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의 사방팔방] 11. 국정농단사건, 자중지란 일어나나

최순실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재판의 피고인석에 착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동정범으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이 급기야 혼자만 살겠다는 길을 선택했다.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는 물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측근을 내팽개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결과를 전면 부인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동주연과 조연 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이 때문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재판과 헌법재판소 심리, 박영수 특별검사 수사,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씨와 박 대통령 측근들의 양심선언이나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있을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법률대리인들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과 관련한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국회가 18일 공개한 답변서를 보면 박 대통령이 얼마나 매정하게 최씨와 측근들에게 등을 돌리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국정을 농단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19일 오후 1차 공판준비기일을 마치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대통령은 A4 용지 25쪽 분량의 답변서에서 국회가 탄핵 사유로 의결한 5가지 헌법 위반과 8가지 법률 위반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주장을 살펴보자.
 “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최순실 등의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
 “기업들에 강제적으로 재단 출연을 요구한 바 없다”
 “미르 사업 등은 공익사업으로 대가성 없다”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몰랐다”
 “(세월호)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했다”
 “(연설문 등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순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어서 구체적 유출 경로를 알지 못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른다’ ‘틀렸다’ ‘난 잘못 없다’라는 주장만 한 것이다. 최씨나 측근 입장에서 보면 국정농단 게이트의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처벌하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모셨던 주군(主君)이 자기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가신(家臣)들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모습을 보고 가신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도 억하심정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정농단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순실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가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토사구팽(兔死狗烹)이란 말이 있다.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인정사정없는 정치판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현재까지 국정농단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이번 경우처럼 비정한 토사구팽도 없다.

토사구팽을 당하는 인사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섶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가 혼자 죽으라는 데 과연 누가 따르겠는가. 봉건시대도 아니고, 최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뜬금없이 순장조(殉葬組)를 하라는데 따를 사람이 있기는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피의자인 최순실씨의 공판준비기일인 19일 서울중앙지법 법정 출입구 앞에서 시민들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관점에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이 재판에 최순실씨는 출석했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출석하지 않았다. 3명은 공소사실에 대해 각각 다른 입장을 보였다.

최씨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최씨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최씨에게 적용된 11개 공소사실 중 8개가 안 전 수석과 공모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후 호송차로 향하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진=뉴시스

안 전 수석의 변호인은 “공소장에 나와 있듯 대통령이 직접 안 전 수석에게 재단 이사 등 임원 명단까지 가르쳐준 것으로 돼 있다”며 “대통령 지시에 따라 연락을 취했고 상대방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의 변호인은 “혐의를 대체로 인정한다”면서 “대체로 대통령 뜻을 받들어서 했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기밀을 누설한 혐의에 대해 자백하는 취지로 조사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수감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지난 2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으로 진행될 특검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에서 검사와 국회의원들은 최씨,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 이번 사건과 관련한 피의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독박을 쓰거나 쪽박을 차지 말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옴짝달싹하지 못할 물증을 들이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설득 작전’도 차선책으로 고려해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뇌물 공여 의혹을 받고 있는 재벌 총수와 관계자들은 무조건 혐의를 부인하려고 할 것이다. 혐의를 시인하면 자신들도 처벌받기 때문이다. 재벌 수사와 관련해 총수들을 출국금지 조치한 특검은 확실한 증거와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사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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