“이문열의 소설을 아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소장해왔던 책들을 불태워버리기로 했다.”
이런 식의 비난이 대부분이었죠.
기고문 제목에 빗대어 “지식인이 죽었다”며 한탄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기고문은 지난 2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겁니다.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위기의 대한민국…‘보수의 길’을 묻다]라는 코너에 소개된 글입니다. 조선일보는 보수 성향이 지식인들의 발언을 담은 기획시리즈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죽기 좋은 계절이라고 시작하는 글에는 현시대를 많은 죽음이 요구되고 하루 빨리 그 실현이 앞당겨지기를 요란하게 기다리는 시절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매스컴은 그런 죽음을 예고하고 혹은 초대하는 이야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악머구리 들끓듯 하고 광화문광장은 벌써 두 번째로 백만을 일컫는 촛불에 휘황하게 밝았다고 쓰여 있죠.

그러면서 이탈리아 극본을 소개합니다. 폭동을 피해 도주한 여왕 대신 여왕을 빼닮은 창녀가 붙잡혀 처형당하는 내용입니다. 군중들 앞에서 의연한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을 소개하며 정신적 죽음에 대해 설파했습니다. 대통령의 미용이나 섭생까지 깐죽거리며 모욕과 비하를 일삼는 것을 특종이라고 한다며 언론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까지는 공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부터였습니다. “매스컴이 스스럼없이 ‘국민의 뜻’과 혼용하는 광장의 백만촛불”이라는 표현부터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대목에선 대중들이 공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죠.

1500단체가 불러내고, 매스컴이 일주일 내 목표 숫자까지 암시하며 바람을 잡아 불러 모은 숫자라는 주장에서 공분이 일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에, 유모차에 탄 아기며 들락날락한 사람까지 모두 헤아려 만든 주최 측 주장 인원수라는 표현부터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절정은 북한의 아리랑 축전에 촛불을 비유한 것입니다. 글에는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이라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는 건 본인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고 전한 것 또한 본인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죠.

촛불이 바로 거역할 수 없는 성난 민심이며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것은 지난 한 달 야당의 주장과 매스컴의 호들갑으로 이제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논리가 됐다고 한 부분에서는 분노가 치민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중들은 이 작가에게 반문하며 충고합니다.
“추운 겨울 불타오른 촛불을 한번이라도 직접 본 적 있는가? 거리로 나와 보지도 않고 저런 말을 하는 이 작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나?”
“대통령의 미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관심도 없다. 문제는 그 사이 벌어졌던 대형 참사, 수많은 희생자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다. 대통령의 직무유기를 말하기 위한 거다”
“당신의 민심을 거스르는 듯한 논리 먼저 죽고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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