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의 두 얼굴, 대중축제이자 전문인 미술 제전

덕수궁을 낀 서울의 정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은 샐러리맨들의 일터인 서소문 빌딩가를 지척에 두고 있다. 그래서인가. 지난해 11월 초,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 2016’ 행사장을 찾았을 때 직장인들이 꽤 눈에 띄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9월 1일 개막한 전시가 총 81일의 대장정의 막바지를 향해가던 즈음이었다. 젊은 커플과 유모차를 끌며 정답게 구경하는 젊은 부부도 보였다. 비엔날레가 대중적 축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근데 좀 아이러니다. 비엔날레야말로 ‘난해한’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미술제전이 아닌가. 현대미술은 회화와 조각 같은 전통 장르를 넘어 사진, 영상,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으로 다양해졌다. 특히 미술의 미래를 보여주고자 하는 비엔날레에서는 영상,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이 점차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술 하면 회화, 조각을 떠올리는 이들에겐 어떻게 저런 작품도 예술이 될 수 있지 의문이 생기거나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아리송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일반인이 축제처럼 찾는 미술현장이라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미술기획자 김노암씨는 “갤러리는 회화와 조각 등 익숙하고 편안한 매체의 작품을 전시한다. 하지만 컬렉터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일반인에게는 ‘차가운 공간’의 성격을 갖는다”며 “비엔날레는 미술 관행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하는 장이라 난해할 수 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 등 관이 주도하며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을 하는 덕분에 축제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고 진단한다.

비엔날레의 본질은 아방가르드 미술을 선보이는 곳이다. 각국의 주요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전시기획자 등 미술 분야 전문가들이 새로운 미술 흐름을 읽고, 또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찾는다. 서울시립미술관 비엔날레에도 큐레이터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앞서 8월 말 홍콩 취재를 갔을 때였다. 현지의 작가, 미술기획자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 했다. 그들은 한국의 현대미술 수준을 칭찬하더니, 비엔날레를 보러 방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비엔날레가 그만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짝수 년 해이면, 9∼11월 약 석 달 간 미디어시티서울,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등이 동시에 열려 미술시장에선 비엔날레 특수를 누린다.

여기서 잠깐! 비엔날레에 대해 알아보자. 비엔날레는 2년 마다 열리는 대규모 미술전람회를 일컫는다.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1895년),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1932년), 브라질의 상파울루비엔날레(1951년)가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힌다.우리나라에선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 제1회 행사를 개최했으니 20년이 넘었다. 이후 2002년 부산비엔날레가 생겨나 경쟁 구도가 됐다. 2000년 SeMA(서울시립미술관)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에 이어 2006년 대구사진비엔날레, 2012년 창원조각비엔날레도 등장했다.

# 호기심 많고 과감한 초보 컬렉터, 비엔날레에 가라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면, 대중 축제이면서 전문가들을 위한 미술제전이라는 비엔날레가 갖는 이중적 성격은 초보 컬렉터에게는 엄청난 장점이다. 축제처럼 즐겨도 좋지만 구매의 관점에서도 좋다는 얘기다. 비엔날레야말로 미술의 미래가치를 보여주는 곳이다. 좀 경박하게 표현하면, 10년 후 돈이 될 젊은 작가를 발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비엔날레는 국제 공모를 거쳐 선정된 예술감독이 메가폰을 쥐고 엄선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예술감독의 안목을 빌릴 수 있다.

