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해질 얘기를 꺼낼까 한다. 1946년 개교한 서울대 미대 졸업생 가운데 작가로 살아남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조소 전공자만 예를 들어보자. 서울대 조형연구소가 2016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5년까지의 조소 전공 졸업생 1183명 가운데 현재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약 28%인 33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명 이상이 결국은 생계를 위해 다른 길로 갔다는 얘기다. 그래도 서울대 미대 초창기인 1950∼59년까지만 해도 전체 졸업생 28명중 14명, 즉 절반이 전공을 살려 먹고 살았다. 그런데 2010∼2015년 조소 전공 졸업자 114명 중에는 14명, 즉 12% 만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이 흐를수록 생존율이 낮아졌다는 것인데, 그만큼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것으로 해석이 된다. 이 조사를 진행한 서울대 조소과 출신의 객원연구원 이상윤씨는 “서울대 외에도 이후 미술대학이 많이 생겨났다. 특히 1980년대 미대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미술시장은 커지지 않은데 반해 미대 졸업생의 공급은 많아지면서 조소과 졸업생이 작가로 생존하는 비율이 낮아진 원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단 서울대 미대 뿐 아니라 다른 미술대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현상일 것이다.

# 미대 졸업생 10명 중 7명이 중도포기…살아남는 그들은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일명 ‘사진 조각’으로 유명한 권오상(43) 작가도 그 중의 하나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삼청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신작전 ‘뉴 스트럭처 그리고 릴리프’전이 열렸을 때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사진을 인화한 뒤 그걸 잘라서 스티로폼 뼈대 위에 붙이는 혁신적인 조각 작업으로 시쳇말로 뜬 작가다. 브론즈, 대리석 등을 사용하는 육중한 전통 조각의 권위를 전복시킨 ‘가벼운 조각’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권오상, '뉴스트럭처 -치즈' , 2016, 나무에 프린트, 220.5(h) x208.5 x 157.2 cm .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신작전에서는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1898∼1976)에 대한 오마주 혹은 칼더 비틀기로 해석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예컨대 구글에서 검색한 치즈 이미지를 입힌 합판 3장을 이용해, 가장 단순한 구조물을 만든 ‘치즈’가 그것이다. 구멍 숭숭 뚫린 빨간 철판 3장을 서로 잇대 구조물처럼 만든 칼더의 ‘무제’(애칭 ‘빨간 치즈)에 대한 패러디다.

또 잡지나 구글에서 흔히 보는 이미지를 입힌 합판을 최소한만 사용해 몇 개씩 서로 기대게 함으로써 입체처럼 보이게 했다. 마치 동화 속 성(城)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작품들은 영국 자동차 회사 ‘재규어’, 패션 브랜드 ‘라이풀’ 등 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가 미술시장에서 얼마나 확고한 위치를 굳혔는지 보여준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게 궁금했다. 얼른 필요한 전시 취재를 마치고는 갤러리 2층 전시 공간 한켠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이 사무실에도 전시 중인 작가의 작품이 디스플레이돼 있다. 실제 사무실이나 거실에 작품을 설치했을 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휴, 1000만원짜리라는데…’
그가 티 테이블 위에 디스플레이 된 조각 작품을 번쩍 들어 설명하는데 순간 조마조마했다. 인도 불상과 강아지를 합친 사진 조각품인데, 높이 1m도 안 되는 크기인데 1000만원 짜리다. ‘작가가 제 작품을 들었다놨다하는데, 웬 걱정.’ 그런 생각을 하며 내친 김에 “한번 들어봐도 되나요?” 하고 물었다. 1000만원짜리 조각을 쓱 들어보는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그가 추구했던 ‘가벼운 조각’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다. 코너 저쪽에 설치된, 중국 청화백자와 물고기, 컴프레서 등을 합체한 듯한 사진조각은 크기가 좀 더 큰데 4000만원 정도라고. 나이 불과 마흔 초반에 이렇듯 조각 작품 한 점이 수 천 만원에 거래된다. 이미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권오상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 '뉴스트럭처 그리고 릴리프' 전 전시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 미술작품은 어떻게 가격이 오르는가

미술시장에서 작가의 작품 가격은 어떻게 결정이 되는가. 또 어떻게 오르는가. 그 메커니즘을 알면 10년 후 오를 수 있는 작품을 찾아가는 길이 가닥이 잡힐 수 있다. 감을 잡기 우해 권오상 작가의 삶을 되감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는 홍익대 조소과 출신이다. 대학 때부터 조각이 갖는 묵은 전통과 권위를 해체하고 싶었다는 권 작가. 여러 시도 끝에 사진을 사용해 입체 조각 작품을 만들어봤다. 갤러리의 상업성에 반대하며 대안공간이 막 생겨나던 1999년. 홍익대 인근에 생긴 대안공간 루프에서 젊은 작가를 위한 기획전 ‘진공포장’전이 열렸다. 젊은 작가를 위한 것이라지만 대졸자를 위한 전시다. 그 때 홍대 미대 3학년생이던 권오상은 선배들의 전시 사진을 찍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도왔다. “수고했으니 너도 작품 내 봐.” 선배들의 선심에 시쳇말로 운이 트였다. 그 때 그는 ‘쌍둥이’를 내놨는데, 사진으로 만든 이 희한한 조각이 미술계에 그를 강력하게 각인시킨 것이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더 정확히는 미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큐레이터, 평론가, 미술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자리다. 무명의 작가들이 학원 강사, 심지어 주방 보조 등의 ‘알바’를 해서 돈을 모아서라도 대관전(작가가 공간 사용료를 내고 전시를 하는 것)을 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미스 라는 작품은 권오상 '미스' . 2002년. 광고에 나오는 요가 포즈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C-프린트 , 복합재료, 75x50x100cm . 작가제공

