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집·유교 터전에 예배당 기적” 대구 푸른초장교회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 궁산(弓山) 자락, 금호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푸른초장교회(임종구 목사)는 말 그대로 ‘물가에 심은 나무’(렘 17:8, 시 1:3)처럼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부축하며 쑥쑥 자라고 있는 역동적인 교회다. 창립 21년 만에 등록교인 1000여명(출석 600명)의 중형교회로 성장했다. 연혁만 보면 아직도 신생교회다. 하지만 사역 규모면에선 여느 지방의 대형교회 못잖다.

임종구 목사가 교회 옆 이락서당 앞에서 무당집과 교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시작은 미약했다. 1996년 개척당시 교인은 4명이었다. 2006년 창립 10주년엔 자체 예배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북 안동에 제자교회를 세우는 ‘기행’을 보여 시선을 모았다. 2년 뒤엔 단독예배당까지 건립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지난해엔 제주도와 네팔에 20주년기념교회를 건립했다. 제주 가시리교회와 네팔렐레교회는 올 부활절 전에 헌당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전 교인들이 동참하는 국제구호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성도들과 함께 국제구호개발옹호NGO 월드비전이 펼치고 있는 ‘밀알의 기적’ 프로그램(후원아동 결연사업)에 대거 동참했다.

신대원 2학년 때 신혼방에서 개척
임 목사는 1996년 총신대신대원 2학년 때 대구 남구 대명동의 신혼방에서 고등학생 2명과 교회를 창립했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한 아파트 상가 일부를 무상으로 임대해 예배를 드렸다. 개척 3년 만에 성도 10명이 출석하는 초미니 교회가 됐다.

겨울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이 지난 7일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 푸른초장교회 공공도서관에서 책 읽는 습관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IMF) 때 상가 주인의 부도로 길거리 교회 신세가 됐다. 주일 오전엔 인근 어린이집에서 임시예배를 드렸다. 오후에는 주암산기도원에서 오후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도 없는 설움 속에서도 성도들은 1년이 넘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기도했다. 응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서지역에 들어서는 고급 아파트 단지에 상가건문을 분양 받아 자체 예배당을 갖게 된 푸른초장교회는 고 옥한흠(사랑의교회 창립자) 목사로부터 훈련받은 프로그램을 실천했다. 열정적인 예배와 지역주민들을 섬기는 목회철학이 열매를 맺기 시작해 창립 10년 만에 150배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호사다마였을까. 2002년 여름휴가 중 교통사고를 당해 경북 안동에서 잠시 머무는 적이 있었다. 그 때 이 지역의 복음화률이 2.5%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고 임 목사는 다짐했다. 해외선교도 중요하지만 이 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교인들 생각도 같았다. 교회를 소유 개념이 아닌,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가족들이 함께하는 ‘한 영혼을 사랑하는 공동체’로 여겼다.

임 목사는 당시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소유하지 말고 장막의 터를 넓혀야 합니다. 단독예배당을 갖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언젠가는 건축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가교회로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기에 만족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예배당을 짓고, 입당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교인들은 푸른초장교회 예배당을 건축하는 기쁨 이상의 감격을 경험했다.


바로 ‘비우면 채워주신다’는 말씀이었다. 안동제자교회를 짓고 나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댁구 본교회의 마을 뒷산(궁산) 무당집과 당산나무가 있는 땅 661㎡(200여평)가 급매물로 나온 것이었다. 마을의 수호나무였던 백송이 죽고 무당이 암에 걸린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백송대신 일본 소나무 리기다를 심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백송도 아니고 일본 소나무를 심자 마을사람들도 하나 둘씩 마음이 떠나기 시작할 때였다.

임 목사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교회가 땅을 사겠다고 나서자 무당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땅을 교회에 넘기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10주년기념교회 짓고 나니 독자건물 예배당 선물
문제는 이락서당(伊洛書堂)이었다. 교회를 신축하려면 이 서당의 땅 일부를 매입해야만 했다. 하지만 9개 문중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터라 대지를 쉽사리 살 수 없었다. 1년 정도 각 문중의 대표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처음엔 서당 땅 한 자락이라도 교회에 내줄 수 없다고 완고한 입장을 보이던 이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세대들을 위해 주민들이 함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도서관도 함께 건립하겠다는 임 목사의 제안에 마음을 열었다. ‘예배당은 절대 안 된다’고 하던 이들이 무려 1322㎡(400여평)를 내놓았다.

마침내 교회개척 12년 만에 5층 규모 예배당을 신축했다. 2층(600㎡)은 처음으로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허가를 받았다. 이곳엔 장서 3만5000권을 비치했다. 미국에서 모아 온 10만권 중 영어서적 3만여 권도 꽂았다. 나머지 7만권은 아직 컨테이너 안에서 잠자고 있다.

지역사회와 소통을 위한 활동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매년 봄 외국인근로자와 북한이탈 주민 등 다문화 주민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노인정 봉사팀, 금호강청소팀, 거리청소팀, 궁산자연보호팀, 환경미소원위로팀 등 10여개 팀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편다.

교회 5층에 자리 잡은 ‘헤븐’은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는 푸른초장교회의 또 다른 명물이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강정고령보가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이 일품이다.

10년 전 약속 ‘민들레문화센터’ 건립계획
푸른초장교회의 정유년 새해 목표는 민들레센터(가칭)를 건립하는 것이다. 이락서당 땅 일부를 사들이면서 약속한 ‘도서관 건립’을 본격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다. 현재 대구 달서구에 건축허가신청을 내놓은 상태다.

2017년 교회 표어는 ‘신자, 가족, 시민이 되자’로 정했다. 교회 안에서 신자로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공동체로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들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되겠습니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교인들과 함께 단단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임 목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전 교인이 함께 공부하는 ‘면학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대요리에 대해 강의했다. 올해는 성도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벨직(네덜란드)신앙고백서를 읽을 계획이다.

조선시대 서당 겸 서원이었던 이락서당은 달성지역 9개 문중의 33가구 선비들이 쌀 한 가마씩을 추렴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수는 금호강(이수)와 낙동강이 합수지역이라는 의미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금호강 하류, 강창 앞에 있는 푸른초장교회 6층 목양실에서 금호강 서쪽 강정고령보를 바라보면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합수 지점에는 독특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디 아크(The ARC)’라는 전시공간이다.

지난 4일 오후 임 목사는 푸른초장교회 인근의 볼거리를 설명하면서 교회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서 보면 노아의 정말 노아의 방주를 보는 것 같아요. 강과 물, 자연을 모티브로 한 디 아크는 4대강문화관이라고도 불리는데 디 아크는 건축물이자 예술작품으로서 독특한 외관 못지않게 눈이 즐거워지는 색다른 전시 공간이지요. 낙동강은 금호강을 만나 더욱 더 거대한 물줄기가 됩니다. 푸른초장교회는 이락서원을 만나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세상의 한 영혼을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다 하고자 합니다.”

2015년 총신대신대원에서 ‘칼뱅과 제네바 목사회’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임 목사는 한국교회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16세기 장 칼뱅의 종교개혁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100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말로만 외치는 교회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가서서 실천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온갖 부패와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빛과 소금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 목사와 작별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강창교 옆 푸른초장교회 현판을 바라보면서 1980년대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불려지던 민중가요 한 소절을 떠올렸다.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은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안치환의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대구=글·사진 윤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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