비엔날레에는 거장도 오지만, 젊고 참신한 작가들도 초청을 받는다. 2016년 미디어시티서울을 보자. 이 때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기획자인 백지숙씨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전시 주제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20억 광년의 고독’에 나오는 화성인의 언어에서 땄다. 전쟁 재난 빈곤 불평등 같은 원치 않는 유산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피에르 위그,〈 Human Mask〉, 2014, 필름,컬러,스테레오,사운드, 266, 19분, 작가및 런던 하우저&워스 갤러리 및 파리 안나 레나 필름 제공, ⓒ Pierre Huyghe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이 역량 있는 유망작가에게 수여하는 휴고 보스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영상 작품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유령 도시가 된 일본의 후쿠시마. 버려진 집에 흰 가면을 쓴 여인이 돌아다닌다. 의자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던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쓰다듬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팔에 털이 숭숭 난 ‘그녀’는 사람 가면과 가발을 쓴 원숭이였던 것이다. 이 영상 작품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의 행위를 반복하는 버려진 원숭이를 통해 지구 종말의 모습을 묵시록처럼 보여준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유명 작가들 외에도 아프리카 중남미 작가와 20, 30대 젊은 작가들의 참여 비중을 예년보다 높였다. 한국의 김희천, 차재민, 이미래, 김실비 등은 백 감독이 꼽은 샛별들이다. 이들 작가들은 문제의식이 예리하며, 풀어가는 방식도 신선하다. 
차재민 〈12〉, 2016, HD 비디오, 3채널, 컬러, 사운드, 33분 33초,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차재민은 최저임금위원회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현실을 꼬집는 작품 ‘12’를 선보였다. 비공개 회의다 보니 2015년의 회의 내용을 2016년의 최저 임금 결정 내용을 보고 유추할 수 있다. 커튼 뒤에서 열렸던 비공개회의를 출연한 12명의 연기자들이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상이다. 회의 참가자들을 기차처럼 길쭉하게 늘여 앉힌 화면은 노동자들의 다음해의 미래가 얼마나 얼토당토않게 결정되는지를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공적인 토론 행위가 사적인 밀실에서 이뤄지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미래의 국가와 민주주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김희천 <썰매>, 2016, 싱글 채널 비디오, HD, 10-20분,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커미션,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김희천의 영상 작품 ‘썰매’는 ‘신종 자살 클럽’ ‘인터넷 정보 유출’ 등 한국 사회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데, 그 형식이 가볍고 풍자적이다. 화면에서 전개되는 영상은 마치 전자오락실에서 자동차 경주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든다. 광화문 일대 도로가 순식간에 좌로, 우로 홱홱 바뀌고, 급커브를 틀기도 하며 질주하는데, 어질어질하다 못해 멀미가 날 정도다. 매체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는 이들 젊은 세대는 PC방 문화까지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영상 작품은 어떻게 사고 어떻게 감상하지?

컬렉터에게 비엔날레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백지숙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비엔날레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선 작품이 나온다. 갤러리에서 볼 수 없는 최신의 경향, 실험적인 작품을 성역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서구 중심의 유명 작가가 아니라 비서구권이나 주류 전시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
김노암씨는 “비엔날레는 시대를 앞서가는 시장이다. 어떤 작가의 마켓이 형성되기 전에 그 시장성 여부를 떠나 기획자의 입장에서 그 작가의 주제, 표현방식 등이 중요하다면 소개하는 것”이라면서 “나중에 상품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 도 있어 리스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작가가 비엔날레에 초청받았다는 사실은 그 작가 작품의 경제적 가치를 올리는 참고 요인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2016 광주비엔날레에서 관람객들이 전소정 작가의 '예술하는 습관'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광주비엔날레 제공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시상제도가 있어 내 안목을 실험해 볼 수도 있다. 스웨덴 출신 마리아 린드가 총감독을 맡은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참신한 한국 작가들이 많이 초청됐다. 이중 전소정 작가의 작품 ‘예술 하는 습관’은 6개의 화면을 길게 늘어세운 것이다 .각각에는 현대판 공양을 보는 듯 속절없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성냥개비로 쌓아올린 탑이 곧 속절없이 무너지고, 항아리에 물을 계속 붓는데, 바닥이 깨져 물이 새고 있는…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이 뭉클했다. 오래도록 바라봤는데, 전 작가의 작품이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청년작가상)을 받은 것이다.

미술 현장을 취재하면서 점차 영상 작품에 매료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컬렉션 대상으로서 미디어아트는 어떨까.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가격은 젊은 작가들의 경우 500만원∼100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미디어 아트는 구현하기 위해 별도의 장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화, 사진, 조각처럼 벽에 걸거나 바닥에 그냥 올려두는 게 아니다.

“기술에 젬병인 내가 그걸 구입해 한번 틀어나 볼 수는 있을까.”
이런 원초적인 고민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미디어아트는 아직까지는 미술관에서 주로 구입한다. 외국에서는 개인 컬렉터도 찾는다고 한다. TV수상기에 연결해 보는 사람도 있다고.

분명한 건 미디어아트는 지금은 미술관이이나 전문 컬렉터만이 구입하지만 10년 후면 보다 보편적인 소장품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의 성장과정이 그랬다. 사진은 1990년대만 해도 사진관 문화였다. 그랬던 게 한국에서 비엔날레가 생겨난 이후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면서 지금은 예술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이거, 모험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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