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한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이 싸늘하다. 뜬금없는 반 전 총장의 제안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다.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케 한 '87년 체제'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데 정치권의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그럼에도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은 권력구조 등에 대해 각 당 및 국회의원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 있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1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개헌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이런 상황에서 반 전 총장이 "대선 전 개헌에 동의하는 모든 정당과 정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실현 방안을 적극 논의하자"며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대선 전 개헌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구체적인 방법과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일반적 관측대로 4월 말 벚꽃대선이 실시된다면 대선 전 개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기본을 규정한 헌법은 일반법과 달리 개정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

 개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과반수가 발의할 수 있다. 개헌안이 발의되면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은 20일 이상 헌법개정안을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안에 의결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결 후 30일 이내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확정된다.

 개헌을 하려면 9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 전 총장 구상대로 대선 전 개헌을 하려면 오늘 당장 개헌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가까스로 대선 전 개헌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이 12월 대선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정치 현실을 도외시한 구호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전 개헌 주장이 그렇다. 정치 9단은 이런 공허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그의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다. 

 1일 전격적으로 정치포기를 선언한 반 전 총장의 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흥우 선임기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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