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의 사방팔방] 16. 朴 대통령 신년 간담회, 형식·내용 모두 F학점

정유라씨 모습. 사진=TV조선 방송화면 캡처

박근혜 대통령의 1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신년 간담회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면조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염두에 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었겠지만 박 대통령의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를 갑작스럽게 자청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된 대통령이 공개일정을 가진 것 자체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박 대통령이 직무 정지 기간에 자숙하지 않고 자신의 일방적인 의견만 피력하는 것은 소통과 거리가 먼 행동이다.

녹음과 촬영을 사실상 ‘금지’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막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묻고 싶다. 나중에 언론 보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론이 왜곡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녹음과 촬영을 불허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삼성 특혜 지원 의혹과 관련된 최순실씨 조카 장시호씨가 2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박 대통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지원 의혹’에 대해서는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팀을 비난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삼성 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이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아서 이런 것(합병)이 무산된다면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해라는 생각으로 국민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며 “저도 국민연금이 잘 대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중략) 그렇다고 여기를 도와주라, 이 회사를 도와주라 그렇게 지시한 적은 없다”고 관련 의혹을 정면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정말 확실하게 말씀드리는데 그 누구를 봐줄 생각, 이런 것은 손톱만큼도 없었고 제 머릿속에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 인사를 겸한 티타임을 하고 있다. 뉴시스=청와대 제공

 구속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메모를 통해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박 대통령만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지지하면서 수천억원의 피해를 본 국민연금의 손실은 누가 책임지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박 대통령은 “저를 도와줬던 분들이 뇌물이나 이상한 것을 뒤로 받은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온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는데, 이렇게 말려 가지고 여러 가지 고초를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요즘은 미소 지을 일조차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정범·공동정범·종범으로 구속된 최순실·차은택씨, 안 전 수석, 문 전 장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을 보면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국민과 아주 동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출두하고 있다. 뉴시스

특검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상대로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이 구속될 경우에도 박 대통령은 이런 표현을 계속 쓸 건지 궁금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 시간에 ‘밀회를 했다’ ‘굿을 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면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부터 박 대통령이 시간대를 분·초로 나눠 적극적으로 해명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날 보고를 받으며 (관저에서) 정상적으로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머리를 만져 주기 위해서 (외부에서) 오고, 목에 필요한 약을 들고 온 것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본관 집무실이 아니라 관저에서 정상적으로 집무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의 소재를 알지 못해 서면 보고서를 두 군데로 보냈다는 황당한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국정 난맥상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어이가 없을 뿐이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과 검찰의 기소 내용,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답변하기 곤란한 사항은 “수사 중”이라는 말로 비껴갔다.

최순실씨와 공모해 대기업들에 거액의 기부를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뉴시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를 제한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특검팀, 헌재, 법원은 물론 검찰이 공범·종범으로 기소한 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추가로 간담회를 검토한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국민을 위해 소통 차원에서 간담회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현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특검팀 수사, 헌재 심리, 법원 판결을 기다리면서 대면 조사나 출석 요청에 성실히 응하면 된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측에 취재 제한 조치를 엄중히 항의하고 재발 방지책을 강력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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