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독특한 박사 학위 논문이 나왔다.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病變) 연구’. 조선시대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며 치밀하게 대상을 그리는 사실 정신의 정수로 꼽히는 장르다.  그 초상화를 들여다보면  당시의 피부병이 숨어 있다는 것인데….

“조선 초상화 중 14.06퍼센트에서 천연두 반흔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에 천연두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했다는 역학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많은 역학 관련 문헌자료에 의하면 17 18세기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전염성 강한 천연두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초상화에서는 ‘천연두 반흔’을 전혀 볼 수 없고, 중국 초상화의 경우는 드물게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조선 초상화와 사뭇 다른 점이다. 셋째, 천연두 반흔을 가진 초상화의 대상자들은 ‘외모’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선비 사회의 개방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초상화 500점 이상을 조사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피부병을 연구한 논문으로 명지대에서 미술사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주인공은 미술사학과 이성락(79) 가천대 명예총장이다. 독일 유학파로 연세대 교수, 아주대 의대학장, 가천대 부총장, 세계베체트병학회장 등을 역임한 뒤 2003년 교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2009년 다시 미술사학도가 됐다. 미술애호가 모임에서 만난 유홍준, 이태호 명지대 미사과 교수의 권유로 다시 대학원생이 된 것이다. 78세에 받은 두 번째 박사 논문은 피부과학을 전공한 전문의이면서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다. 학문의 통섭적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명예총장의 미술 애호에 대해 듣고 싶어 그를 만났다. 지난해 8월 말의 늦은 오후. 서울 강남구 고속터미널 인근 메리어트호텔이다. 고급스런 커피숍에서 기다리며 “도착했습니다” 문자를 보냈다. 어이없게도 이 명예총장 교수로부터 “저도 와 있는데요”라는 답신이 왔다. 그는 커피숍이 아니라 바로 옆 소박한 인테리어의 빵집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출출해질 시간이라 얼그레이 홍차에 달달한 도너츠를 곁들여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화인이 된 느낌에 젖어들지 뭔가. 무엇보다 놀라운 동기 부여. 중년에 그림 한 점 잘만 사면 노년의 해외여행 경비가 나올 수 있다는 꿀팁은 작품 구매 욕구를 샘솟게 했다.

# 학창시절 미술 교육이 중요하다
이마동 작, '남자', 1931년, 캔버스에 유채, 115x8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누구에게나 그림을 좋아하는 계기가 있다. 그에게는 학교 교육이다. 그런 면에서 복받은 사람이다. 그는 보성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양화가 이마동(1906-1981)에게서 미술을 배웠다. 이마동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온 그는 조선미전에 여러 번 당선된 스타급 화가였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전 특선작으로 힘찬 붓질이 돋보이는 ‘남자’ 등이 대표작이다. 홍익대 교수로 옮겨가기 전 20년 간(1939-1961) 보성 중·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교 시절에 서양미술에 눈 떴어요. 1950년대 전쟁 직후니까, 크레파스도, 도화지도 없던 시절이에요. 실기 수업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니, 이마동 선생님이 미술시간에 화보를 가져왔어요. ‘얘들아, 이게 미켈란젤로의 무슨 작품, 이건 루벤스의 무슨 작품인데 이런 의미가 있어’ 하시며 작품의 히스토리를 얘기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트 스토리텔링인 게지요.”


# 처음엔 서양미술을 열심히 보러 다녔다

고교 시절의 서양 미술에 대한 교육은 자연스럽게 감상 문화로 연결됐다. 이 총장은 보성고를 졸업하던 1958년 그해 바로 독일 뮌헨대학으로 유학해 그곳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1975년에는 교수자격시험에 통과해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요한볼프강괴테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기도 했다. 독일 생활은 화보로 봤던 서양 미술 작품들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했다. “유럽에 가니까 화랑이 어찌나 많고, 미술관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시간이 될 때마다 미술관을 다니면서 많이 봤지요.”

전시 관람에 얼마나 빠졌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1965년 , 아니 1966년이던가. 파리에서 피카소 전시가 크게 열렸다.
“그 때 의사고시를 앞두고 있던 졸업반 학생이었어요. 뮌헨에서 공부하던 시절인데, 그 전시가 너무 보고 싶어 밤새 버스를 타고 파리로 가서 아침에 내렸어요. 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깨우고는 오전에 전시를 보고 오후에 좀 쉬다 다시 버스타고 뮌헨으로 돌아왔지 뭡니까. 의사 국가고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막판에 그거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달려간 거지요. 다행히 의사 시험은 붙었어요. ” 이렇게 말하곤 엷게 미소 짓는데, 표정이 소년처럼 해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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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 시험 통과…첫 켈렉션으로 자축했다
합 그리스하버(Hab Grieshaber)의 작품. 구글 이미지

전문의 과정을 독일에서 끝내고 (국가에서 주관하는) 대학교수 자격시험을 쳐서 통과됐다. ‘하빌리테이션(Habilitaion)’이라고 하는 이게 없으면 교수가 못되는데, 1975년 초에 합격을 했다. 뭔가 기념을 해야 할 것 같아 무턱대고 화랑을 찾아가 그림을 샀다.

