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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고 허순길 목사, 아름다운 5無 장례식

고 허순길 목사 빈소. 유족 제공

지난 10일 신학자 고 허순길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 서구 고신의료원 장례식장에는 영정 사진이 없었고, 이름도 꽃도 부의함도 없었다. 심지어 예배까지 없었다. 

고인은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런 식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자녀들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유족들은 매우 간소하게 고인의 빈소를 차리고 부의금과 조화를 사양한 채 조문객들을 맞았다. 

조문객들은 너무 생소한 빈소 모습을 보고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지난해 10월말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열린 개교70주년기념학술대회에서 인공호흡기를 끼고 강연하는 허순길 목사. 유족 제공

비록 기독교인들이라 절은 하지 않지만 영정 앞에서 유가족을 위해 간단히 묵상기도 정도는 하는 것이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습인데, 고인은 그런 행위조차도 평소 바람직하지 않은 의식으로 보았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조문객들에게 영정이 있어야 할 나무테이블에 붙여놓은 종이조각을 가리키며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거기에는 ‘장례예식 알림’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본 장례식장은 고 허순길 목사님 유언에 따라 부의금을 사양하오며 조화를 사양하오며 영정을 설치하지 않으며 유족들과 위로의 문안하는 것으로 상례를 대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족 일동."


또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을 치르기로 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전단도 마련해 한 장씩 가져가게 했다. 

A4 용지 앞뒷면을 가득 채운 전단에는 고인의 마지막 유작 ‘개혁교회 질서 해설-돌트교회 질서 해설’(셈페르 레포르만다출판사 출간예정) 중 ‘제 64조 장례’ 부분에서 인용한 글이 실려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니라 가족적인 일이며, 그래서 장례예배가 아닌 장례로 치러야한다는 것이다. 

교회적인 장례예배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의식으로 사제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교회적인 장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보통 교회적인 장례에서 설교나 추모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배치된 채 죽은자의 공로를 내세우기 십상이어서 교회에 해를 끼친다.

부의금을 준비하는 조문객들이 억지로라도 건네주려고 했지만 유족들은 극구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속속 도착한 조화도 고인의 뜻을 설명하며 정중하게 돌려보냈다. 

고인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의 목회자 양성기관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와 원장으로 평생 봉직하며 학교발전에 기여했다. 

또 정년 퇴임 후 20여년간 교단 안팎에서 화란 개혁교회의 모습을 제대로 알고 싶어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요청을 받아 강연활동을 하며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던 그의 명성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빈소 풍경이었다.

하지만 4남매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기꺼이 순종했다. 

유족들은 부의금을 받지 않았지만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많은 조문객을 예상해 어쩔 수 없이 넓은 특실을 얻어 부의금조차 받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니 적잖은 장례비용을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다.

유족들은 고인은 평소 장례뿐만 아니라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고 전했다. 

과거 가난했던 시절 이웃집에 관혼상제가 닥치면 온 동네가 십시일반 부조해 대소사를 치를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덕이었다. 

선진국 수준으로 잘살게 된 요즘도 아름다운 전통으로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사회구조 속에서 그물처럼 엉킨 인맥을 대상으로 판을 크게 벌여 과시하는 형태로 발전하니 잦은 경조사 초청장은 현대인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그래서 고인은 가족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르는 서구의 결혼식이 한국의 결혼문화로 바뀌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다. 

실제 고인은 호주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던 큰아들 성진 씨가 10년 전 한국에서 결혼식을 했을 때 축의금을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많이 알리지도 않았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 온 하객에게 그냥 음식을 대접했다. 

이번에도 고인은 교회와 교단, 고려신학대학원, 성도들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고 평소 가르쳤던 개혁주의 신앙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12일 장지로 떠나기 전, 발인예식을 주례한 이한석(부산수영교회 원로)목사는 "80평생 이런 장례식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이 목사는 “고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노숙자 장례식이나 다름없다”며 죽은 후에도 하나님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 고인의 성품을 추모했다.

유족 대표로 인사를 한 큰아들 성진씨는 슬픔을 억누르며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아버지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 감사한다는 말만 여러 번 되풀이했다. 
발인예식 모습

찬송가는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불렀고, 이외에 고인의 약력소개나 추모사, 조사 등의 순서는 아예 없었다. 

고인이 생전에 자신보다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날 수 있도록 그렇게 간소한 장례의식을 부탁했다.

유택으로 가는 길도 가족들만 가서 하관하기로 했다며 아예 대형 장의버스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시신안치실에서 꺼낸 관은 고급 리무진이 아니라 응급구호차량인 조그만 밴에 실려 운구됐다. 

유족과 친지, 또 동행하기를 원하는 조문객들은 각자의 차량으로 장지에 가서 고인과 마지막 이별을 했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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