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쇠 사단 정점에 김기춘 전 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가히 금메달감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도 대열 합류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부터). 국민DB.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 가운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공통점이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법원의 재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를 통해 각종 증거와 증언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의혹을 모두 부인한다는 점이다.

‘모르쇠 사단’의 정점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있다. 김 전 실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의혹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일이 없다”고 잡아뗐다. 김 전 실장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블랙리스트 명단을) 드린 일도 없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이 김 전 실장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를 주도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구속하자 김 전 실장은 자숙하기는커녕 특검팀 수사가 위법이라고 물고 늘어졌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특검팀의 수사가 직무범위를 벗어났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9부는 지난 3일 김 전 실장의 ‘특별검사의 직무범위 이탈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의) 범죄사실은 특검법에 기재된 각 의혹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것이고 법에서 규정한 의혹사건과 합리적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률 미꾸라지’답게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재판부가 특검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연한 판단이다.

특검팀에 소환되고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뉴시스


김 전 실장과 함께 ‘법률 미꾸라지’로 불리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모르쇠’ 분야에서는 가히 금메달감이다.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 전 수석은 최씨 존재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은 2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두할 때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취재진이 “왜 자꾸 최순실을 모른다고 하느냐”고 질문하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는 “국정농단 묵인했느냐” “문체부 인사에 개입했느냐” “민간인을 사찰했느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법정에서 충분히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의 ‘모르쇠 사단’에 합류했다. 문 전 장관은 21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사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사퇴의 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이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와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문 전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 재직 당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해 청와대로부터 어떠한 지시를 받거나 해당 기업으로부터 어떠한 요청을 받은 바 없고, 국민연금공단으로 하여금 합병에 찬성토록 구체적·명시적으로 지시한 바도 결단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기금운용에 대한 최종 책임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인한 국가경제 및 자본시장에 대한 우려의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진실을 밝히려고 최선을 다했으나 예기치 못한 소용돌이 속에서 진실은 외면 받고 묻혀 버렸으며, 오로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찬성했다’는 결과만 부각되어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치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국가경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특검팀 수사결과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듯하다. 문 전 장관이 “진실은 외면 받고 묻혀 버렸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가 알고 있는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전 장관의 궤변은 계속 이어진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계속 이사장직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연금공단과 임직원 모두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뿐인 바, 이제 자리에서 물러나 그 짐을 덜어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특검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뉴시스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공단의 전 직원과 국민에게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단어도 언급했고, 국민연금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표현도 사용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마치 용단을 내린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단한 착각일 뿐이다. 그는 특검팀에 의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지 52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구속된 지 50일이 넘도록 중요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를 유지한 문 전 장관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모습에 기가 막힐 뿐이다. 문 전 장관이 예리한 판단력과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면 구속되자마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사법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박 대통령 측근들을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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