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민들이 지난해 12월 서면 쥬디스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국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은 의문투성이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은 10일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TV를 시청하지 않았다고 밝힌 반면 청와대 관계자는 11일 박 대통령이 TV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요구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이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한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했지만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헌재는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답변서에 대해 사실상 퇴짜 판정을 내렸다.

헌재 이진성 재판관은 10일 “대통령의 기억을 살려 당일 행적을 밝혀야 하는데 답변서가 (헌재) 요구에 못 미친다”며 추가 소명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 ▲박 대통령이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확인했는지 ▲김장수(현 주중대사) 당시 국가안보실장과의 7차례 통화를 입증할 기록이 있는지 등을 밝히라고 주문했다.

답변서 내용과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박 대통령의 안이하고 한심한 대응 자세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세월호에 탑승한 최모군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2분 119에 침몰 신고를 했고, 참사 현장이 오전 9시19분부터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TV를 통해 생중계를 보면서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을 때였다.

침몰한 세월호. 국민일보DB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일분일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과 한참 동떨어지는 행동을 보여줬다.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사고 상황 및 조치 현황 보고서를 수령하고 오전 10시15분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참사 발생부터 1시간 이상 지난 시간이다. 그후 박 대통령은 김 실장과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구조를 독려했다고 한다.

초대형 사고라고 직감했으면 TV를 통해 참사 현장을 봐야 했다. 김장수 실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YTN을 보면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과정을 TV로 확인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의 이중환 변호사는 10일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TV를 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휘계통을 통해 서면 보고를 받으면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다급한 상황에서는 서면 보고보다 실시간으로 현장을 중계하는 TV를 시청하는 것이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될 텐데도 김 실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의 이중환 변호사.뉴시스

이러는 사이 오전 11시30분쯤 세월호가 뱃머리만 남기고 침몰했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세월호와 무관한 외교안보수석실 보고 검토(11시34분), 교육문화수석실의 자율형 사립고 보고(11시43분), 기초연금법과 관련해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10분간 통화(12시50분)를 했다는 점이다.

 답변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략 12시가 지나고 최 수석과 통화하기 직전에 점심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용 담당자를 불러 20분 정도 머리 손질을 하고, 세월호와 관련 없는 외교안보수석실 서면 보고를 검토하고 난 다음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요, 늑장 출동이 아닐 수 없다. 초대형 사고일수록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학생을 포함한 탑승객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TV 시청을 통한 상황 파악도 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와 비교할 수 없이 한가한 보고나 받고 통화를 했다는 답변서를 대하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도대체 박 대통령은 무엇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까.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떠올리기는 했을까. 존엄한 국민의 생명과 일상적인 업무의 중요성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무능한 것일까. 아니면 말 못할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걸까.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차 변론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헌재가 알맹이 없는 답변서라고 지적하고 언론이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자 청와대가 반격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점심 즈음에 TV를 통해 사고 현장 영상을 확인했다고 머니투데이가 11일 보도한 것이다. 머니투데이는 “박 대통령 측 관계자는 11일 머니투데이 ‘더300’과 전화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에는 서류를 검토하느라 바빠 TV를 보지 못했지만 점심 무렵 TV를 통해 사고 영상을 봤다고 측근들에게 밝혔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이중환 변호사가 전날 박 대통령의 TV 시청을 부인했기 때문에 머니투데이가 보도한 ‘박 대통령 측 관계자’의 발언이 맞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설령 이 관계자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해도 박 대통령의 어설프고 한심한 늑장 대응을 이해할 국민이 있을까.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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