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문화부에는 매주 200권 안팎의 신간 서적이 배달된다. 한마디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렇게 배달된 책 중 단박에 눈에 띈 책이 있다.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아트북스). 월급쟁이를 위해 수 백 만원 ‘소액’으로 살 수 있는 미술품 구입 가이드, 그러니까 이 시리즈를 구상하던 차에 책이 왔다.

월급쟁이 컬렉터인 저자 미야쓰 다이스케(52)는 15년간 모은 소장품만 300여점이 된다. 1년에 평균 15점은 모았다는 얘기다. 1, 2점도 아닌 15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비결은 아직은 희부연 빛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 같은 신진 작가의 작품을 사는 데 있었다. 100 만원이하 작품을 주로 사 ‘천불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그가 구입한 작가들은 이제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된 유명 작가로 대부분 성장해 있다.

더욱이 그는 회화보다는 사진, 영상 같은 ‘에디션 장르’ 뿐 아니라 달랑 설명서 한 장 넘겨주는 설치 미술 작품도 개의치 않고 사는 ‘아방가르드 컬렉터’이다. 한국의 개인 컬렉터에게는 한 점도 팔아본 적이 없다며 한숨짓는 우리나라 비디오 아티스트, 설치미술 작가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차세대 컬렉터 유형인 것이다.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미술품 켈렉션의 대중화를 내건 ‘어포더블 아트페어’ 측이 지난해 가을 제2회 행사를 치르며 그를 초청했을 때였다.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그를 만났다.

# 작품 대금 지불하기 위해 담배 끊고 차도 팔았다.

궁금했던 건 직업이었다. 최소 억대에서 수십억원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임원, 혹은 대학병원 의사, 로펌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라면 우리 같은 ‘월급쟁이 김 과장’과는 차원이 다른 월급쟁이일 테니까.

“일본의 3대 모바일 회사 중 한 군데서 일해요. 도코모, AU사, 소프트뱅크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인사부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고요.”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어포더블 아트페어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일본의 월급쟁이 컬렉터 미야쓰 다이스케.

아직 ‘기업의 별’ 임원을 달지 못했다. 더군다나 첫 켈력션은 94년에 시작됐다. 갓 31세 때였으니 다달이 지출할게 많은 월급을 가지고 15년 동안 그 많은 컬렉션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첫 컬렉션은 구사마 야요이의 ‘땡땡이 그림’ 드로잉인데, 50만엔(약 538만원)이다. 월급쟁이의 첫 컬렉션 치고는 금액이 높다. 그도 처음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름, 겨울 두 번에 걸쳐 분납해도 된다는 말에 질렀다. 그는 여름과 겨울 보너스를 모두 썼다고 했다. 당시 연봉은 “350만엔(약 3550만원)에서 450만엔(4560만원) 사이”였다고.

300점 넘는 작품을 살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고액 연봉자라면 이미 알려진 기성 작가의 작품을 옥션을 통해 구입할 수 있겠지요 저 같은 월급쟁이는 신인 위주로 갤러리에서 구입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는 “월급쟁이도 가끔 친구들과 바에 가서 술을 마시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지 않나. 그런 데 안가고 아끼면 신인작가 작품은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술품을 사기 위해 그는 다른 걸 많이 희생해야했다. ‘헤비스모커’였지만 담배를 끊었고, 심지어 차도 팔아야했다. 고급시계 같은 럭셔리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은 물론 회사의 중간 간부임에도 가디건, 바지 모두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 패션을 입는다.

인터뷰할 때 입고 나온 바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바지도요?”
“예스, 유니클로”
그의 대답에 함께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 재킷을 가리키며 “이건 꼼데가르송”이라고 했다. 소장품을 빌려주면 전시회 오프닝에 초대를 받게 되는데 그럴 때 격식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어서 재킷은 고급브랜드를 입는다고.

‘천불의 사나이’지만 100만엔(약 1000만원) 넘는 작품도 손에 꼽을 정도지만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사마 야요이의 유화 ‘무한그물’이다. 그는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없지만 돌아서면 또 보고 싶어지는 그런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했다. 100호 크기의 대작인 이 작품 가격은 500만엔(약 5000만원). 첫 컬렉션을 한 2년 뒤인 1996년, 33세 때 샀다. 작품 하나 가격이 당시 연봉을 넘는 금액이었다. 이런 고가의 그림을 사도되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 동창 가운데 포르쉐를 사는 이도 있지 않은가. 고급차를 타는 것과 고가의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다를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그는 적금을 해약하고, 주식을 처분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빌려 그 작품을 샀다. 하지만 이후의 생활난에 대출금을 갚기 위해 차까지 팔아야 했다.

# 내가 산 작품을 미술관도 소장…사진, 비디오 등 에디션을 소장하는 기쁨

그가 수집한 미술품 장르는 주로 미술관에서나 구입하는 영상작품, 설치 미술, 퍼포먼스 같은 ‘첨단 장르’다. 설치 미술은 전시 후에는 철거되기 때문에 작품 소유자라는 증명서 한 장 달랑 건네받기도 한다. 이 증서를 가지고 나중에 작가에게 작품 재현을 부탁하는 식이다. 제작비도 대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일본 작가 데루야 유켄의 ‘하늘 위에서 다이아몬드와 함께’라는 작품 같은 걸 소장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 식물 대신 버려진 자전거를 놓아둔 작품인데, 자전거에 붙여놓은 금색 큰줄나비 번데기가 성충이 되어 날아다니게 되는 것 까지가 이 작품의 개념에 들어간다.

