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의 사방팔방] 15. 쌍박의 결투, 朴특검이 주도권 잡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체포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3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쌍박(雙朴·박영수 특별검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결투에서 박 특검이 주도권을 잡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한 단서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변호인은 삼성그룹이 최순실씨를 지원하는데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 안팎에서는 박 특검이 수사의 6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검팀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민연금공단 투자위원회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국민일보는 보건복지부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들에 대해 뒷조사를 한 내부 보고서를 특검팀이 확보했다고 30일 단독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특검팀은 문 전 장관이 외부 전문가 성분 분석까지 지시하며 찬성을 이끌어낸 배경에 청와대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찬성 결정 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고, 삼성 측이 최순실씨 모녀를 지원한 일련의 과정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특검팀은 문 전 장관이 ‘(합병이) 100% 성사돼야 한다’고 국민연금 투자위에 수차례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김 사장은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실소유한 법인에 대한 삼성의 지원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시스

특검팀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문 전 장관을 긴급체포한 데 이어 29일 문 전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 출범 후 첫 구속영장 청구였다. 문 전 장관은 3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

 국민연금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국민 노후를 위해 사용해야 할 기금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는 데 문 전 장관이 개입한 점이 드러난 것이다. 문 전 장관을 움직인 배후를 캐는 일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일보는 또 최순실씨 모녀가 삼성의 자금 지원 창구인 독일 현지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를 설립하기 4개월 전부터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을 대한승마협회에 요청했다고 30일 단독 보도했다. 국민일보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2015년 국가대표훈련 촌외(국외)훈련 승인 요청서’는 최씨 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작성해 삼성이 회장사인 대한승마협회에 제출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일보에 따르면 이 문건은 삼성이 최씨와 정씨를 우회 지원했던 코레스포츠가 설립되기 전 발송됐다. 시기별로 보면 지난해 삼성의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선임(3월), 문건 발송(4월), 코레스포츠 설립(8월), 비덱스포츠로 사명 변경(11월) 순으로 절차가 진행됐다. 삼성은 최씨 모녀 소유인 이 회사와 220억원 규모의 지원 계약을 맺었다.

 박 의원은 “만삭이었던 정씨의 출산 이후 훈련을 위한 지원을 요청한 셈”이라며 “향후 대기업들이 최씨 모녀에 대한 거액 후원을 시작한 출발점이 된다”고 지적했다.

구속 기소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변호인인 조성환 변호사는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삼성이 최순실씨와 조카 장시호씨가 설립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여원을 지원하는 과정에 박 대통령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를 수사 중인 특검팀에는 호재가 아닐 수 없는 발언이다.

최순실씨와 공모해 대기업들에 거액의 기부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조 변호사는 “(2015년) 7월 25일 작성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첩의 메모 중에 대통령이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 후원, 메달리스트 지원’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며 “(박 대통령이) 결국 이재용 부회장과 독대하면서 김재열 사장으로 하여금 영재센터를 지원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이 메모를 작성한 지난해 7월 25일은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를 한 날이다.

조 변호사는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영재센터를 후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이어서 거부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이재용 부회장의 매제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영재센터에 16억여원을 지원하는데 관여한 혐의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 특검팀은 김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변동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김성태 위원장이 30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을 위증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별검사팀 사무실을 찾아 박영수 특별검사와 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특검팀의 수사 내용, 김종 전 2차관 변호인의 주장,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의 수첩 메모 등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이 삼성의 최순실씨 지원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뇌물죄 적용 여부를 둘러싼 특검팀과 박 대통령의 ‘세기의 결투’에서 주도권은 점점 특검팀으로 옮겨가고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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