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당일│먼 북소리처럼, 박근혜를 탄핵하라

겨울바람을 타고 자꾸만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수채물감을 담뿍 묻혀 그린 듯 하늘에는 젖은 구름이 번져가고 있었다. 숨이 죽어 갈변한 잔디밭을 자박자박 걷다 보니 어느새 광장 중앙에 위치한 분수대 앞이었다. 먼 전장에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담장 저편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이편에서는 예리함을 잃고 먹먹히 웅웅거렸다. 아직 동이 다 트지 않은 오전 7시 45분. 텅 빈 국회 잔디광장에서 얇은 카디건을 입은 러시아 여기자가 쉼 없이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리포트를 읽었다. 맞은편에서는 기하학적 무늬의 갈색 스카프를 두른 인도 여기자가 큰 눈을 깜빡이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경찰 버스가 국회를 촘촘히 에워쌌지만 시위대의 구호 소리는 쉼 없이 담장을 넘나들었다. 아직 푸른 새벽빛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국회 잔디광장에 꾸린 KBS와 YTN의 현장 중계 세트는 분주했다. 해가 지기 전에 박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될 터였다. 서늘한 긴장감이 국회에 감돌았다.



탄핵전날│콜드플레이급 '취재신청' 티켓팅

단 266명만이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접 탄핵 표결을 지켜볼 수 있었다. 취재기자 80명(외신 2명·국회방송 4명·일반취재 74명), 사진기자 40명, 방송기자 40명 그리고 일반시민 106명이었다. 취재 신청은 전날 오전 10시에 받았지만 기자들은 무려 1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 역사적 현장이기에 경쟁이 치열했지만 안이하게도 나는 10분 전에 가면 될 줄 알았다. 그런 나를 뉴시스 기자가 구해주었다. 멀뚱멀뚱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앞을 서성이던 내게 빨리 줄을 서야 한다며 취재 신청서까지 뽑아주었다. 뒤늦게 갔지만 40등으로 본회의장 취재신청에 성공했다. 서울신문이 74등으로 내신기자 마지막 방청석을 얻었다. 이날 오후부터 노란색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이 국회를 둘러쌌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지시로 출입증이 없는 모든 사람들의 국회 진입이 통제됐다. 탄핵 표결 하루 전부터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국회 앞에는 촛불 상인부터 호두과자와 떡볶이 노점상까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장이 섰다.



탄핵현장│개나리빛 노란 점퍼·세월호 유족

제346회 국회 제18차 본회의 안건은 단 하나였다. 의사일정에는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라고 한 줄 적혀있었다.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오후 1시 30분부터 본회의장 앞에 줄을 섰다. 신분확인 뒤 취재 비표를 받아 오후 2시 10분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의사국장이 의장석 오른쪽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국회사무처 직원들은 의원들이 탄핵 여부를 표시하게 될 투표소를 꼼꼼히 점검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여느 때처럼 방송기자들은 카메라 화이트 밸런스를 체크했고 사진기자들은 렌즈를 닦았다. 취재기자들은 묵묵히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시민들의 함성이 몰아치는 국회 밖과 달리 본회의장 안에는 묵직한 적막이 가라앉아있었다. 짧은 카메라 셔터 소리만 이따금씩 터져 나올 뿐이었다.

이날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박 대통령과 힘겹게 싸워온 세월호 유족 40명이 자리했다. 유족들은 개나리색 봄빛 점퍼를 입고 단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몇몇 유족은 노란 가슴에 하얀 플라스틱으로 만든 교복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학생증을 목에 걸고 온 사람도 있었다. 모두 죽은 아이의 유품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정성욱 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방청석에 앉아 텅 빈 본회의장을 바라보았다. 소회를 묻자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참담하다고 답했다. 곁에 앉은 여성 유족은 대통령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이렇게 해야만 죄를 물을 수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읊조렸다. 유족들이 자리를 잡자 본회의 10분 전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유족들도 밝은 표정으로 가벼이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대한민국 헌법을 자기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두었다.