“독일의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합 그리스하버(Hab Grieshaber, 1909-1981)의 작품이에요.그냥 마음에 들어 샀는데, 사고 나서 보니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더라고요. ”

당시 수백만원하던 한 달 치 월급을 고스란히 썼다. 38세 첫 컬렉션은 그렇게 자신에 대한 축하의 의미였다. 종종 집안 장식을 위해 수십만원짜리를 사보기는 했으나, 화랑을 통해 제대로 사본 건 처음이다. 당시는 생존 작가였으나 작고 후 값이 10배는 뛰었다고.
그림 구입의 즐거움을 물어봤다. “벽에 걸어놓고 한번 보세요. 내 것이 된 뒤 보는 것은 이전과 달라요. 더 가까워져요. 더 자주 보게 돼요. 친근감이 생기고 작가에 대해 궁금해져서 다른 작품은 어떨까 하고 공부하는 계기가 마련되더라고요.”

# "겸재를 사겠나 김환기를 사겠나…신진의 작품을 사자"

 그는 의사 출신으로 국제아트페어 조직위원장을 3년이나 하고 CEO급 미술애호가 1000여명을 회원으로 거느린 현대미술관회 회장을 맡고 있다. 본격적인 미술 수집은 귀국 이후인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0대 전문직 의사라지만, 월급쟁이 켈렉터로서 자금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의 컬렉션 신조는 경제력에 맞게 산다는 것이었다.

“봉급이라는 게 빤한데 겸재 (정선)를 사겠어요? 피카소를 사겠어요? 그래서 누구의 작품을 사야 하나 가만히 생각하다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갓 졸업한 뒤 첫 전시 하는 작가를 찾아다녔지요.”
신진 작가 첫 컬렉션은 홍익대 조각과를 나온 김석의 ‘함성’이라는 작품이다. 어깨동무한 청년들 5,6명이 데모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당시 학생 데모가 한참 있던 시절이라 그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에 뭉클해졌다.

‘한국의 로트랙’으로 불리는 손상기(1949∼1988)도 자신의 감각을 믿고 초기에 작품을 산 작가의 1명이다. 1984년의 어느 날, 의대교수인 그는 대학로 샘터화랑에 들렀다. 손상기라는 생소한 화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달동네 등 1980년대의 생활상을 그린 작품들은 하나같이 햇빛 한 줄기 스며들지 않는 심해처럼 어둡고 절망스러워 보였다. 유독 황금빛 가을 풍경을 담은 그림 하나가 화사했다. 강한 끌림에 이 그림을 샀다.

막 시장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화가의 그림은 비싸지 않았다. 나중에 이 명예총장은 화랑의 소개로 작가를 만나게 됐다. 그가 '곱추 화가'라는 것과, 자신이 산 그림은 화가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월세방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에 그린 것임을 알게 됐다. 4년 후 화가는 작고했고 생존 때보다 더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손상기 작, '秋-호숫가', 1984, 캔버스에 유채, 37.9x45.5cm . 이성락 명예총장의 소장품이다.

“당시 2백만원을 주고 샀어요. 재작년(2014년)에 아내와 해외여행 좀 해야겠다 싶어 옥션에 내놨더니 2000만원에 팔렸어요. 비싸게 팔았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보세요. 80, 90년, 2000년…. 근 30년을 그 그림과 함께 있으면서 얼마나 좋았겠어요. 거기에 플러스해서 돈까지 벌었으니. 그동안 작가 손상기에 대해 생각도 하고, 기회가 되면 그에 대한 글도 쓰고, 제 삶을 굉장히 풍요롭게 했습니다.”

# 좋은 화랑과 친해지는 비결?…“자주 가면 되지요.”

작품을 구입할 때 유의할 점을 물어봤다. 그는 작품성을 보고 자신이 좋아서 사야지 누가 사라고 해서 사게 되면 후회하게 된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면 예산을 웃돌아 재정적 부담이 되더라도 사야한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여유 있을 때 사야지 하면 절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되도록이면 그 작품을 그린 작가를 만나고, 이왕이면 작가의 작업실도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1년에 몇 점정도 살까. “어떨 때는 1년에 2점, 어떨 때는 1점 등 대중이 없습니다.”
'설악산의 작가'로 불리는 김종학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설악의 아침', 1996년. 캔버스에 아크릴, 220 x 250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 역시 화랑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화랑을 자주 다니면 화랑 주인하고 잘 알게 되요. 화랑 주인들이 숨겨 논 작품들이 좀 있어요. 자신이 소장하고 싶어 웬만하면 안 팔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 날도 화랑에 갔다가 김종학씨 작품을 보게 된 거예요. 10호 되는 소품 꽃그림인데 김종학 그림의 모든 특징이 그 안에 다 있더라고요. 강원도, 소나무, 야경, 눈…. 안 팔겠다는 걸 뺏다시피 해서 가져왔어요. 80년대 말인데, 그 때 200만원 주고 샀지만 지금 내놓으면 3, 4천만원은 받을 겁니다.”

컬렉터의 경제적 능력, 취향 등을 알고 작품을 추천해주기 때문에 단골 화랑을 두는 게 좋다. 화랑과 친해지는 법이 궁금했다. “전시마다 자주 가고 지나가다 커피 한 잔 합시다 하고 들르는 거지요. 비결은 무슨. 허허.”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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