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104> 실화영화의 허구 기사의 사진
가장 비사실적인 실화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음울한 매력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빛나는 아름다움이 흑백화면을 가득 채웠던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 조지 스티븐스, 1951)’,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콤비의 버디 무법자 서부극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조지 로이 힐, 1969)’, ‘킹 오브 쿨’ 스티브 맥퀸의 후기 대표작 ‘빠삐용(Papillon, 프랭클린 J 샤프너, 1973)’,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 두 연기파 거물이 연기대결을 펼친 현대판 느와르 ‘히트(Heat, 마이클 맨, 1995)’, 그리고 2013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에 12년(12 Years a Slave, 스티브 맥퀸-배우 고(故) 스티브 맥퀸과 동명이인인 흑인감독이다, 2013)’. 장르도 제각각인데다가 무려 60년이 넘는 타임 스팬을 아우르는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사실에 바탕을 둔(based on a true story)’ 혹은 ‘사실에서 영감을 얻은(inspired by true events)’ 영화들이다. ‘젊은이의 양지’의 경우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 1925)’을 영화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즉 소설을 원작으로 한 허구로 생각하기 쉽지만 신분상승을 꿈꾸며 급기야 임신한 애인을 살해까지 하는 하층계급 젊은이의 발버둥을 그린 소설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 대규모 길거리 총격전 등 너무 ‘영화 같은’ 내용 때문에 이건 틀림없이 픽션이겠구나 싶은 ‘히트’ 역시 1960년대에 베테랑 악당 닐 맥콜리 추적에 나선 시카고 경찰 척 애덤슨 형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다만 사실 그대로는 아니고 대단히 ‘느슨하게(loosely)’.

이처럼 사실을 기반으로 한 ‘실화영화’는 옛날부터 할리우드가 즐겨 만든 장르였거니와 ‘실화’라는 요인이 관객에게 더 크게 어필할 수 있다는 인식 탓인지 갈수록 중요도가 커져 이제는 영화 제작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는 8개 작품 중 절반이 ‘실화영화’다. 2007~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다룬 ‘빅 쇼트(The Big Short, 애덤 맥케이)’, 대자연에 내팽개쳐진 인간의 생존 및 복수기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냉전시대 스파이 교환작전을 그린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 스티븐 스필버그)’, 그리고 카톨릭 성직자들의 성추문을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지 기자들의 이야기인 ‘스포트라이트(Spotlight)’ 등.

올해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후보에 오른 8편 중 4편(‘아메리칸 스나이퍼’, ‘이미테이션 게임’, ‘셀마’,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 또 그 전해에도 9편 중 6편이 실화영화였다.

그러나 실화영화에는 비판이 따른다. 과연 얼마나 사실을 충실히 재현했느냐는 시비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수석 영화비평기자인 앤 호너데이는 스크린에 자막으로 뜨는 ‘사실에 바탕을 둔’이라는 문구는 영화에 나타난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는 암시를 관객에게 주기 위한 목적일 뿐 실제 사실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실에서 영감을 얻은’이라는 표현은 ‘사실에 기초한’보다 영화를 만드는데 좀 더 많은 상상력의 도움을 받았다는, 즉 더 허구적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 예로 고어무비의 선구격인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사건(Texas Chainsaw Massacre, 1974, 2003)’은 실화 어쩌구 하지만 결코 실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실화영화들은 과연 얼마나 사실에 기초한 것일까? 데이빗 맥켄들리스라는 기자가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실제와 꼼꼼히 비교해 얼마나 실화에 가까운지를 조사했다. 그는 최근에 나온 14편의 실화영화를 대상으로 그 사실성을 꼼꼼하게 조사한 결과를 ‘정보는 아름다워(Information Is Beautiful)’라는 자신의 개인 웹사이트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전체적인 사실도는 60%에서 90% 사이였고, 사실에 대체로 충실한 영화는 ‘셀마’ ’스포트라이트‘ ‘빅 쇼트’, 반면 사실과는 많이 무관한, 때로는 동떨어진 영화들은 ‘이미테이션 게임’ ‘댈러스 구매자 클럽’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이었다.

그중 가장 사실적인 영화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투쟁을 기록한 ‘셀마(Selma, 에바 뒤베르네이)’가 지목됐다. ‘셀마’에는 킹 목사의 연설 하나하나가 들어가진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모든 사건은 검증 가능한 것들이다. 한 가지 흠을 잡자면 린든 존슨 대통령에 대한 묘사인데 감독은 그가 민권운동에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묘사했으나 이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와는 반대로 가장 비사실적인 실화영화로 맥켄들리스 기자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해독에 성공한 영국 수학자 겸 컴퓨터 개발의 선구자 앨런 튜링의 이야기인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 모텐 틸덤)’을 들었다. 맥켄들리스 기자에 따르면 영화는 튜링의 일과 인간관계, 성격 등을 멋대로 왜곡하는가 하면 무엇보다 튜링이 간첩혐의를 받았다는 완전한 가공의 부분을 집어넣었다. 이 못지않게 사실과 동떨어진 영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역작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다. 이 미 해군 SEAL팀의 저격수 크리스 카일 이야기에서 영화는 카일이 임무 수행과 관련해 죄책감과 소외에 시달리는 것으로 그렸으나 막상 카일이 쓴 자서전에 따르면 카일은 그 같은 감정적 아픔을 겪지 않았고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울러 카일이 이라크에서 활약한 부분도 상당히 과장되게 묘사됐다.

