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103>데비와 캐리 기사의 사진
젊은 시절의 데비(좌)와 레이아공주 캐리
데비 레이놀즈(84)와 캐리 피셔(60) 두 모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새해 벽두부터 과히 상서롭지 못한 이야기여서 마음이 불편하지만 2016년 연말에 떠난 두 모녀가 미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 워낙 유명한 스타 배우들이었던 만큼 한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보다 하루 먼저 떠난 캐리 피셔는 ‘스타 워즈’ 시리즈의 레이아 공주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1950년대의 유명 가수 에디 피셔와 데비 레이놀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이혼한 어릴 적부터 하도 책에 파묻혀 살아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그에 걸맞게 배우이면서 소설, 시나리오, 희곡 등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조울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리다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캐리의 엄마 데비 레이놀즈는 생전에 자식이 먼저 죽는 걸 무엇보다 겁내왔다. 그는 2013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부모가 자식보다 오래 사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자식을 앞세우는 건 내 평생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썼다. 그리고 그 말을 입증하듯 딸이 죽은 지 하루 만에 딸을 따라갔다.

사실 데비는 캐리보다 훨씬 유명한 할리우드 황금기의 전설 중 한사람이다. 19세 때인 1952년 진 켈리, 도널드 오코너와 공연한 뮤지컬의 고전 ‘비는 사랑을 타고(Singing in the Rain)’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귀엽고 깜찍한 외모와 출중한 노래, 춤 실력으로 이후 배우 겸 가수 겸 댄서로 50~60년대를 주름잡으면서 ‘미국의 연인’으로 불렸다. 거기다 그는 ‘세기적인 스캔들’로 인해 더 유명해졌다. 그는 1955년 당시 ‘오 마이 파파’ 같은 노래로 인기절정이던 가수 에디 피셔와 결혼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로 등극했으나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남편을 뺏겼다. 영화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결혼했던 테일러가 58년 남편 토드 사망 후 피셔와 가까워지기 시작해 결국 피셔를 데비로부터 가로채감으로써 59년에 이혼한 것. 데비는 테일러가 토드와 결혼할 때 들러리를 설 만큼 가까운 친구였으나 하루아침에 연적이자 원수로 변했다. 그러나 데비는 테일러가 2011년에 사망하기 전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용기와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시대를 달리 해 일세를 풍미한 할리우드의 두 모녀 배우를 애도하는 긴 행렬을 보면서 다른 모녀 스타들도 생각났다.

데비와 캐리 못지않게 톱스타로 활약했거나 활동 중인 모녀 배우들은 많다. 우선 주디 갈랜드(1969년 47세로 사망)와 라이자 미넬리(70).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1939)’의 아역으로 출발해 뮤지컬의 걸출한 스타로 명성을 날린 주디는 데비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의 전설이다. 진 켈리, 프레드 아스테어 등 남자 ‘전설’들과 공연하면서 숱한 걸작을 남겼고 뮤지컬 외에 정극으로도 뛰어난 연기력을 과시했다. 또 그와 빈센트 미넬리 감독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자 역시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토니상, 그래미상 등을 모두 휩쓴 톱스타. 그가 주연한 ‘카바레(1972)’와 ‘뉴욕 뉴욕(1977)’은 엄마 주디가 주연한 ‘하비 걸스(Harvey Girls, 1946)’ ‘이스터 퍼레이드(Easter Parade, 1948)’ ‘스타탄생(Star Is Born, 1954)’ 등과 더불어 뮤지컬영화의 클래식이라 불려 손색이 없다. 두 모녀를 일컬어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의 양대 산맥이라 해서 지나치지 않다

또 재닛 리(2004년 77세로 사망)와 제이미 리 커티스(58) 모녀도 있다. 재닛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1960)’를 통해 욕실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연기로 가장 유명해 공포영화의 히로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 이전부터 이후까지 드라마틱한 연기로 더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남편이었던 토니 커티스와 여러 편에서 공연했는데 그가 1951년 커티스와 결혼했을 당시에는 남편보다 더 유명한 스타여서 한동안 커티스에게 ‘미스터 재닛 리’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제이미는 바로 이 커티스와 사이에 낳은 딸인데 묘하게도 제이미 역시 공포영화인 ‘핼로윈’ 시리즈로 ‘비명의 여왕(scream queen)’이란 별명을 들으면서 스타덤에 오른 뒤 드라마틱한 역할로 명성을 쌓았다는 점에서도 엄마와 닮았다.

잉그리드 버그먼(1982년 67세로 사망)과 이사벨라 로셀리니(64) 모녀는 어떤가. 최고의 고전 걸작으로 꼽히는 ‘카사블랑카(1942)’의 히로인으로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잉그리드는 그레타 가르보에 이은 스웨덴 출신의 미녀배우로 미모 뿐 아니라 훌륭한 연기력을 자랑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3)’ ‘가스등(Gas Light, 1944)’ ‘백색의 공포(Spellbound, 1945)’ ‘아나스타샤(Anastasia, 1956)’ 등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는 그러나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작품 ‘스트롬볼리(1950)’에 출연하면서 유부녀였으면서도 로셀리니와 사랑에 빠져 결국 이혼하고 로셀리니와 결혼하는 스캔들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그는 몇 년간 미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유럽에 머물렀는데 그 기간 중 딸 이사벨라를 낳았다. 이사벨라는 랑콤 화장품 모델로 출발해 데이빗 린치의 컬트 클래식 ‘블루 벨벳(1986)’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는 엄마 잉그리드처럼 다소 불행한 모습을 보였다. 즉 그는 1979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결혼했으나 82년 이혼한 뒤 또 다른 짤막한 결혼생활을 거쳐 데이빗 린치, 게리 올드먼과 계속해서 연인관계를 맺는 등 한군데 정착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모녀 3대가 이름난 배우인 경우도 있다. 티피 헤드렌(86)과 멜라니 그리피스(59), 그리고 다코타 존슨(27)이다. 티피 헤드렌은 히치콕의 이색 스릴러 ‘새(1963)’, 숀 코너리와 공연한 ‘마니(1964)’ 등으로 유명한 미녀배우로 아역배우 출신인 광고회사 중역 남편 피터 그리피스와 사이에 낳은 딸 멜라니 그리피스도 ‘워킹걸(1988)’ 등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른 톱스타다. 멜라니는 또 배우 돈 존슨과 결혼해 딸 다코타를 낳았다. 다코타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2010)’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 2015)’ 등을 통해 떠오르는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밖에 이들만큼 모녀가 모두 유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엄마는 대단히 유명한 모녀배우들도 있다. 메릴 스트립(67)과 메이미 거머(33). ‘동세대 여배우 중 최고’라는 평을 듣는 메릴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2차례, 여우조연상 한차례를 수상한 대배우다. 그러나 메릴과 조각가 돈 거머 사이에 태어난 딸 메이미는 2005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뒤 이런 저런 TV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아직 스타라기엔 갈 길이 멀다. 또 ‘지아이 제인’ 데미 무어(54)와 브루스 윌리스 사이에 태어난 딸 루머 윌리스(28), 왕년의 섹스심벌, 또 다른 마릴린 먼로로 불린 제인 맨스필드(1967년 34세로 사망)와 그의 딸 마리스카 하지테이(52), ‘델마와 루이스’의 수전 서랜든(70)과 그의 딸 에바 아무리(31)가 있고 할리우드 스타는 아니지만 프랑스의 톱스타 카트린 드뇌브(73)와 이탈리아 톱스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사이에 태어난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44)도 있다.

이런 스타배우 모녀들을 보노라면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참인 듯싶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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