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혼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그 뿌리를 찾아가면 최태민(崔泰敏)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의 일대기를 지금까지 언론과 문서, 영상, 사진 등으로 공개된 자료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재구성한다.

그는 대한민국 권력과 재벌,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까지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의 왕국을 구축했고, 마침내 대한민국을 대혼란으로 몰고갔다. 그의 악행은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적폐의 종합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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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로 알 수 있는 그의 생년월일은 1912년 5월 5일. 채널A가 2016년 11월22일 보도한 그의 묘비에는 1918년 음력 11월 5일 출생이라고 기록돼 있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12월 8일이다. 묘비에서는 또 수성최씨라 새겼지만 수성최씨 종친회에서는 혈족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출생지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34번지. 북한의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황해북도 사리원시다. 본적지는 경남 양산군 웅상면 삼호리 532번지. 해방 후 월남한 뒤 취득한 주소다.

어릴적 이름은 최도원(崔道源)이다. 1927년 3월 황해도 재령보통학교를 졸업할 때 이름이다. 모친 김윤옥(金崙玉)이 태몽으로 선녀가 어린아이를 자기 품에 맡기는 꿈을 꿔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식민지시절 그는 황해도에서 순사로 일했다. 해방 후 월남한 것은 순사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최태민의 아버지 최윤성(崔崙成)은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사리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했고, 1920년에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약 1년 수감됐다고 한다. 이런 공적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어머니는

최태민이 일제의 순사로 일하는 건, 부친의 독립운동을 부정했거나 아버지 최씨가 1920년 이후 일제의 편으로 돌아서야 가능하다. 이 때문에 최태민의 가계가 조작됐거나 아버지 최씨의 독립운동 업적이 왜곡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최태민이 월남했다는 사실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부친 때부터 살아온 고향을 해방 이후 떠났다면 일제 시대 순사로 활동한 행적으로 주민들의 지탄을 받았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인사이더월드라는 매체가 1990년대에 보도했다며 월간조선이 2016년 12월호에 이런 내용을 인용했다.

젊은 시절부터 최태민을 알고 있다는 사람이 본사에 전화해 온 제보에 따르면 최태민이 월남하여 이름을 바꾼 것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 순사 노릇을 하면서 황해도 지역의 애국독립운동가들과 가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그런 사실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이름을 바꾸었을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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