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대화를 하다 두 번 말을 멈췄습니다. 북 받치는 감정을 눌러 담기 위함입니다. 3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남자는 즐거운 이야기를 할 때도 목소리에 짠함이 묻어있었습니다. 배우 홍경인처럼 말이죠. 연극연출가 윤영선 교수도 비슷하게 봤습니다. “너의 연기엔 블루스 같은 슬픔이 묻어있어.”
입을 "아" 벌리고 있는 고신웅씨.

어렸을 때부터 억지로 웃을 때가 많았습니다. 상처를 들키기 싫었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고신웅(37)씨는 삶 자체가 연기였던 것이죠.

 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한 뒤 연극배우가 됩니다.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한 극단에 합류했습니다. 이 극단은 아크로바틱이 가능한 배우를 선호했는데 신웅씨가 그걸 잘했습니다. 현대무용을 배웠었거든요. “예전엔 몸이 가벼워서 텀블링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신웅씨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습니다. 거기서 2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디케이헐리우드콤퍼니’라는 일본 극단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연극 이름이 ‘정자특공대.’ 이 작품의 번역과 내레이션을 신웅씨가 맡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정자라니.

 아무튼 신웅씨는 요즘도 기회가 되면 연기 일을 합니다. 얼마 전엔 한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습니다. 박종철의 ‘빠리쌀롱(Paris salon-Deuxieme)’


한국에 돌아온 신웅씨는 2010년 6월 합정역 7번 출구 근처에 카페를 차립니다. 신웅씨는 고씨 집안 3남매 중 막내입니다. 그래서 카페 이름이 쓰리고(3高)카페입니다. 큰누나는 네일숍을 하는데 이름이 ‘원’이고, 형은 식당을 준비 중인데 아마 식당 이름은 ‘투고’가 될 겁니다. 카페 입구엔 넉 달쯤 전부터 버스가 한 대 서 있습니다. 기아에서 나온 콤비버스. 문화를 배달하는 버스입니다.

쓰리고카페 앞에 주차돼 있는 쓰리고버스.

‘문화배달버스’는 현대자동차에서 후원받은 버스로 2015년 1월에 처음 운행했습니다. 첫 행선지는 전북 부안의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남대문 시장에서 갈치조림을 팔며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가 사는 곳입니다.
 버스엔 핸드드립 커피와 공연 팀을 실었습니다. 적적하실 동네 주민들을 위해 마을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연극할 때 마지막 작품이 뭐였는지 기억나세요?

문화공연을 즐기고 있는 전북 부안의 어르신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작품은 연극 ‘유타와 이상한 친구들’입니다. ‘신타’역을 맡아 연기했습니다. 신타는 마을에 사는 유령들과 함께 마을을 지키는 사내입니다.

 신웅씨는 6년 7개월 동안 이곳을 지켰지만 이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상수동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올라 기존 세입자가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 때문이죠.

 “어느 순간 이 카페는 손님들의 것이 됐어요. 손님들의 추억이 담긴 공간인데 제가 그 이야기를 끊어내면 안되는 거잖아요.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데 그게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쓰리고카페 외부 모습

인터뷰를 한 당일 자정쯤 다시 만났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치킨과 술을 사서 테이블 위에 깔은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빠리쌀롱이란 곡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기다릴게/ 저 구석 자리 어디에선가/ 빠리쌀롱 자 이곳으로 와줘/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난 기다릴 테니.’

쓰리고카페 내부 모습

*사진은 11월 13일 '이용상의 상수동 사람들'에 소개됐던 로프트84 김기풍씨가 촬영해 주셨습니다. 그 외 자료사진은 사진 밑에 출처를 적었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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