탄핵현장│의사일정 제1항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상정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건조한 목소리로 “의사일정 제1항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상정합니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제안 설명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친박(친박근혜) 인사인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초점 잃은 눈동자로 테이블에 놓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한선교 의원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정현 대표는 흙빛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추녀 모양으로 처진 이 대표의 어깨를 바라보며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떠올려보았다. 국민들에게 박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들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국회의원인데 나라가 이지경이 되었다면 미안해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바득바득 종북 좌파 운운하며 대통령 옆에서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고 선전했던 기행을 떠올리니 고개가 모로 저어졌다. 카피라이터 친구는 “하자 제품인 걸 알고 광고하는 애들은 ‘산 놈이 잘못이고 만든 놈이 잘못이지 판 내가 잘못이냐'라고 우긴다”며 친박이 죄책감을 느꼈을지 모른다는 내 가정을 순진한 망상으로 치부했다.

투표가 시작되자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천천히 일어나 본회의장에서 나갔다. 이 대표는 투표가 진행되는 내내 자리에 앉아있다가 막판에서야 정진석 원내대표와 함께 투표소로 걸어갔다.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운 유승민 의원도 느지막이 투표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여당 의원들은 단단히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움직였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빠르게 표를 던졌다. 본회의장 오른쪽 투표소에서는 민주당 추미애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김종인 전 대표가 처음으로 투표했고 왼쪽 투표소에서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안철수 전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투표를 개시했다.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투표소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었고 정세균 의장은 투표소에서 나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투표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가만히 앉아있었다. 취재기자들은 누가 투표했는지, 어떤 표정인지, 의원들이 누구와 대화하는지 재빠르게 적어 실시간으로 회사에 보고했다.



탄핵결과│1·234·56·7

소슬한 음풍이 공기를 차게 식힌 듯 본회의장이 순간 얼어붙었다. 개표가 시작되자 덜덜거리는 자동개표기 소리만이 장내에 메아리쳤다. 의원 15명이 투표함을 둘러싸고 개표기에서 나온 종이를 하나씩 확인했다. 가(可)와 부(否) 또는 무효나 기권.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표결이 눈 앞에서 집계되고 있었다. 모두가 투표함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 머리가 센 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개표하다 말고 추미애 대표를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잠시 후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박지원 원내대표를 향해 손가락 2개, 3개, 4개 들어 보였다. 박 대표가 큰 소리로 “예!” 소리를 질렀다. 정세균 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가결을 선포합니다”라고 말한 뒤 의사봉을 두드렸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표 7표, 기권 2표였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끝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중년 여성이 흐르는 눈물을 소리 내지 않고 담담히 닦아냈다. 눈두덩이가 붉어지도록 오열하는 유족도 있었다. 누군가 “촛불 국민 만세”라고 외치자 유족들이 “만세”라고 소리쳤다. 몇몇 유족이 죽은 아이들이 그려진 노란색 보자기를 펼쳐 들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연신 새누리당 의원을 향해 “아이들 얼굴 좀 보라고. 아이들 얼굴 좀 보란 말이야” 울부짖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당력을 집중해 세월호 청문회를 무력화시키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한 연장을 반대해 온 그들이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유족들을 향해 인사했다. 전현희 의원이 눈물을 쏟아냈다. 곳곳에서 “이정현 장지져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구호가 터져 나왔다.



노을마저 다 야윈 오후 7시. 국회의원도 세월호 유족도 다 떠난 국회 로텐더홀에서 갈색 앞치마를 한 구내 카페 직원이 홀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긴 흑발을 단정히 묶은 채 신익희 선생님 동상을 찍고 본회의장 입구를 찍고 탄핵이라고 적힌 널브러진 선전물을 찍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비벼 닦았다. 붉은 양탄자가 깔린 로텐더홀 계단을 내려오니 리포팅을 끝낸 알자지라 기자가 인사를 건넸다. 박 대통령 때문에 먼 이국까지 날아온 그를 보자 혀뿌리가 괜스레 씁쓸해졌다. 방송국 카메라 기자들은 피곤한 표정으로 천천히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처럼 국회가 조용했다.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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