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지난해 1월 4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지난해 인영이가 무균병동에 입원한 직후 병원 복지사와 상담을 했다. 맞벌이 우리 부부의 소득을 듣더니 국가든 민간단체든 지원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민간보험을 들지 않았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아내가 휴직하면서 소득이 크게 줄었다. 나라에서 소아 백혈병 환아 가정에 연간 최대 3000만원까지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는데 아내 휴직으로 인해 소득·재산 기준이 부합될 것 같았다. 인영이가 어느 정도 안정된 지난해 가을쯤 해당 지자체에 문의를 했다. A4 한 장을 빼곡히 채운 신청서류 리스트를 받았다. 병원과 은행, 관공서를 돌아다니면서 낼 자료를 모았다. 어머니와 장인·장모의 지난 6개월간 모든 금융기관 입출금내역서까지 자료는 방대했다. 해당기관에  직접 방문해 접수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입출금 내역서를 인터넷뱅킹을 통해 출력해 제출한 것은 은행 직인이 없어 무효라며 직접 해당 은행에 가서 떼서 제출하라했다. 은행원인 아내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개인금융정보 동의서에 사인을 했으니 정 못 미더우면 직접 금융기관에 확인하면 되지 않냐 따졌더니 그건 자신들 권한 밖이라고 했다. 며칠 뒤 또 전화가 왔다. 전세 계약서 ‘원본’이 누락됐다고 했다. 원본을 내면 그럼 나는 뭘 갖고 있냐고 했더니 그건 모르겠고 국가는 원본을 갖고 있어야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주 뒤 소득 초과로 지원이 불가하다는 우편을 받았다. 1년간 인영이 치료비를 비용처리해달라고 수백장의 병원 영수증을 냈는데 그건 누락됐다(이 역시 내가 관련 지침을 보고 알아낸 것이다). 아내 연봉도 휴직 전 지난해 기준으로 계산됐다. 전화해 따졌더니 지난해 의료보험료를 기준으로 연봉을 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휴직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재심사한다고 했다. 다시 제출해 재심사를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연봉산정이 문제였다. 지난해보다 올해 수당이 줄었는데 의료보험료 산정은 지난해 기준이었다. 내 연봉이 과다책정된 것 같다며 월급명세서를 보내주겠다고 하니 자신들은 권한이 없고 국민연금공단에 직접 전화해서 의료보험료를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공단에 전화하니 회사를 통해 신청하라고 했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지난 주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를 봤다. 심장병을 앓는 노인인 다니엘은 구직수당이 끊기면 생존에 위협이 오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구직수당 재신청을 권하는 복지사에게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거요”라며 거부한다. 그는 그 전까지 2시간 가까이 기계음을 들으며 상담사를 기다려 자신의 어려움을 합리적으로 설명했지만 우편으로 통보가 갈 것이라는 기계적인 답변만 들었다. 마우스를 클릭하라는 말에 마우스를 컴퓨터 스크린에 갖다대는 ‘컴맹’임에도 인터넷 신청을 도와주는 공무원은 없었다. 복지 담당 공무원들은 다니엘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나라 세금을 좀먹는 벌레로 취급했다. 영화에서 다니엘과 비슷한 처지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는 우리를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게 그들이 수법이다.” 다니엘은 자존심을 지킨 대신 목숨을 잃었다.
그는 질병수당 신청 항소심 직전 준비해 온 메모를 읽지도 못한 채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진다. 메모는 그의 장례식에서 읽혀진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복지는 국가라는 큰 틀의 보험이다. 우리는 세금을 내고 국가에 보험을 든다. 그러나 이 보험은 쉽게 받을 수 없다. 국가는 복지를 선별해 지원한다. 보험료(세금)를 냈더라도 심사에 통과하지 못하면 받을 수 없다. 백혈병 환아 지원을 보면 4인 가족의 재산 기준이 3억원 정도다. 수도권에 집 한 채 있으면 소득 한 푼 없어도 지원받을 수 없다. 뜻있는 시민·복지단체들이 백혈병 등 소아중증환자 입원비를 소득·재산에 관계없이 전액 지원하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국가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선진국들은 국가가 심사권한을 갖는 ‘선별적 복지’보다 모든 사람에게 대가없이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는 추세다. 최근 핀란드에서 실험적으로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정부는 보편적 복지에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지난해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에 중앙정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렇다고 우리 복지체계가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전체 가구의 실질소득은 5분기 연속 감소했는데 고소득층은 늘고 중·저소득층만 주는 추세다. 지난해 3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 소득을 하위 20%(1분위)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4.81로 3분기 연속 상승했다.

며칠 전 유일호 부총리가 기자실에 내려와 간담회를 가졌다. 부총리에게 핀란드 기본소득 사례와 서울시 청년수당 등을 예로 들며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정부 입장은 어떤지 물었다. 유 부총리는 기본소득과 청년수당은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핀트에 어긋난 대답을 했다. 당연히 기본소득은 전체 국민에게 일률적 지급하는 것이고 청년수당은 백수 청년만 대상이니 다르다. 그걸 모르고 한 질문이 아니라 현 선별적 복지 위주의 복지체계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어떤 인식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그런 대답은 없었다. 직설적으로 “지금도 청년수당은 반대 입장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한국의 다니엘 블레이크들은 많다.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모녀 사건과 비슷한 일들은 요즘에도 가끔 신문지면에 실린다. 인영이는 지금도 동료 기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그런 도움조차 없는 수많은 다니엘 블레이크들은 건조한 기계음같은 복지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자며 가임기 여성수를 기록한 출산지도를 만들어 물의를 일으켰다. 아픈 아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얘기할 자격조차 없다. 백혈병 환아 부모들은 “얘는 삼성화재가 살려준 아이, 현대해상이 키운 아이”라고 얘기한다. 대한민국의 아이는 없다. 지난 20년여 간 반 강제적인 국민연금까지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부했는데 “국가는 원본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들을 뿐이다. 우리 복지의 갈 길은 멀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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