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의 사방팔방] 7. 우병우, 잠적의 달인 이근안 닮아가나

우병우와 이근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온 국민의 시선을 따돌리고 잠적에 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난형난제(難兄難弟)가 따로 없다. 보통 범죄자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잠수’를 탄다. 과거 이 전 경감이 그랬고, 현재 우 전 수석이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우 전 수석의 비열한 잠적을 보고 있으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민정수석이었던 인사의 권력과 위상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형사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잡범’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과거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씨. 국민일보DB


기자 생활 초년병 시절에 필자는 도피 중인 이근안을 공개수배한 재야단체를 취재한 적이 있다. 필자의 저서 ‘신문엔 없다’(2001)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지금부터 27년 10개월 전인 1989년 2월 초. 사회부 선배로부터 “재야단체가 이근안을 공개수배한다는 데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많은 재야단체 가운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를 골랐다. 민가협이 본인이나 가족 중에 수감생활을 한 회원들 위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민가협 관계자들은 명함을 받고도 생면부지인 기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했다. 재야단체가 운영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느냐는 말을 건네고 즉석에서 회원으로 가입했다. 물론 회비도 냈다. 대학 동창들 가운데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거리를 조금씩 좁혔다.

이튿날 민가협을 찾아가서 자료 몇 점을 구입했다. 자료를 훑어보다가 넌지시 “이근안을 수배하죠?”라고 물었다. 필자는 “민가협과 몇몇 재야단체가 돈을 모아 현상금을 내걸고 일주일 안에 수배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민가협 관계자는 몇 가지 팩트를 알려주었다.

셋째 날 음료수와 간식을 사 들고 민가협을 방문했다. “현상금이 100만원이죠?”라고 물었다. 민가협 관계자는 손을 내저으며 더 이상 묻지 말라고 했다. 취재를 지시한 선배가 다른 경로로 현상금 규모를 확인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찰과 검찰이 잠적한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51)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이씨를 전국에 현상 수배하겠다고 나섰다.

 민가협은 18일 재야단체와 합동으로 오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방침을 밝히겠다고 말하고, ‘경찰과 검찰이 이씨를 못 잡는 것이 아니라 비호하고 있기 때문에 고문 피해자의 가족들인 민가협이 이씨를 수배하게 됐다’고 밝혔다.

 민가협은 이씨를 붙잡거나 붙잡는 데 결정적인 제보를 한 사람, 또는 정확한 은신처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기로 하고 모금을 통해 현상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민가협은 현상금을 100만원으로 잠정 결정했으나, 고문 피해자 가족들이 현상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함에 따라 모금이 순조로울 경우 300만~400만원 선으로 올릴 것을 검토 중이다.


 민가협은 또 ‘고문 기술자 이근안을 시민의 손으로 체포합시다’라는 제목에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철폐·반민주 악법 폐지·고문 책임자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전단과 스티커를 대량 제작, 민가협·재야단체·학생 등의 조직을 통해 전국에 배포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모두 다섯 문장인 짤막한 기사가 1989년 2월 18일 국민일보 1면 톱으로 보도됐다. 그날 오후 서울 동숭동 일대에서는 재야단체들이 그해 첫 연합집회를 열었다. 경찰과 시위대의 공방전이 치열했다.

 그 현장에 ‘이근안을 우리가 잡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독재정권과 싸우던 수많은 재야인사, 노동자, 학생 등에게 국민일보가 산뜻한 희망을 선사했다고 자부하고 싶은 날이었다.

공개수배를 받던 이근안은 1999년 10월 28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자수했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전기고문, 물고문, 날개 꺾기, 관절 뽑기, 고춧가루 고문 등을 자행해 악명이 높았다. 다른 기관으로 ‘고문 출장’을 가기도 했다. 고 김근태 민청학련 의장을 고문한 사람도 이근안이었다.

27년 10개월 전 취재 과정을 회고한 것은 재야단체가 이근안을 공개수배한 것처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찾는데 온 국민이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공금 유용 등 각종 비위 의혹이 제기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달 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을 막기는커녕 직무유기를 한 혐의 말고도 다양한 혐의나 의혹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중 수사’를 받아야 하고,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도 성실히 임해야 한다.

그런데 우 전 수석이 국정조사특위 청문회를 앞두고 돌연 종적을 감췄다. 그러자 정치권과 네티즌이 눈에 불을 켜고 나섰다. 우 전 수석의 ‘잠수’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방불케 한다.

국회는 지난 7일 국정조사 청문회의 핵심 증인인 우 전 수석과 그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우 전 수석이 국정조사 출석요구서를 수령하지 않으면 불출석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였다.

 국정조사특위 소속 백장운 입법조사관은 이날 오전 두 장의 동행명령장을 들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급빌라로 갔다. 그러나 이 전 수석과 김 회장을 찾지 못했다. 백 조사관은 전날에도 출석요구서를 들고 이 빌라를 방문했지만 경비원에게 서류만 남기고 철수했었다.

백 조사관은 “우 전 수석이 충북에 있는 장모의 언니 집에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충북 제천시 청풍면의 한 주택으로 향했다. 여기서도 이 전 수석과 김 회장을 찾지 못했다. 강제로 주택의 문을 열고 들어갈 방법도 없었다.

 백 조사관은 경기도 화성 기흥컨트리클럽에도 갔다. 우 전 수석이 이곳에 있다는 제보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수석의 행방은 묘연했다. 백 조사관이 이날 자동차로 운행한 거리만 358㎞에 달했다.

핵심 증인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 전 수석에 대해 “법률 미꾸라지 같다”고 비난했다. ‘법 미꾸라지’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우 전 수석을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김 전 실장은 “우 전 수석의 불출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김한정 민주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저도 나이가 많고 심장에 통증이 있는 상태지만 나왔다”며 “국회가 부르는 것은 국민이 부른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나와서 진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이 만든 우병우 전 민정수석 공개수배 전단. 정봉주 전 의원 트위터 캡처

급기야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우 전 수석을 ‘공개수배’하기에 이르렀다. 정 전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을 절단 내고 국회를 능멸한 우병우 일당을 공개 현상 수배한다”는 글을 올렸다.

 정 전 의원은 현상금 200만원을 내건 포스터를 공개했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과 김성태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이 가세하면서 우 전 수석에 대한 현상금은 1100만원으로 올랐다.
정치권의 공개수배에 발맞춰 네티즌들도 우 전 수석의 행방을 쫓고 있다.

 우 전 수석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갈 곳이 없다. 잡범처럼 지하세계를 전전하지 말고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자진 출석해야 한다. 고문기술자인 이근안 전 경감도 자수하지 않았는가.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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