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달 말에 들른 카페에서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된 이광훈씨.

카페에서 마주칠 때마다 남자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입구를 등지고 왼쪽 맨 끝자리.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노트북엔 숙소예약사이트 창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2월 초에 일본 세토나이카이에 가려고요.”

 세토나이카이엔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있는데 그걸 보러 가는 거랍니다. 밤 11시쯤 시작된 옆자리 손님과의 대화는 두 시간 정도 이어졌습니다.

이광훈씨가 2월 초 일본 세토나이카에에서 찍은 안도 다다오의 작품. 이광훈씨 제공

이광훈(39)씨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입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이죠. 원래 통계학을 전공했는데 그게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졸업을 한 뒤였습니다.

 ‘뭘 하면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광훈씨는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등록합니다. 관련 자격증을 따고 공모전에서 입상도 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처음 배운 지 1년 정도 지나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갑니다.

 프로젝트를 맡으면 수백 장의 설계도면을 그려야 했습니다. 공간을 디자인하고 싶어서 느지막이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현실은 종이뭉치와 싸워야 했습니다. 다시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회사를 나와 직접 인테리어 회사를 차립니다. 보증금이 없는 고시원 같은 공간에 사무실을 마련했습니다.

 회사 이름을 ‘아쉬데쌍’이라고 지었는데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오해하더랍니다. 기억하기 힘들다는 사람도 있어서 재작년에 아예 이름을 바꿨습니다. ‘자이언트 웍스’. 그러자 이제는 자전거 회사로 오해하는 사람이 생겼답니다.(‘자이언트’는 유명 자전거 회사 이름입니다.)

이광훈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 가게. 이광훈씨 제공

 이렇게 무턱대고 질렀으니 처음부터 잘 될 리 없었겠죠. 식비를 아끼려고 주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인근 중학교에서 참치마요도시락을 먹다가 체육교사한테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먹던 것만 다 먹고 나가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게 서른 세살 때 일입니다.

 지금은 입소문이 나면서 인테리어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광훈씨는 가게 인테리어를 주로 합니다. 비전공자로는 보기 드물게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공간디자인 석사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본인만의 인테리어 철학이 있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합니다.

“공간의 완성은 사람이에요. 공간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광훈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 가게. 이광훈씨 제공

이광훈씨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 가게. 이광훈씨 제공

디자이너가 공간을 설계하더라도 결국 결정은 가게 주인이 하는 겁니다. 100% 자신이 설계한대로 공간을 꾸밀 수 없다는 아쉬움이 늘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상수동 카페골목 초입에 직접 와인바를 차립니다. 해질 무렵에 이곳에서 한강 쪽을 바라보면 석양이 참 아름답습니다. 광훈씨는 이걸 인테리어에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선셋로얄.

 ‘핑크궁전’이라고 불리는 하와이의 로얄하와이언 호텔 디자인을 참고했습니다. 지난달에 소개해드린 ‘쓰리고 고신웅씨’가 ‘빠리쌀롱(Paris salon-Deuxieme)’이란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고 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이 곡을 부른 가수 박종철씨가 여기서 일하고 있습니다.

선셋로얄 외부. 인스타그램 캡처

가게 주인 입장에서 인테리어를 해보니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설계할 때랑은 사뭇 달랐습니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테이블을 빼곡히 채우고 대신 등받이 없는 의자를 놓곤 했는데 막상 이렇게 가게를 운영해보니 손님들이 의자 배치를 다 바꾸더라고요. 직접 가게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이 어떤 인테리어를 원하는지 많이 배웠어요.”

선셋로얄 내부.

안도 다다오는 복싱선수 출신입니다. 건축에 대한 열정만으로 혼자 공부해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까지 수상한 것이죠. 안도 다다오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철학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바 있습니다.

 “인간의 생활과 단절한 건축은 성립되기 어려우며, 공간이 아무리 극적이더라도 생활과 유리되어 있으면 의미를 잃게 된다.”

*사진은 11월 13일 '이용상의 상수동 사람들'에 소개됐던 로프트84 김기풍씨가 촬영해 주셨습니다. 그 외 자료사진은 사진 밑에 출처를 적었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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