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를 위해 인생을 건 남자’ 열정배우 남정우의 꿈

‘10초를 위해 인생을 건 남자’ ‘포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 무명 배우’. 배우 인생 11년차를 맞은 남정우(35)의 수식어다. 연관 검색어엔 ‘침묵’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지’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일본 문학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을 원작으로 제작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에 출연한 배우다.

강민석 선임기자

영화 개봉일인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남정우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영화관에 가서 본다기에 어느 장면에 나오는지 설명해주긴 했는데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상영시간 159분 중 출연 시간은 대략 10여초. 배역이름도 없는 마을주민 50여명 중 한 명이자 얼굴마저 검게 그을린 듯 분장을 한 그를 가족들조차 찾기 힘들 것이란 자조였지만 그 웃음엔 자부심이 가득했다.

상영시간의 0.1%에 불과한 시간 동안 자신의 연기를 스크린에 띄우기 위해 무작정 뉴욕, 대만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였다. 무모해 보이는 남정우의 도전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을 이끌어 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2년 동안 대학 10곳의 문턱에서 미끄러진 그에게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입학은 거부하고 싶은 운명과 같았다. 

“고교시절부터 배우를 꿈꾸며 호기롭게 연극영화과 입학을 자신했지만 돌아오는 건 ‘낙방’이란 결과뿐이었습니다. ‘합격’을 허락한 곳은 감신대가 유일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곳에서 극단 ‘창조극회’와 연극 ‘침묵’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2001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극단에 들어간 그는 그해 말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각색한 연극 ‘침묵’에서 ‘덕칠이(원작의 기치지로)’ 역을 맡으며 무대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배우가 될 것을 다짐했다. 그와 함께 ‘무엇이 순교이며 무엇이 배교일까’를 묻는 ‘침묵’이 담은 메시지를 가슴에 새겼다.

졸업 후 크고 작은 연극·뮤지컬 무대에 서며 활동을 이어가던 남정우는 2012년 스콜세지 감독이 ‘침묵’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작사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고 ‘시체 역이라도 좋으니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1년 뒤 일본 도쿄에 뮤지컬 공연차 방문했을 때 영화 ‘사일런스’의 제작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일본 공연의 출연료 전액을 털어 뉴욕 행 항공권을 샀다. 팬카페를 뒤져 제작사 주소를 알아내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만 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펜을 들었다. ‘기치지로’ 역을 맡았던 대학시절 사진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열정을 담아 우편을 보냈다. 역시 헛수고였다.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다. 2015년 1월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이번엔 대만 행이었다.

배우 남정우와 영화 사일런스 대만에서의 영화 촬영 현장

“대만에서 곧 영화를 찍을 것이란 기사를 보고 직접 촬영장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도착하고 보니 촬영지가 어딘지 알 수가 없더군요. 사방으로 알아봐도 장소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는데 우연히 현지 뉴스가 눈에 들어왔어요. 한 촬영장에서 세트가 무너졌다는 사고 소식이었는데 바로 ‘사일런스’가 촬영중인 곳이었죠. 뉴스에 나온 지명을 찾아 바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엔 ‘배우 바우(남정우의 영어이름)가 스콜세지 감독을 찾아 서울에서 뉴욕을 거쳐 대만까지 왔다’고 적혀 있었다. 보름이 지나도록 제작 관계자들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때 한 대만 스태프가 단역 배우 모집하는 회사를 알려줬다. 한 걸음에 달려간 남정우는 수년을 연습해왔던 ‘기치지로’ 역을 연기했다. 그는 “도쿄 공연 당시 ‘침묵’ 책을 들고 다니며 일본 스태프에게 요청해 ‘기치지로’ 역 대사를 17세기 규슈 지역 사투리로 녹음해가며 연습했는데 2년 만에 빛을 본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우 남정우와 영화 사일런스 촬영장 앞에 선 모습

극적인 오디션 끝에 기회를 얻은 남정우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건 단 두 장면. 하지만 그는 “‘이름 없는 마을주민’이 아닌 ‘기치지로’ 역에 임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열 번의 촬영 현장을 누볐다”고 밝혔다. 촬영 마지막 날엔 스콜세지 감독에게 ‘다음 기회에 더 비중있는 역할로 작품에 나서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편지도 전했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며 ‘무한 용기’ ‘희망’이란 이름으로 공감을 얻어 냈다.

강민석 선임기자

‘배우를 꿈꾸게 했던 작품’은 14년이란 시간을 건너 ‘배우로서 꿈을 이룬 작품’이 됐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추억을 ‘사일런스’와 함께 한 배우 남정우의 다음 도전이 궁금했다.


“촬영 현장에서 작품의 숨결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때 한반도의 기독교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쳐 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어요. 아직 배우로서 갈 길이 멀고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상상도 못했던 퍼즐 조각을 맞춰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절대 침묵하고 계시지 않을 거예요.(웃음)”

최기영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