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장애요? 절망할 시간이 어딨어요” 멘탈 갑 박철용씨

“‘사랑의집짓기’ 등 베푸는 삶 계속”

‘절망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다시 일어나야겠다.’

그는 정신력이 강한 소위 ‘멘탈 갑(甲)’의 소유자였다. 건축가 박철용(56·은평제일교회)씨는 불의의 사고로 지체1급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재기하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강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2008년 10월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 그는 잘 나가는 건축사업가였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교회학교 교사와 차량봉사자 등으로 주일을 보내는 것이 행복한 크리스천이었다.

1996년 건축사업을 시작한 그는 그날도 평소처럼 서울의 한 재건축 공사장에 현장감독으로 나와 있었다. 철거 작업을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가 3m 높이에서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큰 돌에 부딪히는 바람에 척추를 다쳤다.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그는 절망감에 잠도 못 자고 힘든 날을 보냈다. 자격지심이 생겼다. 그동안 교제했던 사람들과 거리감이 생겼고 스스로 걸을 수 없다는 자괴감이 괴롭혔다.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절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절망할 시간이 없었어요. 장애를 갖게 된 것은 너무나 큰 좌절이었지만 어디 넋 놓고 있을 상황인가요. 나만 바라보는 가족들은 어떡하겠어요. 큰 아들에게는 다쳤다는 사실조차 털어놓지 못했죠. 유학을 보냈으니까 등록금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빨리 일을 해야 했어요.”

유학 간 큰아들과 대학생이 되는 둘째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재활운동을 받으며 재기를 꿈꿨다. 땀 흘린 덕분에 기적처럼 사고 1년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지난 25일 만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신앙과 긍정의 힘으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불평하면 불평거리가 쏟아지고 마음도 강퍅해지는데 범사에 감사하니 감사제목이 갈수록 많아졌다”고 고백했다. 환한 미소를 띤 박씨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늘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사고 전에 운영하던 건축사무실의 이름을 2010년 ‘흰돌하우징’으로 바꾸고 일을 재개했다. 주변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박씨는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휠체어를 타고 직접 건축현장으로 견적을 보러 다녔다. 좋은 건축 자재를 정직하게 사용해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였고 거래처와 약속한 것은 끝까지 책임을 졌다. 이 같은 노력이 쌓여 거래처들로부터 조금씩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흰돌하우징은 몇 년 안 돼 연매출 18억원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했다. 사고 전보다 매출액이 훨씬 더 늘었다. 단순히 매출만 올리기 위해 열심히 뛴 건 아니다. 

강민석 선임기자

“사고 후 세상을 보는 눈높이가 달라졌어요. 이전에는 어려운 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사실 적극적으로 하진 못했거든요. 장애인이 되고 난 뒤 연약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사랑의 집수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집수리는 장애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소외된 이들의 집을 수리해주는 프로젝트다. 보일러 수리, 창문 교체, 도배, 난방공사 등을 지원하고 장애인들의 집에는 경사로와 안전바 등을 설치해준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만 매년 25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 밖에 어려운 이들을 위한 후원도 매달 여러 곳에서 하고 있다.

신앙인이라도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씨는 천성이 낙천적이었다.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 제목을 찾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4~40)는 말씀을 붙잡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선다.

“얼마 전 시각장애인생활시설 소망원을 수리했을 때가 제일 뿌듯했어요.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밝게 인사하는 분들이었죠. 이들을 더 섬기고 싶었어요. 하나님도 불평하는 자녀보다 감사하는 자녀에게 더 큰 선물을 주실 것 같았어요. 연약한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희망을 주는 건축사가 되고 싶습니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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