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 시각, 대전을지병원 지하 1층 편의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일주일째 계속된 고열을 방치하다 금요일 밤 늦게 인영이를 응급실에 데리고 갔다. 피검사 결과 인영이는 면역력이 제로였고 당장 수혈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사는 백혈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의사 말을 믿지 못하는 아내와 지친 인영이는 격리병동에서 잠들었지만 나는 잠들지 못했다. 기자 초년병 시절 백혈병 시리즈 취재를 한 경험 탓인지 무서워 자꾸 몸이 떨렸다.
말이 느렸던 인영이는 처음 무균병동에 입원했을 때 “아빠, 빠방(타고),집(에가자)”이란 세 단어만 반복했다. 그 말을 듣는 엄마아빠는 죄책감에 울고 또 울었다. 일주일이나 고열에 시달릴 동안 아빠는 서울에 상 받으러 가고, 퇴근 후엔 골프 레슨까지 받았다. 엄마는 승진 인사 발표에 온 신경이 집중돼 있었다. 인영이가 아픈 건 모두 우리 죄 같았다. 그렇게 인영이의 투병생활은 시작됐다.
가족들이 모여 조촐하게 인영이가 지난 1년간 무탈하게 치료받은걸 축하했다. 인영이는 촛불을 켜니 자기 생일이냐고 좋아했다.

인영이는 지난 1년 동안 무균병동 입·퇴원을 반복했다. 독한 항암약과 고통스런 골수·척수검사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는 빠졌고, 다리가 아픈지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버릇이 생겼다. 포기하는 법도 배웠는지 가슴정맥관에 바늘을 꼽으면 “엄마 오늘은 집에 못가?”라고 묻기도 한다.
그런 인영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힘들었다. 차라리 저 긴 바늘을 내 허리에 대신 꼽았으면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SOS를 쳤다. 5년 전 탈퇴했던 페이스북에 재가입해 글을 쓴 것은 순전히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낸 타전에 과분할 만큼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처음엔 힘들어 썼는데 인영이가 점차 안정된 이후엔 쓰는 게 즐거워졌다. 그렇게 지난 1년간 100회를 연재했고, 斷想이라 이름붙인 글 16개를 합하면 116개의 글을 썼다. 개인 기사데이터를 찾아보니 이 기간 내 바이라인을 달고 나간 지면 기사는 239개였다.
인영이는 아플때도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우리는 이겨낼 수 있었다.

인영이는 1년 동안 힘든 치료를 잘 이겨내면서 한편으로 쑥쑥 컸다. 어디가 아픈지 말도 못하던 녀석이 지금은 우리 네 식구 중에 가장 수다스럽다. 어떤 날은 갑자기 “엄마, 아이야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라고 해 엄마를 울렸다가, 어떤 날은 “아빠, 방구 냄시나. 싫어~”라며 아빠를 울린다. 아빠 피가 흐르는지 노는 데 일가견이 있어 하루 10시간 이상 놀기를 매일 실천하고 있다. 지난 1년 새 킨더조이를 가장 많이 깐 아이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어림잡아 1000개 이상인 듯).
지난 1년간 독한 항암치료와 고통스런 골수척수검사로 힘들었지만 인영이는 잘 이겨냈다.

설 연휴이기도 한 오늘, 가족들이 모여 조촐히 인영이의 치료가 1년 동안 무탈하게 이뤄진 것을 축하했다. 작은 케익에 초를 켰더니 인영이는 자기생일인줄 안다. 지난해 설에는 가족 4명이 외가집, 무균병동, 기자실로 뿔뿔이 흩어져있었는데 올해는 온 가족이 모여 인영이 축하공연을 즐겼다. 처음엔 불행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1년간 인영이 때문에 더 행복해졌다. 인영이가 조금씩 나아질 때마다 아빠는 인생이 즐거워졌다. 게다가 인영이는 아빠에게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회사와 기자 선후배, 지인들, 페북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빠는 삐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아빠를 삐뚤어지지 않게 지켜준 은인들이다.
우리는 웃는다. 불행이 찾아온 줄 알았는데 더 행복해졌다.

인영이의 항암 치료는 앞으로 2년 더 남았다. 이제 겨우 3분의 1이 지났다는 마음보다는 앞으로 더 행복할 2년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2년 뒤 1월29일에는 진짜 잔치를 벌일 것이다. 인영이의 몸짓, 눈빛, 웃음, 아픔을 제 것인 마냥 함께 느껴줬던 은인들을 모두 초대할 것이다. 답례품은 이 기자 20년 기자생활의 첫 저서인 ‘나는 아빠다’일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아빠다’는 to be continued!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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