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후 미술계 거목이 될 신진 작가를 족집게처럼 알아보는 방법은 없을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월급쟁이 초보 컬렉터라면 ‘떡잎 작가'를 감별하는 안목에 대한 갈증이 더 클 것이다. 미술계의 시스템을 알면 ’떡잎 작가’를 의외로 쉽게 만날 수 있다. 바로 주요 미술관이 시행하는 공모전과 각종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다.

# 수상은 다음 작업으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2016년 제16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인 김세진 작가. 45세 나이제한 턱걸이로 응모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2016년 송은문화대상 대상 수상자인 김세진(46) 작가. 40대 중반에 ‘청년작가’에게 주는 큰 상을 받았다. 그런 자신을 “헌 거 같은 새 거”라고 멋쩍은 듯 표현했지만, 얼굴엔 기쁨이 넘쳐났다. 지난해 45세 나이 제한에 턱걸이로 응모해 최종 후보 4명에 포함됐고, 염지혜, 이은우, 정소영 등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30대 후배 3명을 제치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송은문화대상은 ㈜삼탄의 문화재단인 송은문화재단이 무명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만든 상인데, 비슷한 다른 상의 응모·추천 가격이 40세 이하인 것과 달리, 여기는 나이제한이 45세까지다.

“응모할까 말까 꽤 주저하긴 했어요. 30대 후배들과 경쟁한다는 게 반칙한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예전 같으면 못했을 거예요. 영국 유학 후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 상이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데, 못할 거 없겠다 싶더라고요. 작가로서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계기가 필요하거든요.”

최종 후보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대상 발표가 난 지난 1월 초 그녀를 만났다. 출품작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다. 송은문화대상은 1차 포트폴리오 심사를 거쳐 2차 심사에서는 신작을 내게 해 경합을 시킨다. 김 작가는 2점의 영상작품과 1점의 키네틱 아트를 선보였다. 영상작품 ‘도시 은둔자’(2016)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전시 안내원, 보안 요원의 일상을 다루는데,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직업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을 리얼하면서도 시적인 영상에 담아내 노동이 어떻게 소외되는가를 보여준다. 웃음과 친절을 ‘장착’한 그들의 표정 깊숙이 숨기지 못한 묘한 고독과 슬픔이 감지된다. 이 작품은 그녀의 이전 작품인 동남아 출신 가사도우미의 모습을 기록한 ‘(홍콩) 빅토리아 파크’(2008), 야간 경비원과 톨게이트 요금 징수원을 담은 ‘야간 근로자’(2009) 등과 맥이 닿아 있다.
영상작품 ‘열망으로의 접근’ 스틸 이미지, 단채널 HD비디오, 사운드, 16분50초(2016) 송은아트스페이스 제공

또 다른 작품 ‘열망으로의 접근’(2016)은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의 이민사를 유럽인, 아시아인, 중남미인 등 세 인종 코드로 나눠 다룬다. 이민자가 갖는 보편적 정서인 신세계에서의 성공에 대한 욕망과 현실에서의 애환을 다루면서 미국 이민 당국의 인종적 차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미국 뉴욕 인근 앨리스 섬을 통해 입국했던 유럽 이민자, 샌프란시스코 인근 앤젤섬을 통해 들어왔던 아시아인, 그리고 멕시코 국경을 넘어왔던 중남미 이민자의 서로 다른 이민 풍경이 드러난다. 중국이민자는 기생충 감염 여부부터 확인하지만, 유럽인은 보다 좋은 시설에서 입국 절차도 간소화하는 등 ‘패스트 트랙’을 타는 식이다. 아카이브 자료와 실제 촬영한 장면, 여기에 만화와 그래픽을 ‘토핑’처럼 얹어 분위기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종횡무진 한다. 이 작품은 그가 뉴욕에서 1년간 레지던시를 하는 동안 찍은 것이다(레시던시가 새로운 영감의 원천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녀의 작품 세계는 일관되게 영상이다. 그런 그가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이라니. 더 놀라운 건 동양화과 졸업 작품전에 교수와 싸워가며 유일하게 비디오 작품을 냈던 ‘삐딱이 미대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양화를 배워 자연스럽게 미대 전공도 동양화과를 선택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캠코더가 막 대중화되던 1990년대 초반, 친구한테서 빌린 캠코더에 그야말로 ‘뿅’ 갔다. 신세계가 보였단다. 이후 그녀의 이력은 영상으로 점철돼 왔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를 영상미디어를 배웠고, 졸업 후에는 상업영화판에도 기웃거렸다. 여러 좌충우돌의 모색 끝에 30대 후반, 결국 순수 미술로 돌아온 그녀가 택한 건 영국 유학이다. 늦은 나이, 주저 끝에 감행한 유학에서 그녀가 배운 건 작가로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런던 슬레이드 미술대학교 석사학위를 하면서 미술 작업 못지않게 예술 하는 태도를 배웠다고. “밸런스를 맞춰줬어요. 작품의 예술성을 추구하면서 작품 제작을 실현할 수 있는 펀딩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해줬어요. 한국에선 배울 수 없던 것이었어요. 졸업과 동시에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어떻게 공모전에 지원하는지 등에 대해 배웠습니다. 자기 작업을 변론하는 실력, 말하자면 말싸움도 굉장히 늘었어요. 하하.”

