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묵상-세례자 요한의 설교] 스스로 낮춰 더 높아진 이

본인과 아들, 손자들이 다 화가여서 이름에 특히 주의해야 하는 화가의 그림이다. 한데 누가 주인공일까. 한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크기로 보아 앞 오른쪽 인물들이 중심인 듯하나 아니다. 저 멀리 중앙 왼쪽 다른 이들과 겹치지 않게 서서 얘기하는 이, 세례자 요한이다. 그는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왼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

대(大) 피터르 브뤼헐(1525~1569), ‘세례자 요한의 설교’(1566), 목판에 유화, 95 x 160.5㎝, 헝가리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화면 중앙 윗부분에서 온화한 얼굴로 서 있는, 하늘색 옷의 예수 그리스도가 보인다. 사양해도 자신을 낮춰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던 분. 요한은 그분의 샌들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고”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그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며, 자신의 제자 두 명이 그분을 따라가도록 했다.(요 1:27~40)

하지만 그림 속 군중의 시선은 예수에게 있지 않고 여전히 요한을 향하고 있다. 그때 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 3:30) 제자들이 자신에게 사람들이 그분께 모여든다고 했을 때, 세례 요한은 되레 자기 자리가 ‘딱 여기까지’라고 했다. 수많은 이들이 나 아니면 안 되는 줄 안다. 착각이다.

알아서 멈추고 내려올 수 있는 이가 참다운 용기의 소유자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림 속 사람들의 차림새가 독특하다. 다양한 남녀노소, 장삼이사(張三李四), 외국인…. 또한 멀리 보이는 산과 강과 교회. 이 그림은 종교화이자 곧 풍속화. 내용은 성서에서 왔지만 형식은 당시 현실의 옷을 입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지방은 혼돈과 분열의 땅이었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독립전쟁 발발 두 해 전에 그려진 것이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동시 상속받아 통치하던 펠리페2세는 네덜란드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안 됐다. 네덜란드어를 못해서만이 아니었다. 무거운 세금을 물렸고 프로테스탄트를 탄압했다. 사람들은 그의 학정을 참고 참았을 것이다. 이제 곧 독립을 향한 전쟁과 격변의 시대가 임박했다.

그러나 그림 속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네덜란드 역사의 암울한 시대를 산 브뤼헐. 그는 프로테스탄트 성직자들이 개혁을 요청하며 곳곳에서 순회 설교를 하는 모습을 반영해 평화와 희망을 전한다. 진정으로 당대의 세례자 요한 역할을 찾고 ‘참 예수’를 알기 원하는 듯이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세례자 요한은 진짜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동안 자신의 임무를 끝낸 것이 아니다. 그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사회에 할 말을 하며 겁내지 않고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런 그를 일컬어 예수는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이 없다”고 극찬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덧붙인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눅 7:28). 그렇다. 내가 꼭 무엇이 아니어도,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면서 산다면, 세례자 요한 이상으로 진정 더 높게 더 중요하게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미학자 금빛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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