권오상은 얼떨결에 합류하게 된 그 전시를 통해 존재를 알렸고, ‘발탁’이 됐다. 2001 대안공간인 인사미술공간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의 개인전이 열린 것이다. 이 때 아트선재센터 김선정씨가 그의 작품을 구매했다. 첫 판매였다. 신진이니 판매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구매했느냐가 중요하다. 당시 한국 미술계의 중요한 미술기획자인 김씨가 컬렉션을 했다는 것은 그에게 달아준 일종의 날개 같은 것이다. 이후 여러 국내외 개인전 및 그룹전을 열었다.
어디에서 전시를 했는가는 작품 가격 상승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2003년 국내 최고 수준의 갤러리인 국제갤러리에서 전시에서 작품 당 최고 1000만원까지 팔렸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청년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한중일 젊은 모색’전에 초대되고 2005년에는 아예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되면서 시장에 인지도를 높였고, 가격이 또 한 차례 상향 조정됐다. 이어 2008년 영국 맨체스터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면서 작품 가격은 4000∼4500만원 정도로 상승했다.

작품 가격은 재료비와 작품 제작에 들인 기간 등 물리적 요인에 작가의 명성에 대한 가격이 더해진 것이다. 작가적 명성은 다른 요인도 작용하겠지만, 작가의 창작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다. 권오상 작가의 예에서 보듯이, A급 갤러리나 주요 공사립미술관에서의 전시 및 작품 소장 여부가 작품 가격이 올라가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작품 가격이야 상업갤러리에서 매겨지지만, 상업성 보다는 미술사적 가치를 중요한 가치로 삼는 미술관 전시 및 소장 여부는 작품을 거래하는 갤러리, 옥션 등에서 크게 참고하는 만큼, 작품 가격이 업그레이드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 당신이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는
작고 작가 정탁영(왼쪽). 유족에 의해 대규모 기증이 이뤄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잊혀진 것들-17’, 1988년 작. 한지에 수묵담채, 185×240㎝. 정탁영은 먹칠을 한 마대 위에 종이조각 등을 얹은 뒤 한지로 덮어 찍어내는 방법으로 그렸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미술관은 시중에서 유행하는 인기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동시대 국제적인 미술시장 흐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문제적인 작가’를 선택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미술관 전시 뿐 아니라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이력도 작품 가격이 올라갈 수 있는 변수가 된다. 특히 현대미술을 관장하는 국내 유일의 국립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 는 작품 기증이 러시를 이룬다. 기증 의사를 밝힌 작품을 심사하는 것으로 골머리를 앓을 정도다. 작고한 서양화가 A씨 유족은 수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 50점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심사 결과 3점만 받아들여졌다. 또 다른 작고 작가 B씨의 경우는 아예 한 점도 통과되지 못했다. 작품을 팔면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는데 왜 기증을 할까. 현대미술을 관장하는 유일 국립기관이 갖는 권위에서 오는 무형의 보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라는 평판이 붙으면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 되는 상징성이 있다. 당연히 작품 가치도 오른다. C 작가의 작품 10점 중 1점이 국립기관에 들어가면 나머지 9개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잘 나가는 작가가 작품 1∼2점을 기증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출신의 최은주 경기도립미술관장은 “미술관은 미술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곳이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한번 전시를 하면 작가가 길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다만 단정적으로 5, 10년 후 뜰 작품이 미술관에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떤 작가는 30년 후, 100년 후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국내외 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1970년대 중반 한국에서 일어난 모노크롬 계열의 추상화인 ‘단색화’이다. 단색화가 뜰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미술사에 중요한 사조로 편입돼야 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2012년 단색화 전시를 열었는데 공교롭게도 2012년 이후부터 미술시장에서 갑자기 각광 받기 시작했다.

월급쟁이 컬렉터라면 자금 여력이 많지 않다. 그러니 국립현대미술관의 ‘청년작가전’, 서울시립미술관의 ‘세마블루전’ 등 젊은 작가를 조망하는 작가를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삼성미술관 리움, 금호미술관, 성곡미술관, 토탈미술관, OCI미술관 같은 사립미술관도 중요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좋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어 이곳 큐레이들의 안목에 기댈만하다. 흔히 “미술시장에서 검증되거나 검증되려는 찰나의 작가의 작품을 사라”고 한다.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작가는 그 도약대 위에 서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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