이밖에도 허황된 실화영화는 많다. 몇 개만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우선 벤 애플렉이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아르고(Argo, 2012)’. 1970년대 이란에 인질로 잡힌 미국 대사관 직원들 구출기인 이 영화는 작전을 CIA가 기획 주관한 것으로 묘사했으나 실제로는 캐나다가 작전의 주역이었다. 또 영화 막판에 인질들이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려할 때 이란 경찰 등 보안요원들이 AK47 소총을 쏘면서 비행기를 가로막으려 하는 장면이 있으나 이는 100% 허구로 인질들은 별 일없이 무사히 탈출했다.

백악관에서 34년간 집사로 일하면서 현대사를 지켜본 흑인 이야기인 ‘버틀러(Butler, 리 대니얼스, 2013)’는 어떤가. 영화는 극적 구성을 위해 주인공 집사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월남전에서 전사하고 다른 하나는 흑인폭력저항단체인 블랙 팬더에 가입하는 것으로 그렸지만 실제로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고 그 아들은 월남전에서 무사 귀환해 국무부 관리로 일했다.

이뿐이 아니다. 노래하는 가족 폰 트랩 일가의 실화로 널리 알려진 걸작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로버트 와이즈, 1965)’도 사실 왜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에서는 해군 함장 출신인 폰 트랩 대령이 아이들을 마치 수병처럼 엄하게 다루는 괴물 가까운 가부장, 가정교사 마리아수녀는 세상에 다시없는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인물로 그려졌으나 실제는 정 반대로 폰 트랩대령은 노래를 좋아하는 상냥하고 다정다감한 아버지였고 마리아는 화를 잘 내는 불같은 성격을 지녔었다고 한다. 아울러 온 가족이 짐을 싸들고 걸어서 알프스산맥을 넘어 스위스로 도피하는 모습이 영화의 라스트 신이었으나 실제로는 미국 공연을 떠난다는 핑계를 대고 모두가 기차를 타고 편안하게 오스트리아에서 도망나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조니 뎁이 1930년대의 악명 높은 갱 존 딜린저로 나온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마이클 맨, 2008)’는 주인공 딜린저를 눈에 띄게 하려고 그랬는지 당시 딜린저 못지않게 악명을 떨쳤던 갱들을 우습게 만들어놓았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총 맞아죽는 갱 ‘예쁜이(Pretty Boy)’ 플로이드는 실제로는 딜린저보다 3개월 후에 죽었으며 2만명이 참석한 그의 장례식은 오클라호마주 역사상 가장 성대한 것이었으나 영화는 이런 사실을 무시해버렸다. 또 역시 악명 높았던 갱 ‘동안(Baby Face)’ 넬슨도 마찬가지. 그 역시 영화에서는 찌질한 멍청이로 그려졌으나 딜린저와 함께 여러 은행을 턴 것은 물론 딜린저보다 나중에 죽었다.

물론 아무리 실화영화라도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영화화를 하려면 허구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전제를 깔고 보면 가끔 ‘좋은’ 실화영화들도 눈에 띈다. 우선 로스앤젤레스 기자클럽이 지난해 새로 제정한 베리타스상 첫 번째 수상작 ‘스포트라이트’. 베리타스가 라틴어로 진실이라는 데서 보듯 가장 사실에 충실하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영화가 이 상의 선정대상이다, 이와 별도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또 다른 리스트에 따르면 좋은 실화영화 10선은 이렇다.

①‘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스티븐 스필버그, 2002)’=19세가 되기 전에 수백만달러를 사취한 희대의 사기꾼 이야기

②‘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스티븐 스필버그, 1993)’=나치 시절 독일인이면서 1천명이 넘는 유대인을 구출해낸 사업가 이야기.

③‘아메리칸 갱스터(American Gangster, 리들리 스콧, 2007)’=베트남의 전장에서 귀환하는 군용기를 이용해 헤로인을 밀수한 흑인 갱과 그를 쫓는 연방수사관 이야기.

④‘성난 황소(Raging Bull, 마틴 스코세지, 1980)’=실존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의 인생역정.

⑤‘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 스티븐 소더버그, 2000)’=평범한 사무원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전을 펼친 끝에 승리한 여성의 법정투쟁기.

⑥‘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 론 하워드, 2001)’=정신장에를 앓으면서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 교수의 이야기.

⑦‘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 보아즈 야킨, 2000)’=인종차별 등에 저항하는 고등학교 미식축구 흑인 코치의 분투기.

⑧‘머니볼(Moneyball, 베네트 밀러, 2011)’=통계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끌어모은 뒤 팀을 살려나가는 프로야구 감독의 이야기.

⑨‘8마일(8Miles, 커티스 핸슨, 2002)’=가난하게 살다가 백인으로서는 희귀하게 래퍼로 크게 성공하는 에미넴의 반생기,

⑩‘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마이클 앱티드, 2006)’=노예무역 금지법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는데 크게 공헌한 반노예주의자 윌리엄 윌버포스 이야기.

하지만 ‘좋은’ 실화영화에도 이런 저런 반론이 따라다니는 걸 보면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만든 영화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부턴 ‘실화에 기초했음’ ‘실화로부터 영감을 받았음’ 따위의 문구는 아, 그래? 하고 지나치는 게 마음 편하겠다.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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