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준·윤동주 길러낸 ‘북간도 기독교’를 아시나요

1899년 2월 18일 새벽, 서른 두 살의 김약연(1868~1942)은 네 가문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중국 지린성의 중남부 지역)로 향했다. 총 25세대 142명이 도착한 곳은 명동촌. 이듬해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집안인 윤재옥 가문까지 합류하면서 다섯 가문의 마을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 마을은 10년쯤 지난 1909년 명동교회가 세워지면서 집집마다 막새기와(처마 쪽에 거는 기와)에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을 정도로 끈끈한 신앙 공동체로 바뀌었다.

1937년 노회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한자리에 모인 북간도 용정중앙교회 성도들. 앞줄 오른쪽 안경 쓴 이가 문재린(문익환 목사 부친), 두 명 건너 중절모를 손에 든 이가 김재준 목사, 김 목사 왼쪽에 흰색 두루마리를 입은 이가 김약연 선생.

명동촌 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이들은 문익환(1918~1994) 문동환(96) 목사 형제와 윤동주 윤영춘(1912~1978·가수 윤형주의 아버지) 시인 등이다. 이들은 명동학교에 이어 캐나다장로교선교사들이 설립한 은진중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간도 대통령’으로 불리던 김약연 선생이 이들의 인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한학자였던 김약연은 명동촌을 개척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장로가 된 데 이어 목사가 되면서 복음 전파에 힘을 쏟았다. 뿐만 아니라 1919년 2월 대한독립선언서에 간도 대표로 서명한 데 이어 룽징 3·1만세운동을 주도할 정도로 항일민족정신이 투철했다. 1920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는 김약연이 기독교를 기반으로 이끌었던 간민회 조직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가 지닌 불굴의 독립의지와 민족정신은 장공 김재준(1901~1987) 목사의 삶과 신앙에도 깊이 스몄다.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의 뿌리 격인 장공은 1936년 8월부터 은진중학교에서 교목 겸 성경교사로 섬겼다. 당시 장공의 제자로는 ‘기장의 거목’ 강원용(1917~2006) 목사와 민중신학의 창시자 안병무(1922~1996) 박사, 문익환·문동환 목사 등이 있다. 이른바 ‘북간도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이들이 한신대와 기장의 초석을 다진 이들인 셈이다.

연규홍 한신대 신대원장이 16일 한신대 서울캠퍼스에서 방문객들에게 전시된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보연 인턴기자

16일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 한신대 서울캠퍼스에서는 특별기획 사진전 ‘항일독립운동기지 북간도와 기독교, 그리고 한신대’가 개막됐다. 약 100년 전 부흥했던 북간도 기독교의 현장과 더불어 조국 독립을 위해 피땀 흘렸던 믿음의 선열들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연규홍 한신대 신대원장은 “전시회를 통해 북간도에서 미완의 독립시대를 살아냈던 믿음의 선배들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울러 북간도에서 한신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평화통일과 북방선교의 꿈을 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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