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보다 특종을 좇던 기자였습니다. 지난해 1월 3살 딸아이가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서야 ‘아빠’가 됐습니다. 이후 인영이의 투병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소아난치병 환우와 아빠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인영이는 매일 약을 먹는다. 아직 어려 알약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가루약을 받아 물에 타서 먹인다. 인영이가 치료받는 유수의 대학병원 약봉지를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요즘 동네 소아과에 가면 열에 아홉은 스틱형 약봉지를 쓴다. 약통 주둥이가 작기 때문에 보호자가 타기 편하게 고안해 낸 것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은 그런 배려가 없다. 아내와 나는 0.33g의 약이 행여 조금이라도 흘려질까봐 온 정신을 집중해 약을 탄다. 아내는 예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나온 마약 타는 법을 참고해 약봉지를 평면으로 만들어 한톨이라도 흘리지 않게 탄다고 한다.
사진 왼쪽이 동네 약국에서 받은 소아용 스틱형 약봉지, 오른쪽이 대학병원이 백혈병 환아들에게 주는 약봉지. 사각 약봉지에 한톨이라도 흘릴까봐 아픈 아이의 부모들은 손을 떨면서 약을 탄다.

약사 친구에게 물어보니 스틱형으로 만드는 기계 가격은 고작 수십만원이라고 한다. 수백억원의 연간 매출액과 수익을 자랑하는 대학병원은 돈벌이에 관심이 있지 환자 친화적인 데는 관심이 없다. 약봉지 개선은 고사하고 외래진료를 갈 때마다 약을 받는 대기시간은 최소 1시간이다. 약국은 외려 큰소리다. 애들 약은 다시 가루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다.

병원은 의료서비스 기관이다. 서비스업인 셈이다. 서비스업은 고객 친화적이어야 맞다. 하지만 지난 1년동안 격은 병원은 서비스 마인드가 제로다. 인영이가 무균실에 입원해 있을 때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무균실은 이름 그대로 위생에 철저하다. 의료진은 과자를 줄 때도 1회용 장갑을 끼고 주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런데 인영이가 하루 3번 먹는 약통은 바꿔주지 않는 거다. 1번 쓰고 버린 뒤 다시 달라고 하니 잘 씻어 말려서 사용하라는 답을 들었다. 더 따지기도 싫어 약사 친구에게 약통을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외출할때도 봉구와 바바는 함께 한다.

병원은 왜 서비스 마인드가 없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 이유는 그들이 ‘갑 중의 갑’이기 때문인 듯싶다. 상위 0.1%만 들어갈 수 있는 의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의사 연봉 1위나라. 의대 정원 증원은 중앙부처 갑중의 갑 기획재정부가 나서도 실패하는 나라. 서비스 마인드는 손님을 왕으로 생각하는 데서 생겨난다. 하지만 병원생활을 해 본 많은 이들은 환자는 을일 수 밖에 없는데 분노한다. 카데바(연구용 시신)를 앞에두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의사들 사진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선민의식, 환자와 보호자를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 이런 시각에 0.1%의 의사들은 입에 거품을 물지만 99.9%의 국민들은 공감한다. 우리 사회의 마지막 특권층 의사집단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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