최종 후보에 오른 나머지 3명 우수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원, 대상을 받은 그에게는 2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상금은 다음 작업의 종자돈에이요. 새로 사야할 장비만해도 견적을 뽑아보니 1000만원도 넘어요”라는 그녀는 “여기저기서 한 턱 내라는 데 큰일”이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 수상, 미술계 올림픽으로의 도약 뜀틀 되기도

김 작가의 말처럼 미술상 수상은 차기 작업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다. 그렇게 또박또박 나아가다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때로는 도약의 뜀틀이 되기도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신진작가에게 주는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수상한 이완(38) 작가가 그렇게 힘차게 도움닫기 한 경우다.
이완 작가 '메이드 인 대만'. 3채널 비디오와 생산품(설탕, 설탕스푼, 설탕그릇), 13:36 반복상영 , 2013년.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2004년 동국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그 흔한 레지던시에도 입주하지 못했다. 교수에게 사정해 학교 구석에서 미술작업을 해야 했던 그가 10여년 후 ‘미술계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뽑힐 거라곤 누구도 생각 못했다. 그는 코디 최(56) 작가와 함께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가 됐다.

미대를 졸업하고 거친 세상에 던져졌을 때의 불안함과 막막함. 오로지 작업하고 작업하는 것으로 그는 맞섰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기를 몇 년. 대학 졸업 9년째인 2013년 여름, 그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한 큐레이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년 아트스펙트럼전을 하려는 데 작품 설명을 해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삼성미술관 리움이 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할 목적으로 시행하는 격년제 전시 참여 및 시상 후보가 됐다. 운 좋게도 2014년 처음 제정한 아트스텍트럼상 작가상까지 받았다. 리움이 주목한 이완의 작품은 ‘한 끼의 아침식사’를 직접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메이드 인’ 시리즈다. 대만과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설탕, 비단, 옷, 금을 직접 생산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찍었다. 아시아지역의 근대사를 관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0대 초반의 무명작가가 일약 한국 대표 선수가 돼 ‘미술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교두보는 누가 뭐래도 아트스펙트럼상이다. 상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미술계에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었고 세상은 그를 주목했던 것이다.
박경근 작, '군대: 60만의 초상 ', 2016. 2채널 HD 영상 설치, 가변 크기.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2016년 봄 군대문화를 다룬 영상작품 ‘군대: 60만의 초상’으로 제2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은 박경근 작가는 그해 연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메이저 화랑인 현대갤러리와 아라리오갤러리가 모처럼 젊은 작가를 초청한 기획전을 열었는데, 이웃한 두 갤러리의 전시에 박경근 작가가 동시에 겹치기 출연한 것이다. 그만큼 상을 받은 작가들을 상업 갤러리나 미술 기획자들이 주목한다는 이야기다.

# 미술계의 ‘등용문’ 수상 제도 어떤 게 있나

미술대학에서 실기를 전공하고 졸업하면 대개 개인전이나 그룹전을 통해 작가로 데뷔한다. 신진 작가는 통상 대학 졸업 후 개인전 1∼4회 정도를 거친 35세 이하를 말한다. 요즘에는 유학 등의 이유로 인해 데뷔가 늦어지는 추세라 45세 이하로 그 개념이 확장하고 있다.
꿈 많은 신진작가들이 중견 작가로 성장해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전업 작가로 성장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만큼 어렵다. 국·공립 및 유수의 사립미술관에서 운용하는 공모제 혹은 추천 프로그램은 미술계의 될성부른 나무가 될 떡잎을 미리 발굴해 키워주는 통로다.

미술계에서 수여하는 상은 여러 층위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전’이 권위 있고 오래됐다.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한 이 전시는 민주화 바람과 함께 국립기관의 보수성을 깨로 신진 작가들의 실험성을 살려주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격년으로 내부 심사를 거쳐 선정되며 이불·최정화·서도호 등 중견 스타 작가들이 이곳을 거쳤다. 서울시립미술관 등 공공미술관에서도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전시를 열어주고 있다. 민간에서는 2001년 시작된 삼성미술관 리움의 ‘아트스펙트럼전’이 유명하다. 2014년부터는 지원을 강화해 선정된 10명 중 1명에게 작가상을 수여한다. 이형구(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문경원(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김성환(2013년 테이트모던 탱크 갤러리 선정 작가) 등을 배출했다. 또 송은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송은미술대상, 금호미술관이 시행하는 영아티스트 공모 프로그램, OCI미술관의 영크리에이티브스 등의 공모전이 미술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참고로 프랑스 패션기업 에르메스가 주는 에르메스상,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신진보다는 중량급 작가에게 주어진다.)

미대 졸업생들은 35세가 되기 전 붓을 꺾을 공산이 크다. 그만큼 예술가로 살면서 생계를 유지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가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은 다음 세계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이며 현실의 무게에 눌려 부러질 나무를 부축해주는 힘이 된다. 컬렉터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작품을 산 작가가 미술활동을 그만 두는 것이다. 따라서 컬렉터들이 상을 받은 신진작가를 주목하는 것은 리스크가 가장 적은 투자 방법이다. 동시에 그들에겐 든든한 버팀목 하나를 보태주는 일이기도 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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