그는 왜 이런 작품을 사는 걸까.
“회화는 유일하기 때문에 비싸거든요. 저 같은 샐러리맨은 에디션(한정된 숫자만큼 복수로 제작하는 것)이 있는 사진이나 영상 작품을 구입하는 게 좋지요. 한 작품이 여러 개니까 더 저렴하거든요. 제가 구입한 작품을 유명한 미술관에서도 소장하게 되면 그럴 땐 안목이 인정받는 것 같아 얼마나 기쁜데요.”

그는 해외 작가의 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빤한 월급인데, 비싼 비행기 값 들여 해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나 비엔날레를 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연두, 최정화, 중국 작가 양푸동, 태국 작가 아피 채풍 같은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갖고 있다. 1998년 시드니 비엔날레를 가본 게 전부다. 거기서 지금은 세계적 스타 작가가 된 덴마크의 올라퍼 엘리아슨을 만났고 지금처럼 유명해 지기 전에 그의 작품을 샀다.

정연두 작 '내 사랑 지니' #7. 이른바 꿈 만들어주기 프로젝트에 7번째 모델로 참여한 미야쓰 다이스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문화재보호운동을 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사진을 통해 실현했다. 위 사진은 사무실에서는 일하는 현재의 모습과 아래는 아프간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모습. 작가 제공

그는 “굳이 외국 나가지 않아도 해외 작가들이 일본에서 전시를 하는 기회가 많다. 이 때 충분히 작가와 교류하며 작품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48) 작가를 알게 된 건 2002년이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 트리엔날레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후쿠오카에 거주하던 그가 일본에서 전시를 할 때 만난 것이다. 정연두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된 미야쓰는 그가 일본에서 프로젝트성 작품인 ‘내 사랑 지니’ 시리즈(2001 이후)’를 할 때 일본인 모델로 참여했다.

‘내 사랑 지니’는 일명 ‘꿈 만들어주기 프로젝트’이다. 여러 나라의 일반인에게 꿈을 묻고, 그 꿈을 사진으로 실현시켜주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기법을 빌려 주유소에서 일하는 한국의 청년을 포뮬라 1의 우승컵을 든 레이서로 바꾸어 놓는다. 카페에서 서빙을 하며 수학교사를 꿈꾸던 이스탄불 청년은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전시된 품을 본 후원가 덕분에 진짜 수학교사가 되기도 했다.

미야쓰는 이 프로젝트의 7번째 모델이 됐다. 2002년 재팬파운데이션이 후원하고 오페라시티갤러리에서 전시한 'Underconstruction' 전시에 출품한 이 작품에서 미야쓰는 전쟁으로 유물이 파괴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문화재보호운동을 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사진으로 실현했다. 이듬해인 2003년 그는 사진 로젝트의 첫 소장자가 됐다. 33살 무명의 한국 작가의 작품을 선뜻 사는 안목과 배짱이 미야쓰에겐 있었다. 총 40명의 꿈을 이뤄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있는데, 현재까지 14개국 28명이 참여했다. ‘내 사랑 지니’ 작품의 에디션은 총 4개이다. 미야쓰 이후 삼성미술관 리움, 에스티 로러재단, 콜더재단 등 세계 굴지의 미술관과 미술재단이 컬렉터가 됐다.

# 작가와 사귀어라…외국 작가와 소통하기 위해 애쓰다 영어 마스터
미야쓰 다이스케가 자신이 교유하던 작가들과 함께 지은 '드림 하우스'의 정면. 미야쓰 다이스케 제공

컬렉터 미야쓰는 작가와의 교감, 교류를 중시한다. 많은 컬렉터들이 화랑이 추천해주는 작품을 사는 선에서 그치는 것과 달리, 미야쓰는 갤러리나 비엔날레 전시 등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면 그 작가와 꼭 만나서 이야기한다.

“작가와 친구가 되는 것은 컬렉션만큼 중요합니다. 인상파가 유명하지만 우리가 고흐 모네와 직접 교유할 수 없어요. 하지만 동시대미술은 거장 이우환에서 신진작가였던 정연두까지 직접 사귈 수 있고,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게 매력이지요.”
계단을 올라가는 벽에 벽지로 사용된 정연두 작가의 작품 '보라매 댄스'. 미야쓰 다이스케 제공

작가들과 신뢰를 쌓으면서 작가를 통해 다른 작가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제작 의도, 작품 세계 등에 관한 이야기를 작가와 직접 나누면서 작품 소장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외국작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작가와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영어의 영자도 몰랐다는 그는 이제 외국 작가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정도의 수준이 됐다.작가들과의 교류는 새로은 도전을 주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작품으로 만든 집’인 일명 ‘드림 하우스’다.

<아티스들과 교류가 늘어갈수록 일종의 콤플렉스가 생겼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며 성장하는데 나는 새로운 작품을 사서 벽에 거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갤러리스트나 큐레이터가 아티스트와 함께 좋은 전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언젠가는 컬렉터로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132쪽)

작품을 소장하고 교유하던 글로벌 예술가들과 함께 만든 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집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가 설계했고, 한국 작가 정연두의 사진으로 벽지를 바르고, 최정화의 작품으론 조명을 달고, 일본의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으로 다다미방 미닫이를 만드는 식이다.

이런 멋진 아방가르드 컬렉터의 수익률은 어떻게 될까.
"첫 컬렉션인 구사마 야요이도 알려지긴 했지만 구입할 당시만 해도 엄청난 고가의 작품은 아니었어요. 구사마 것 뿐 아니라 다른 작품도 작게는 20배, 많으면 100배 오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되판 적은 없다고 한다. 작품을 팔아서 집을 늘려가거나 차를 바꾸는 등 하고 싶은 게 없기 때문이다. 천상 컬렉터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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