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고아 1000명 살린 딘 헤스 대령, 제주에 기념비

1950년 12월, 중공군이 밀려오자 서울이 다시 점령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때 미 공군 조종사 딘 헤스(Dean E Hess) 대령과 미 5공군사령부 종군목사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은 미 공군 지휘부를 설득해 전쟁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피신시킬 계획을 세웠다.

딘 헤스 대령. 공군 제공

그러나 고아들은 약속시간을 2시간이나 넘겨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미 공군 수송기들은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폭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다렸고 마침내 미 공군 C-54 수송기 15대를 동원해 고아들을 무사히 옮겼다.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이자 한국 공군의 대부인 딘 헤스 대령의 ‘전쟁고아 구하기’ 일화다. 공군은 9일 딘 헤스 대령 별세 2주기를 맞아 공적 기념비를 건립, 제막식을 가졌다. 기념비는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야외항공기전시관에 마련됐다. 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는 기념비 제작비용 일체를 후원했다.

공군역사단에 따르면 기념비 건립에는 헤스 대령의 생전 유언도 반영됐다. 그는 제주로 피신했던 1000명의 전쟁고아 중 300여명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갔던 것을 비통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비는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날아오는 미 공군 수송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고아들의 모습을 상징한 중앙 탑을 중심으로, 왼쪽엔 딘 헤스 대령과 블레이즈델 군목, 보육원 조력자의 모습을, 오른쪽에는 헤스 대령이 자신의 전투기인 F-51 무스탕 18호기를 타고 공중전투하는 모습을 각각 부조했다. 기념비는 박원식(광림남교회) 작가가 1년간 제작했다.

딘 헤스 대령 공적 기념비.

이날 공적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헤스 대령의 큰 아들 래리 헤스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사랑이란 단어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며 “오늘 이 제막식을 본다면 어린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기뻐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이를 환영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마태복음 19장 14절과 누가복음 18장 16절을 가장 좋아했다”고 말했다.

김선도 광림교회 원로목사는 축사에서 “헤스 대령과는 세 번 만났다. 그에게 미 공군 조종사 특유의 깍듯한 경례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는 비행기를 타고 목회했던 목사였다. 한국전에서는 비행교관과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군목 역할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정경두 공군참모총장과 미 제7공군 사령관 토머스 버거슨 중장도 축사를 했다.

헤스 대령은 1950년 6월 미 극동 공군사령부에 배속돼 한국 공군과 함께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전 발발 직후부터 1년간 250여 차례 출격해 북한군과 맞섰다. 당시 미군이 한국 공군에 기증한 10대의 F-51 조종교육을 담당해 한국 공군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헤스 대령이 자신이 구출한 고아를 안고 있다. 공군 제공

한국 전쟁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전쟁고아를 위한 보육원 사업과 모금운동에 힘썼다. 한국을 수시로 방문해 고아들을 돌봤으며 개인적으로 전쟁고아 한 명을 입양하기도 했다. 1956년 보육원 후원금 마련을 위해 자서전 ‘전송가(Battle hymn)’를 집필했으며 이듬해에는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영화 수익금은 전액 서울 근교 보육원 시설을 마련하는 데 기부했다.

딘 헤스 대령은 목회자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들(Disciples of Christ)’이라는 미국 개혁교회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그가 조종했던 전투기에는 히브리서 11장을 인용한 ‘믿음으로 나는 비행한다(By Faith, I Fly)’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글귀는 한국어로는 ‘신념의 조인(鳥人)’으로 번역돼 필승 공군을 상징하는 문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제주=글·사진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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